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꽤나 오랜 기간 동안, 남들이 보기에 추락하는 삶을 살았던 건, 스스로 결정한 선택 때문일 거야. 사회적으로 보았을 때, 나의 삶은 추락했고, 주변 시선에선 나를 이해하지 못했지. 왜 올라가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내려가느냐고.
내가 원하지 않는 삶은 사회적으로 올라가더라도 스스로 만족하지 못할 거 같아서. 난 아마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곳에서 태어나야 했을 거 같다고 스스로 몽상에 잠기기도 했지. 내가 읽는 책들의 삶을 따라가나봐. 마냥 극단적으로 낭만을 추구하는 사람만은 아냐. 다만, 돈을 위한 삶이라면 대부업이라도 하겠지. 잠깐의 희생으로 부자가 된들 그건 평생 상처로 남을 거야. 난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사람에게 도움되는 일인 거 같아도 그 속을 보면 다들 장삿속이지. 알아. 마냥 낭만적인 일은 없을 거야. 아마도.
어떤 일보다 '어떻게'하는 지가 중요한 거 같기도 하고. 대부업과 같은 사회적으로 명백하게 지탄받는 일이 아닌 이상,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반대로 사회복지업을 해도 지원금을 개인의 이득을 위해 빼돌린다면, 대부업과 별 다를 게 없겠지.
주변에서 내게 그래. 상황이 다급해지면 자아실현이고 뭐고 그런 거 못 한다고 말야. 그런 말하는 지인들은 실제 상황이 많이 어렵기도 해. 이해해. 하지만, 타인과의 조화보다 자아가 강한 나라면, 내 꿈을 펼치지 못한다면, 무책임하게 외면하고서라도 이 길을 갔을 거야. 난 겉으론 유순해보이지만, 내 자아를 무너뜨리는 사람에겐 착하지 못해.
오랜만에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펼쳐보았는데, 이 문구가 가슴에 와 박히더라. "이처럼 가을 나무 주위에는 낙엽이 뒹구는 법이다. 나무는 그런 것을 느끼지 못한다. 비는 나무줄기를 타고 흘러내리고, 햇볕은 나뭇잎을 내리쬐며, 서리가 내린다. 그러나 나무속에서는 생명이 가장 깊은 곳, 가장 좁은 곳으로 서서히 움츠러든다. 나무는 죽는 것이 아니다. 기다리는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죽어가는 것 같지만, 나는 내 삶을 위해 가을 겨울을 버티고 봄을 기다리는 거라고. 젊은 날, 주변의 시선으로 인한 외롭고도 깊은 상처를 못 버텨낸다면, 40대부터의 아물어 더욱 단단해진 내 삶은 없을 거라고. 이왕 기다리기로 한 거 외롭게 꿋꿋이 기다리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