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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먹갈기 좋은날 Sep 24. 2021

아이들의 상상력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 환상과 기술의 대화

  

     아이가 유튜브를 보면서 SCP라는 말을 너무 많이 해서 도대체 그게 뭐지 라고 의문을 품었다. 들여다보니 눈, 코, 잎이 없는 몽달귀신같은 머리가 달리고 길쭉한 팔다리를 가진 형상이 좀비처럼 움직인다. 기괴하고 섬칫하다. 얘기를 들어보니 SCP가 한 개가 아니란다. 숫자를 덧붙여 넘버링 까지 해 도대체 몇 개의 SCP가 있는 거지. 궁금해진다. 핸드폰에 SCP를 검색하니 SCP재단까지 등장했다. 머리가 아파오고, 난 물었다. “이게 재밌어?”라고.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일단은 네가 재밌으면 됐고 특별히 자극적인 영상은 아닌 것 같으니...’라고 인정하고 넘어갔지만 저렇게 중독되어 봐도 될까 싶은 콘텐츠이긴 했다. 빠른 시일내에 제대로 기준을 세우고 아이에게 그 기준을 가르쳐야 함이 분명하다. 

    아이들은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우리와 함께 헤엄치고 있다. 우리가 변화된 콘텐츠 시장에서 허덕이는 중에도 아이들은 콘텐츠 속에서 유영한다.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은 전화기 이후 발전된 기술의 행보 끝에 만난 문명의 이기가 아니라 그저 일상의 도구다. 그런데 그 안에 세계가 있다. 

    인간은 역사 속에서 환상을 탐미해왔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세상이 아닌 것들에 대한 것이 환상이다. 그 환상을 확인하고 싶어 한 것이 인간의 욕망이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꿈을 해석하기도 하고, 이(異) 세계의 존재들을 상상했다. 그것은 우리에게 이로운 존재이기도 했고, 해를 입히는 존재이기도 했다. 물론 요즘은 사람이 더 무섭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들은 인간의 공포를 담당하고 있다. 돌아와 환상에 대해 밀접하게 이야기될 수 있는 것이 마술인데, 이 마술은 인간의 역사에서 주술과 같았다. 신과의 대화로 연결되는 길이었으며 신이라는 환상의 존재를 영접할 수 있는 신기였던 것이다. 인간은 신기한 것, 신비로운 것을 보고자 했는데 이것이 비록 눈 속 임지라도 그것에서 오는 즐거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저 보고 즐길 수도 있고 저 눈속임의 원리가 무엇일까 상상해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인간의 눈을 즐겁게 하는 신기로 기술이 도입되면서 본격적으로 환상의 영역에 있던 존재들이 우리 눈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인간에게 움직이는 사진을 통해 기술의 신기원을 선물했던 뤼미에르 형제는 <열차의 도착(1895)>를 통해 당시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이 달려오는 기차를 보고 놀라 상영장 밖으로 뛰쳐나가게 하는 해프닝을 일으켰을 정도로 실제와 화면을 구분하지 못할 놀라움을 선물했다. 이 형제가 영화의 발명으로 실사영화의 기술적 발전을 일구었을 때 한쪽에서 이 기술을 이용해 환상의 영역을 담당했던 감독이 있었다. 죠르쥬 멜리에스라는 마술사였다. 환상의 영역을 기술적으로 사람들에게 영접시킨 존재가 마술사였던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는 지구 밖의 행성, <달세계로의 여행>(1896)이라는 영화를 만들며 FANTASY 장르의 선구자 역할을 해냈다.      


    뤼미에르 형제가 인간들의 삶을 그대로 재현하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각 형식을 구축해 나간 것이 장르영화의 발달이었다면 죠르쥬 멜리에스는 환상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무대 장치 양식의 발달을 추구했다. 이 환상에 대한 구현 기술은 점차 인간의 정신적인 영역을 시각화하려는데 집중했고 독일의 표현주의 영화로 그 기술이 꽃을 피웠다.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창시자인 로베르트 비네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The Cabinet of Dr. Caligari)>(1919)는 정상적인 인간이 아닌 광인(狂人)의 시각을 회화적으로 드러냈다.               

    일반인이 눈으로 가늠할 수 없는 시각적 환영에 대한 표현에 집착적으로 태도를 보인 것이 결국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발달하면서 환상의 존재들을 담아 온 것이다. 어마 무시할 정도로 사람들의 시각적 욕망이 영상 콘텐츠에 녹아들고 있다. 필자의 아들이 보고 있는 SCP 시리즈는 극히 일부다. 더욱이 ‘가상현실’에 대한 이야기까지 끌고 들어온다면 이야기의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다. 

