통제하기 어려운 나를 마주했을 때
25살, 처음으로 조증을 겪었다.
최근 우연히 연예인 홍진경 씨가 하는 유튜브를 보게 되었다. 조울증이라는 썸네일에 이끌려서였다.
영상에서는 울다 웃다 하며 자주 감정이 뒤바뀌는 홍진경 씨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공식적으로 이혼 발표가 난 후의 스케줄 영상이었다. 하지만 나는 ‘과연 병원에서 정식으로 진단받은 걸까.’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가 봤을 때 홍진경 씨는 적어도 내가 앓고 있는 양극성장애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양극성장애, 그중에서도 1형은 뚜렷한 조증 증상이 동반된다.
미디어나 매체, 그리고 일반 사람들이 흔히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은, 조울증이 단순한 감정기복의 병이라는 것이다. 울다가 웃는다고 해서 무작정 조울증이라는 진단을 내리긴 어렵다. 뭐라 정확히 꼬집어 설명하기 어렵지만, 조울증의 조증은 확실한 질병의 증상이다. 조울증의 조증은 수면 장애를 동반하는데, 나의 경우에는 일주일동안 하루 2시간씩 자는 수면 장애를 겪었다. 내가 정의하는 조울증의 조증은 수면 장애를 동반한, 에너지 과잉 및 감정 통제 불능 상태이다.
양극성장애 1형의 조증삽화 증상은 다음과 같다. (양극성장애 2형의 경조증은 증상의 종류는 유사하나 정도가 약함.)
- 기분: 과도한 행복감, 들뜸, 혹은 쉽게 과민해짐.
- 사고/언어: 생각이 빠르게 진행되고(사고 비약), 말이 많아짐(언어 압박).
- 행동/에너지: 에너지 증가, 활동량 증가, 잠을 적게 자도 피곤하지 않음.
- 지속 기간: 최소 4일 이상 지속.
- 조증은 정신증(환각, 망상)을 동반하지만 경조증은 그렇지 않으며 증상 강도가 약함.
환자마다 다르지만, 조증이 오기 전에 우울삽화가 먼저 오는 경우가 많다. 나는 1년간의 우울기 후에 조증을 경험했다. 가장 확실한 증상은 잠이었다. 잠을 적게 자도 피곤하지 않았다. 하루 20시간 이상 깨어있음에도 사고회전이 빠르게 일어나고 몽롱한 상태의 각성 상태에 접어들며 강한 자기 확신을 갖게 되었다. 논리적 판단이 어려워졌다. 그러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 잠들어있던 감정들이 부풀어 오르며 부정적 감정이 극대화되었다. 또, 지나가는 행인들을 향한 망상을 갖기도 했는데, ‘저 사람이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 같다.’, ’ 나에게 시비를 걸 것만 같다.‘, ‘나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다.’라는 이상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조증기에 이성 관계가 있다면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는데, 이성이 나를 좋아한다고 확신하여 관계에 지장을 줄 수 있다. 불 같이 화를 내거나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데, 감정의 근거가 약하고 과한 감정 표현이 일어나며 통제가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간혹 과소비를 하거나 무리한 사업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가까운 주변인들이라면 평소와 다른 모습을 눈치챌 정도로 조증 발현 전과는 명확한 행동 패턴의 차이가 있다.
앞서 발행했던 브런치북 <씩씩하게 조울증과 마주하기>를 보면 내가 겪은 증상들이 더 자세히 나와있다. 양극성장애 1형의 조증이 발현됐을 때, 주로 입원치료를 통해 급성 조증기를 약물로 잠재우는 식으로 치료를 한다. 조증이 발현됐을 때는 병식이 없는 상태가 많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강제입원이 되는 경우가 잦다. 1형 조증 환자는 중증 환자로 분류되어 처음에는 폐쇄병동으로 입원하는 케이스가 많은데, 치료 경과에 따라 개방병동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폐쇄병동은 외부 자극 차단으로 인한 안정과 집중 치료 환경 제공을 위한 곳이다. 자해를 막기 위한 곳이기도 하다. 미디어에 나오는 것처럼 무서운 곳은 절대 아니다. 그저 치료 시설일 뿐이다.)
조울증의 원인은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나에게 있어 조울증은 그동안 나를 방치한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우울이 깊어지게 나를 방치했고, 도움의 손길을 받을 용기를 내지 못했으며, 막대한 스트레스 속으로 나를 내몰았다. 질병은 질병일 뿐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조금 더 나를 일찍이 보살폈다면 치료 경과가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도 든다. 하지만 오히려 확실한 조증이 있었고 그로 인한 입원이 일어났기에 어떤 경험보다 더 강렬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고도 생각한다. 입원할 만큼이 아닌 경조증이었다면 병식도 늦게 가졌을 테고, 단약을 해서 재발을 더 많이 겪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양극성장애, 그중에서도 1형의 환자들 또는 가족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부디 희망을 가지길 바란다. 처음에는 어찌해야 할지 막막하고 두렵겠지만 결국에는 시간이 해결해 준다. 꾸준한 치료를 받는다면 조증 재발을 겪지 않은 채로 평화로운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 조증은 신호이다. 아픔을 알아채라는 신호. 신호를 받았다면 치료하면 된다. 그동안의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워지고, 관계를 재정립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할 기회로 생각하자. 오늘도 모두가 평화롭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