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C, 동양과 서양의 예술에 대한 서설
들어가며
훌륭한 예술품은 작가의 정신이 깃들어있고 그 시대적 상황이 반영되어 있다고 한다. 훌륭한 예술품을 만드는 것은 예술가 스스로도 자신의 정신을 담고 시대를 이해하는 눈도 갖춰야 하지만 그만큼 감상자도 그 예술품을 알아보고 이해하려면 작가에 대한 이해와 그가 표현하려 한 것은 무엇인지 그러기 위해 그가 사용한 기법은 무엇인지 아는 것이 선행되어야하고 예술품이 만들어진 시대를 이해하는 문화 예술적 조예도 깊어야 한다는 뜻이다.
예술품에 가치를 부여하는 다양한 관점이 있다. 시대를 흘러오며 사람들 사이에서 향유되어온 다양한 예술품들은 당시에는 예술이라 불리지 않았던 것들도 있고, 당시에는 사람들 사이에 크게 회자되며 큰 유행을 이끌었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보니 가치가 퇴색되어 버리는 것들도 있다. 즉 훌륭한 예술품을 결정할 때 시대적 상황이 반영된다는 것은 작중의 시대예술을 결정하는 문화적 이데올로기를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저자는 동 서양의 다양한 예술 사조들 중 동양의 시ㆍ서ㆍ화 삼절 사상을 오늘날 예술품을 이해하는 하나의 가치관으로 제시해보고자 해서 이 글을 시작했다. 이 삼절사상을 이해하기 위한 토대로 예술과 문화의 상관관계를 간략히 살펴보자.
예술은 무엇인가
훌륭한 예술품을 설명하는 그 예술이란 무엇일까. 예술에 대한 물음은 너무나 상투적이긴 하다. 작가의 작품을 보고 “예술이다.”라고 감탄하는 것만 아니라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예술이다.”라고 감탄하고, 훌륭한 실력을 가진 다양한 방면의 달인들이 펼치는 기술을 봐도 “예술이네.”라고 내뱉는다. 도처에 예술이 아닌 것이 없고 우리가 예술이 아니라고 부인할 수 없을 만큼 예술은 앞질러 창조되고 있다.
더구나 기술의 발전으로 대중예술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난 뒤, 고급예술과 저급예술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사라졌고, 대중예술이 소비재로 기능을 수행하면서 순수예술과 대중예술도 그 경계가 흐릿해지고 있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판매하는 전통예술을 활용한 상품들이 일반인들에게 인기를 얻어 회자되고 연예인들 및 캐릭터와 연관된 ‘굿즈’들이 판매되는 유행과 더불어 상품과 예술의 경계마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예술은 무엇일까. 인간이 인간 자신과 자연을 탐구하기 시작한 것이 학문의 시초이며 그 세계를 바라보던 시각이 동양과 서양으로 크게 나뉘는 것인데 예술 역시 마찬가지다.
예술에 대한 논의는 동양과 서양으로 분류되어 정의된다. 동양에 대한 예술을 논의하기에 앞서 서양에서 바라본 예술을 먼저 살펴본다면, 서양에서 바라본 예술은 어원적으로 접근하게 되면 art, art, Kunst처럼 그 근원은 모두 넓은 의미의 ‘기술’을 의미한다. 이 용어들은 모두 ‘특수하게 숙련된 기술’을 뜻하며, 일반적으로 일정한 생활목적을 유효하게 달성하기 위하여 특정한 재료를 가공하여 객관적 성과를 산출해 낼 수 있는 능력 또는 활동으로서의 기술을 총칭한다. 자연 속에 없는 것을 만들어 충족시키는 것으로 인간만의 능력으로 가능한 소산이고 자연과 예술은 대립적인 개념으로 여겨진 것이다.
인간의 역사를 보면 인간은 자연과 대립했다. 인간에게 ‘불’의 발견이 어둠이라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짐승에게서 보호하며 날것이 아닌 조리된 음식을 섭취가능하게 하면서 생명에 대한 위협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된 최고의 도구가 되어 준 것처럼 자연은 인간에게 인간이 아닌 인간 외적인 세계였고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 안에서 예술가들은 예술가 자신인 ‘나’와 ‘세계’의 이해에 있어서 ‘나’를 ‘세계’를 향해 표현하려는 존재들이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매체를 활용하며, 이러한 매체 활용은 산업 혁명 이후 기술발달에 따른 새로운 매체들의 등장으로 가속화 되었다. 도구적 개념으로 매체를 활용하는 예술가의 등장은 기술발전에 따른 당연한 결과이며 여기서 미디어아트라는 영역이 의미를 부여받는다. 문학가가 펜과 종이를 이용해 문자를 통해 작품을 탄생시켰던 것처럼 말이다.
사실 예술과 기술에 대한 논의는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이라는 개념을 가져온 학자 벤야민을 언급해야 하는데, 그는 기술이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기술을 제1기술과 제2기술로 개념을 정리한다. 벤야민에게 있어 제1기술은 자연을 정복하는 도구로써 기술을 의미한다. 앞서 얘기했던 자연 정복의 기술을 뜻한다. 자연을 정복하는 도구로서의 기술은 인류 역사의 초기부터 있어왔다. 그렇다면 제2기술은 무엇인가. 제2기술은 ‘놀이적 기술’이다. 놀이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기술, 즉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한다. 제2기술이 자신의 모습을 가장 잘 드려내는 영역이 바로 예술이라고 보았으며 그 영역에서 꽃피운 장르가 영화였던 것이다. 근래 호모루덴스라 하여 ‘놀이하는 인간’에 대한 연구가 있는데 아이들의 창의성을 길러주기 위해 놀면서 배우는 것을 강조하는 요즘 세태를 보면 그 발단이 여기서 오지 않았나 싶다.
서구문명에 지배받던 역사적 배경을 봐도 우리는 큰 범주 안에서 서양문물에 물들어 있었다. 학문 역시 마찬가지다. 서양의 문화를 우선해서 배웠으며 동양의 문화와 사상은 심하게 표현하자면 괄시해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동양에서 말하는 예술은 무엇이었을까.
동양에서의 어원적 의미를 보면 한자어 예술(藝術) 가운데 예(藝)는 종(種)이나 수(樹), ‘심는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요컨대 예는 첫째, 농부는 농사를 짓기 위해 농경술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기술’을 의미한다. 둘째, 장차 사대부가 되려는 사람의 인간적 결실을 얻기 위하여 필요한 기초교양의 종자를 심고 꽃을 피우는 수단으로서 ‘인격도야’를 의미한다. 이어 술(術)은 읍중도(邑中道)로, 즉 나라 안의 길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이 길(道, way, method)이 실행하는 방도로서의 기술(technique・art)을 의미한다.
동양 역시 예술에 대해 기술이라는 해석을 한 것을 보면 서양과 비슷한 시각이다.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두 번째 예(藝)에서 온다. 기초교양의 종자를 심고 꽃을 피우는 수단으로서 ‘인격도야’를 의미한다고 했는데 동양의 전통사회에서는 인간이 만든 예술작품이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초월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예술 창작 행위를 그 초월을 가능하게 하는 수양의 도구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래서 전업화가가 아니라도 교양을 가진 지성인이라면 반드시 시와 그림에 능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예술에 대한 동양의 대표적인 사유 중 한 가지가 시ㆍ서ㆍ화 삼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