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국물에 허름한 욕망을 파묻는다. 냄비채 들이키니 눈에서 아릿함이 핑돈다. 내 눈이 놀라 염력으로 냄비를 밀어낸다. 눈의 눈을 가리고 다시 들이킨다. 국물이 내게로 오는지, 오지 않는지, 보이지 않아 도통 가늠할 수가 없다. 국물이 내게로 오기 전에 허한 수증기만 잔뜩 폐가 위 대신 머금는다.
다시 한 번 전열을 가다듬고, 눈을 닫고 들이킨다. 입에 닿기 전까지 미리 반응하지 않는다. 천천히 냄비를 기울이고, 아랫입술에 뜨끈한 국물의 온도를 감지하고 나서야, 후루룩 들이킨다. 이게 순서가 맞다. 시각이 있어 촉감을 덜 느끼고 성급해진다. 이따금씩 시각은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
시각 때문에 미리 예측할 수 있지만, 덕분에 섣부를 수도 있다. 가지고 있는 것을 십분 발휘할 생각조차 못한다. 거듭 내 안에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가지지 못한 것을 외부에서 찾으려 하면서 스스로 불안에 몰아넣는다.
개개인은 누구나 자신만의 마법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게 무엇인지 확신할 수가 없고, 그런 교육을 받지 못했고, 그럴 시간이 어디 있느냐며 사회는 몰아붙인다. 그럴수록 바깥을 욕망하지 말고 나를 들여다 보아야 한다. 외부의 욕망은 내 것이 아니다. 삶은 돌이킬 수 없다. 삶은 덧 없기에 스스로 결정한 삶을 살아야 한다.
걷기 전 평탄해 보이던 길은, 진입하니 어느새 불길로 변한다. 외부가 욕망하는 주연들의 세계는 맹렬한 야수들이 들끓는다. 도착지까지 살아남지 못하면 수많은 주연지망생 중 하나가 된다. 없는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은 걷기 전엔 막연해 보여도, 막상 진입하기 시작하면 갈피를 잡기 어려울 뿐, 야수는 없다. 그저 자신에게 집중하고 자신과 싸우면 된다. 도착지도 없다. 나아가는 순간순간이 목적이자 결과다. 주연으로 살고자 하면 조연으로 죽을 것이고, 조연으로 죽고자 하면 주연으로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