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오다
지난 글에서 양극성장애의 조증기를 다뤘다면, 이번 글에서는 우울기를 다뤄보고자 한다.
나는 24살 가을부터 25살 여름까지 약 10개월의 시간 동안 양극성장애의 우울기를 겪었다.
우울기가 시작된 계기는 전문직 공부의 압박감과 남자친구와의 이별이 겹쳐지면서였다.
당시 나는 대학교 3학년을 마친 후 휴학과 자취를 하며 가족들에게 공부 비용과 월세, 용돈을 지원받고 있었다. 부모님께는 공부를 위해 자취를 시켜달라고 했지만 사실은 그냥 집에서 나와 자유를 누리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자취 후 처음은 정말 행복했다. 다정한 남자친구가 있었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았다. 내 일상은 데이트와 모임으로 가득 찼다. 한 달만, 또 한 달만... 하며 공부를 미루고 미뤘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직 어리고, 1~2년 설렁설렁 놀다가 졸업 후에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해도 늦지 않겠지,라는 생각이 앞서있었다. 가족들 몰래 그런 생각을 품고 사니 자유는 점점 죄책감이 되어 나를 옭아맸다. 매 달 어머니께 월세를 받을 때마다 공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쌓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약 2년을 만난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받았다. 이유도 모른 채로 말이다. 이별 직후에는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그저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학교 복학을 신청했다. 겉보기에는 혼자 여행도 가고, 운동도 하고, 학교도 잘 다니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때까지도 이별을 회피하고 있었다.
아직 완전히 헤어진 게 아니라는 희망과 함께 전 남자친구에게 다시 연락을 했다. 하지만 내 태도와는 정반대로 이미 다른 사람과 연락 중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학교를 가지 못했다. 정말 갑자기. 그렇게 학기의 절반 동안 무단결석을 했다.
처음에는 그저 내가 게을러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게으른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밖을 나가지 못했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 배달 음식으로 폭식을 하고 누워만 있으니 살은 점점 불어났다. 살이 찌니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카톡을 점점 보지 않기 시작했다. 친구들의 연락도, 가족들의 연락도 무시한 채로 나는 우울의 늪에 빠져갔다.
그때는 몰랐지만 나에게 양극성장애가 있음을 알고 난 이후엔 이 증상들이 양극성장애의 우울삽화 특징임을 알게 됐다.
양극성장애 우울기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지속적인 우울감 및 흥미 상실
- 에너지 저하와 무기력
- 신체 증상 : 불면증, 식욕 감소 또는 증가
- 인지 변화: 집중력 저하, 죄책감, 절망감, 심하면 자살 사고까지
- 운동 기능 변화: 정신운동 지체(느려짐) 또는 초조함
- 일상 기능 저하
10개월 간의 우울기 이후에는 전편에 썼다시피 조증 삽화로 인해 입원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공부에 대한 압박감과 이별이라는 스트레스가 발병의 트리거가 된 셈이다.
양극성장애는 조증 삽화로 시작될 수도 있고 나의 경우처럼 우울 삽화로 시작될 수도 있다. 우울 삽화로 시작된 경우에 우울증 진단을 먼저 받을 수 있으나 이후 조증이 발현되어 진단이 수정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지금 내가 그때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우울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살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잠시 지나갈 구덩이 같은 것이라고. 그러니 숨기지 말고 도움을 청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양극성장애가 아니더라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분 중 번아웃이 왔거나 우울감을 자주 느끼는 분이 있다면 주저 없이 병원에 내원해 보기를 추천한다. 세상에는 나를 도와주려는 사람이 많이 있다. 이건 내가 겪은 사실이다. 그러니 용기를 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