    여전히 환상의 대상들은 유아 콘텐츠에 주된 소재로 끊임없이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러한 환상의 대상들은 오랜 역사 속에 민담으로 존재해왔고 아이들의 전유물처럼 인식된 것은 독일의 ‘그림형제’의 민담 수집의 결과다. 그림형제는 각지에 흩어져있는 민담을 수집해 아이들에게 적합하게 수정했고 배포했다. 그 결과가 백설공주, 신데렐라, 브레멘의 음악대, 라푼젤,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 염소, 헨젤과 그레텔 등이다. 아동문화콘텐츠의 시대별 집대성의 역할이라고 보면 그림형제가 1차적일 것이고 2차가 디즈니라고 생각된다. 2차 디즈니의 집대성은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를 활용했으며 소재들을 1차 그림형제의 이야기를 더불어 전 세계에 퍼져있는 동화를 소재로 가져왔으니 성공적인 매체 전환이라고 보겠다. 이는 인쇄기술이라는 기술혁명과 더불어 영상기술의 발전이 이룬 인류 역사의 쾌거다. 어린이들의 환상을 다룬 문화콘텐츠는 여전히 지속 발전 중이다. 할리우드 시스템 아래에서는 디즈니와 픽사가 노력 신호탄이었고, 드림웍스, 일루미네이션, 소니 픽쳐스 등이 계보를 잇고 있다. 일본은 지브리 스튜디오가 그 노력을 했는데 최근에는 다양한 애니메이션 감독들이 각자의 스타일을 고수하며 인간의 꿈과 희망을 담아내고 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성공한 환상 문화콘텐츠로 <신비 아파트 고스트 볼>을 예로 들 수 있겠는데 도깨비라는 친숙한 괴물의 이미지를 재해석해서 아파트라는 제한적 공간 안으로 아이들을 끌고 들어온다. 다양한 요괴, 귀신 들은 각자의 사정에 맞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이는 마치 <장화 홍련>이 원님을 찾아가 한을 풀어달라고 민원신고를 한 것 같다. <신비 아파트 고스트 볼>을 제작하기 위해 한국에 있는 다양한 민담, 전설 등을 채집했다고 하니 그 제작진들의 노고에도 박수를 보낸다. 

      환상을 담은 이야기는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꾸준히 소비되어 온 콘텐츠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에게 환상을 시각화하는 것은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고, 가상현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력까지 보유하면서 인간의 환상에 대한 탐닉은 그 끝을 알 수 없이 달려가고 있다. 분명 이 환상과 기술의 관계는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끊임없는 발전의 원동력을 제공한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부터 전해오는 인간의 환상에 대한 근원적인 연구의 가치는 보다 확장될 것이다. 

     그러나 영상 플랫폼 기술의 발달로 아이들이 미디어에 지나치게 노출되고 그 중독을 피한 감성적 교육을 위해 스마트폰을 철저하게 배척하는 부모들이 있다. 다수의 책을 거실로 안치하고 TV를 집에서 치워버린다. 그들은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에게 핸드폰을 주어줬을 때 오는 평안함과 안도감, 잠깐의 휴식, 더구나 다른 사람에게 받는 눈총까지도 피할 수 있는 그 순간에 우리가 쉽게 중독되기 마련인데 말이다. 

     인간이 중독되는 것은 모든 과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설탕을 좋아하는 것은 당 중독으로 이어지고, 빵을 너무 좋아하는 것도 탄수화물 중독이 되고, 커피를 너무 좋아하게 되어도 카페인 중독이 된다. 이런 중독은 건강과 직결되어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더구나 정신적 고통을 잊기 위한다는 터무니없는 변명에 의한 마약은 말할 것도 없다.

     환상에 대한 기술적 발전도 지나치게 탐닉하면 중독이 될 수 있다. 환상의 영역에서 시각적 환영만을 추구하는 태도를 경시하고 인간이 근본적으로 원한 것이 무엇이었으며 무엇에 매료되는지 중도를 찾아 콘텐츠를 해석하고 소비하는 태도를 갖춰야 할 것이다. 결국 SCP라는 콘텐츠에 노출되어 있는 자녀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것은 부모인 필자가 해야 할 몫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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