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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보로 레드 피우는 또라이

열 번째 남자(1) 말보로 레드, 25세

by 무아예요

대학교 1학년, 술자리라면 절대 빠지면 안 되는 줄 알던 새내기 시절.


동기들과 술을 마시다 과 선배가 부르면 우리는 다 같이 우르르 자리를 옮겼다. 그럼 나는 눈치 보다가 혼자 슬쩍 나와서 동아리 친구들과 또 술을 마셨다. 내가 사라진 걸 알아챈 동기에게 전화가 오면 다시 새로운 술판이 시작됐다.


“해 뜬다!”


술자리를 4차, 5차쯤 가면 동이 텄다. 학교가 산골짜기에 있던 터라 닭 우는 소리도 들렸다. 우리는 ‘똥 냄새 지린다’라며 논밭을 걸으며 각자 자취방으로 돌아갔다. 아무도 벌써 해가 떴냐며 놀라지 않았다. 우리는 이따 수업 어떻게 가냐며 걱정도 하지 않았다.


통학을 하던 나는 같이 있던 친구 중에 아무나 따라갔다. 자취방에 내 칫솔이 있는 친구가 대여섯 명 됐다. 매일 다른 친구네 집에서 지내며 집에는 가질 않았다.


밤새 술 마시고도 세 시간 뒤 전공 수업을 결석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초코에몽 하나씩 들고 ‘숙취 오진다’며 엎드려 있었다. 누구는 수업 중에 갑자기 화장실에 토하러 갔고, 누구는 기가 막힌 나이스 타이밍에 출튀를 했다. 그래도 이만하면 우리 모두 꽤나 성실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성실하게 하루도 빼먹지 않고 술을 마셨다.


1학년 첫 학기가 끝날 때쯤, 동기들은 ‘다이어트 팸’을 만들곤 하나둘씩 술 약속을 거절하기 시작했다. 동기들이 다이어트를 하든 말든 금주를 하든 말든 나는 여전히 바빴다. 학과 선배들에게 예쁨 받느라 동아리 사람들에게 욕먹지 않느라 매일 새로운 술판으로 항상 옮겨 다녔다.


이쯤 되면 우리 학교 사람들 다 알겠다 싶다가도 술자리에 늘 새로운 사람은 한 명씩 있었다. 그 남자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우리 학교 학생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 자리와 어울리지 않았다. 사람들과 함께 앉아있지만 어딘가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끄트머리 구석에 앉아 빨간 뚜껑 참이슬을 혼자 따라 마시고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혼술’을 실제로, 그것도 그렇게나 자연스럽게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그리곤 꽤 자주 혼자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옆자리 친구에게 저 사람은 대체 누구냐고 물어보았다.


“저 형 잘생겼지? 원래 배우 지망생이었대.”


어쩐지 혼자 술 마시는 모습도 폼 나더라니 배우를 준비했다는 말이 어울렸다. 하지만 얼굴을 자세히 보다 보니 왜 배우 준비를 그만두었는지도 알 것 같기도 했다. 감초 역할을 하기에는 잘생겼는데, 그렇다고 주연급 비주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뒤늦게 우리 학교에 입학했다. 나와 같은 1학년인데 나보다 다섯 살이나 많았다. 웬만한 복학생 선배들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나이가 더 많은 셈이다. 다섯 살 많은 남자는 대학 오기 전에도 만날 일이 없었고, 대학 와서는 딱 한 명 봤다.


나이를 알고 나니 그가 더 낯설게 느껴지면서도 궁금해졌다.


“근데 완전 미친놈이야. 선배들도 못 건드려."


그는 이미 신입생 환영회 때부터 같은 학과 사람들에게 ‘미친놈’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1학년 모두 모여야 하는 신입생 환영회 날, 몇 시간이 지나도 그 남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의 학과 선배들은 새내기들 기강을 잡아야 한다며 그가 올 때까지 아무도 못 가게 했다. 막차 시간쯤이 되어서야 그가 전화를 받았다. 동기들이 여태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선 그가 이렇게 말했다.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죠? 아르바이트 중입니다.”


그와 짧게 전화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배들이 먼저 자리를 떴다는 이야기였다. 선배들이 못 건드리는 게 아니라 안 건드리는 거 같은데...


그 말을 듣고선 그가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난 새내기라면 신입생 환영회는 물론, 총회, 술자리, 약속 모두 절대 빠지면 안 되는 줄 알고 실천해 오던 사람이다. 아르바이트가 있으면 미리 선배들에게 사정을 말하든 아르바이트를 뺄 수 있는 거 아닌가?


미리 말을 못 했을 수 있다. 동기들이 나 때문에 밤늦게까지 기다리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면 정의롭게 ‘동기들은 먼저 보내주시죠.’라고 말할 법하지 않나?


하여튼 정상이 아니다.

이상한 사람이다.


“그래도 저 형 때문에 학교생활이 좀 편해졌지.”


그렇다. 가만 생각해 보면 그가 아예 틀린 말을 한 건 아니다.


신입생 환영회에 신입생들이 모두 꼭 참석해야 할 할 이유는 없다. 그와 같은 학과 동기들은 물론, 선배들도 그 남자의 말 한마디에 납득한 것 같았다. 그 사건 이후로 그 남자를 ‘미친놈’라고 부르면서 다들 그와 친해지고 싶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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