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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먹갈기 좋은날 Oct 03. 2021

글씨로 사유하기

- 시와 글씨와 그림으로 일상 치유하기

    글을 쓰기위해 책상에 앉아 생각에 잠겨있었는데, 우연히 신랑의 컴퓨터 앞에 놓인 종이 한 장을 봤다. 내가 사둔 화선지 자투리가 놓여있었다. 회사 일로 공부를 하고 있는데 그 내용인 것 같았다. 한글과 영어가 섞여있는데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는 글씨, 많은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우리 신랑은 성품이 올바른 사람인데 글씨를 잘 쓴다고 표현하기 어려운 필체를 가졌다. 스스로를 악필이라고 설명하고, 자기 글씨는 다른 사람들이 알아보기 어려워한다, 즉 가독성이 떨어진다며 서류를 작성할 때 부끄러워하며 필자에게 맡길 때가 많다. 물론 필자도 달필이라고 할 수 있는 글씨체는 아니다. 다만 노력하고 있으며 신랑의 글씨보다는 알아볼 수는 있으니 라고 마음을 쓰다듬는다. 그런데 말이다. 글씨가 마음을 담는다고 하는데 신랑의 글씨는 신랑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 확정지어 말할 수 있을까.

   신랑이 종이 위에 적어놓은 글씨는 무엇을 적어놓은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고, 한글의 자음과 모음도 ㅈ인지 ㅅ인지, ㅐ인지 ㅣ인지도 잘 구분이 안 되는 것으로 보여 가독성마저도 확실히 떨어졌다. 그러나 선이 그어진 노트도 아닌 화선지에 한 줄로 비뚤어짐 없이 곧게 써진 글씨의 정렬을 보니 성품이 여기서 나오나 싶기도 했다. 일까지 하고 지치고 힘들 텐데 그 시간마저 쪼개어 공부를 하면 하기 싫고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한 가득 일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중해서 시간을 보냈구나 싶었다. 글씨가 마음을 담는 것은 맞다. 다만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고 우리가 흔히 보고 인정하는 “예쁜” 글씨가 아니라고 해서 그 글씨를 쓴 사람의 마음을 ‘모두’ 대변하지는 않는다. 신랑의 글씨처럼 형태를 알아보기 어렵더라도 줄을 맞춰 정갈하게 쓰였을 수도 있고, 아이들의 글씨처럼 크기와 모양이 들쑥날쑥하더라도 그 나름의 리듬이 자리할 수 있다. 글씨에는 그 사람의 마음과 인생의 시간이 담겨있다. 그 사람이 남들 눈에 ‘악필’이라고 할지라도 멋지고 예쁜 글씨를 쓰는 법을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면 그 기법이 성숙해가는 시간이 담긴다. 어쩌면 모두 획일적인 폰트(과거에 비해 훨씬 다양해지고 있지만)를 사용해가는 우리의 문명 속에 ‘손글씨’는 다시 한 번 사람의 ‘마음’을 담는 ‘시간의 기록’으로 가치가 부여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요즘처럼 감성과 인성을 키워야 한다는 시대, 인간의 감정을 교육하는데 있어 예술은 가장 좋은 교육의 도구가 될 것이다. 그 속에 인간의 마음, 감성을 그려내는 예술로서 ‘손 글씨’는 주목받아야 할 것이다. 오래전 문인들이 시와 글씨와 그림을 함께하는 문인들을 삼절이라 칭송해 마지않았던 것을 본받아 필자도 그런 문화가 우리의 일상 속에 스며들었으면 좋겠는 바람이다. 그래서 일상 속의 우리 시와 글씨와 그림에 대해 이해하고자 이 글을 쓰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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