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 크레파스를 칠한 것 같은 밤에 집 옥상에 올랐다. 하늘을 검은색으로 온통 칠하고 부분부분 별 여러 개와 달 하나를 송곳으로 긁어냈다. 누군가가 이렇게 아름답게 스크래치를 낼까? 궁금했다. 내 마음에도 이렇게 아름답게 달과 별 모양으로 스크래치가 난다면 조금은 위안이 될 텐데.
밤의 하늘은 온통 검은색이 아니었구나. 달 주변일수록 미세하게 상아색으로 옅어지는구나. 성인이 된지 한참 지났는데 이걸 몰랐다니. 너무 속상했다. 아마 어렸을 때는 보고 느꼈을 텐데 어쩌다 이렇게 바보같아졌을까. 삶의 경험치가 많아질수록 아는 건 늘어가는데 순수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게 줄어든다. 안다는 건 무얼까?
나무는 한자리에 있어서 자란다. 뿌리를 내리지 않는다면 자랄 수 없다. 뿌리를 내리지 않는 나를 생각하며 반성했다. 방 안으로 들어와 이 글을 적다보니 갑자기 생각이 났다. 모두가 나무가 되어야 할까? 나는 물이 좋은데. 강처럼 흘러가는 게 더 좋은데. 정체하지 않고 흐르는 거. 여러 물줄기들이 더해져서 자라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왜 한자리에서만 뿌리를 내려야만 할까. 나는 자라는 것보다 넓어지는 게 목적인 것 같다. 내가 자라기보다 나무가 성장하도록 도움을 주는 강물이 되기를 원하는 것 같다. 언제쯤이면 나는 주변과 내게 스크래치를 내지 않고 삶이 현현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