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아 Sep 16. 2017

질문하지 못하는 한국인

G20 폐막식 오바마의  한국에 대한 의문

한국인의 장점이자 단점은 동조 같다. 분위기가 조성되면 뭉치는 능력. 좋은 일에만 적용이 되면 좋은데, 안 좋은 일 앞에서도 분위기가 조성되면 동조한다. 2010년 G20 폐막식 연설에서 오바마는 개최국의 이점을 주어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권을 준다고 했다. 한국 기자들은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아서, 오바마는 몇 번이고 질문자 여부를 물었다. 영어를 못해서 질문 못 한다고 생각한 건지 오바마가 통역을 써서라도 질문 하라고 하자, 좌중들은 웃었고, 중국 기자가 손을 들었다.


앞에서 틀린 답을 다수가 말하면, 무언가 이상하다고 여기면서도 같은 틀린 답을 말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다. 다수가 틀린 답을 말하니, 나만 관계에서 이상해질까 다수와 같은 답을 말하는 것이다.


권위 있는 미국 대통령이라고 해서 무조건 질문을 해야 하나? 궁금한 게 없으면 안 해도 되는 것 아닌가? 사대주의적인 시선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내 생각은 다르다. 무언가를 사랑하면 궁금하게 돼 있다. 질문이 없다는 건, 저 상황을 자리만 채우려는 태도가 아닐까. 모든 르네상스는 정답을 외우기보다 질문하는 행위로부터 나온 것 아닌가?


질문 행위가 존중받지 못하는 문화에서, 질문을 하고 싶어도 참는 행위가 동조의 예시가 될 수 있다. 한국에서는 과정보다는 성취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있다. 물론,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수업을 하면 진도는 어디까지 나가야 하고, 질문을 하면 튀고 싶어 한다고 여기거나, 생각하지 말고 외우라는 교육 인식, 특히 수업 끝나갈 때 질문하는 건 다수 반 아이들의 자유 시간을 빼앗는다는 분위기가 있다. 그런 분위기에서 궁금한 게 있어도 질문을 참거나, 많이 있어도 한 가지만 한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선생님도 학생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런 분위기에 전체가 동조되어 갔다.


영광스러운 G20, 더구나 개최국이기에 더더욱 부끄러움을 느꼈던 걸까. 세계인들 앞에서 한국의 치부가 드러난, 발가벗겨진 기분이어서 국민은 기자들에게 비난 섞인 비판을 쏟아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골몰해보자. 자신이 한국에서 자라왔고, 한국의 교육을 받았으며, 한국의 조직에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자신이 저 상황에 있는 한국 기자라면 질문을 했을까? 할 수 있다고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실제 상황에 처했을 때의 행동이 차이가 없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저와 같은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기자들의 무능이라기보다 질문하지 않고 철학하지 않는 문화의 무능이 아니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미래를 위한 노력도, 놓쳐선 안 될 지금도 소중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