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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발이 Jun 21. 2020

동치미

엄마의 레시피

2014년 가을 즈음이었던 거 같다. 한참 프로그램 성과가 좋았던 시절, 팀원 전체가 행주산성 부근 갈빗집에서 회식을 했던 적이 있었다. 인센티브로 받은 포상금으로 사는 소갈비 회식이니 별 의미 없는 의례적인 덕담이 오가는 그저 그랬던 자리로 기억된다. 갈비 맛도 그저 그랬고. 오히려 팀장의 질문이 가장 명징하고 의미 있게 머리에 남아있다.


“저승 문턱에서 딱 하나의 음식만 골라서 먹고 가라면 뭘 고를 거야?”


갈비, 계란말이, 불고기, 소시지부침, 청국장 등등등 함께 식사했던 사람들 수만큼의 음식이 호명되었고, 내 차례가 되었다.


“조부장은 뭘 고를 거야?”

“동치미요”

“동치미?”

“네. 동치미. 엄마의 동치미요”

“왜? 엄마가 생각나는 음식이라서? 집사람이 서운하겠다.”

“아니요. 엄마의 동치미가 맛있어서요. 정말 너무너무 쩡하게 맛있어서요.”

북한이 고향인 사람들을 만나서 북한 음식 맛을 이야기하다 보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표현이 ’쩡하다’라는 말이다. 냉면을 먹어도 쩡하고, 젓갈을 먹어도 쩡하고, 김치를 먹어도 쩡하단다. 덥히지 않고 차갑게 해서 먹는 이북 음식은 맛이 대부분 심심해서 뭐라 딱 부러지게 표현하기 힘들지만, 하여튼 ‘쩡한 맛’이란다. 이 ’쩡한‘ 표현을 듣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시인들이 호남의 ‘거시기’를 들었을 때와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뭔 소리야? 찡하다고? 이해할 수 있게 표현해봐”

“쩡하다는 말 뜻을 모르겠어? 쩡하다고”

“사이다처럼 톡 쏜다고?”

“아니 쩡하다고. 쩡”

“사이다처럼 톡 쏘면서 개운한 맛?”

“비슷은 한데 좀 달라. 쩡한 맛. 아하, 이걸 왜 모를까. 그래, 동치미가 딱 쩡한 맛이지”

“동치미가 쩡한 맛이라고? 동치미는 시원하고 달달한 맛이잖아. 그게 쩡한 맛이야?”

“흠...…..그냥 너 먹던 대로 먹고살아라. 쩡한 맛 몰라도 세상 사는데 지장 없다.”

“염병”


쩡한 맛은 정말 경험해보지 않으면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알 수 없는 맛 표현의 영역이다. 정말 ‘쩡한’ 맛의 원형을 알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나는 설명 대신 우리 집 동치미를 한 사발 먹여주고 싶다. 엄마의 맑은 동치미 국물을 마시는 순간 누구나 무릎을 치며 유레카를 외칠 것이다. “와! 쩡하다!”

식당, 특히나 매운 음식을 주로 하는 아구찜이나 매운 갈비찜 식당의 반찬 중에 빠지지 않는 메뉴 중 하나가 동치미이다. 식전에 한 수저 떠서 입맛을 돌게 하고, 매운 음식을 먹은 다음에는 아린 혀를 달래라고 자주 등장한다.(물론 입이 맵다고 동치미를 먹어봐야 효과는 별로 없다. 캡사이신의 매운맛은 찬 물 종류가 아니라 지방에 녹기 때문에 기름기 있는 음식을 먹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동치미를 준비하는 식당 사장님들의 배려는 충분히 고맙지만, 이 동치미를 바라보는 나는 참 착잡하다. 외모부터가 얘네들은 동치미가 아니다. 동치미 국물이 뿌옇다니. 단아한 한복을 입은 조선의 여인이 허옇게 가부끼 화장을 한다면 그건 조선의 여인일까? 이건 아니다. 동치미 국물은 맑디맑아 투명해야 한다.

김장을 하는 방법이야 팔도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것 하나는 찹쌀풀일 거다. 찹쌀풀로 탄수화물의 단맛을 보강시켜 발효를 촉진하려는 의도였을 거다. 그리고 이런 관행이 물김치의 일종인 동치미에 쓰이는 순간 국물은 탁해지고 그 결과로 맛은 달아진다. 찹쌀풀 때문에 단맛이 늘고 국물이 탁해진 정도면 좋으려 만, 대부분의 식당 동치미는 뉴슈가의 단맛이 지배를 한다. 심하다. 달달한 동치미는 동치미가 아니다. 쩡하지는 못할지언정 새콤한 맛이라도 있어야 할 동치미가 달콤한 맛을 내는 건, 비틀스의 예스터데이를 영혼 없는 미사리 창법으로 부르는 것과 똑같다.

진짜 동치미의 주 맛은 짠맛이다. 천일염의 짠맛 안에 숨어있는 다양한 미네랄 성분이 아주 은은하게, 보일 듯 말 듯 단맛을 깔아주고, 무의 수용성 성분들이 삼투압 효과로 빠져나오면서 매콤한 단맛을 아주 살짝 더해준다. 여기 까지다. 동치미 국물의 단맛은. 담배를 피우거나 자극적인 음식으로 혀가 쩔은 사람들은 느낄 수 없는 단맛, 곱게 가르마를 타고 보일 듯 말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조선 여인의 아름다움, 그 은은한 자극의 미학이 동치미 국물이다. 이 아름다움이 땅에 묻은 독에서 발효가 되면서 잔잔한 탄산을 만들어 낸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안개속 여인처럼 느낄 듯 느껴지지 않는 섬세한 발효 탄산이 숙성과정에서 동치미 국물 속에 녹아들면 비로소 그 맛이 완성된다. 한 겨울 독에서 꺼낸 차디찬 국물의 맛있는 짠맛 속에 아주 은은한 단맛과 매콤함이 스쳐 지나가며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유령 같은 탄산이 개운하게 뒷덜미를 ‘탁’하고 치는 맛. 쩡한 맛.

동치미를 담는 엄마에게 맛의 비법을 물어보면 늘 같은 대답이다.

 “무가 좋아야지. 다른 음식도 마찬가지야. 재료가 좋아야 맛있지. 재료가 다야”

동치미 레시피라고 해봐야 물에다 소금으로 간 맞추고 무 넣고, 고추와 실파 더하면 끝이니까. 무가 맛있으면 동치미가 맛있다는 엄마의 말은 단순하지만 정답이다. 그리고 그 단순함이 함정이다.

TV를 보며 자주 하는 말이 스타 외모 과거사 진상 규명이다.


“쟤 예전에 외모가 귀엽고 좋았는데 인상이 왜 저렇게 됐데?”

“어머머, 어쩜 좋아. 그리 예쁘던 얼굴이었는데 입이 살짝 삐툴어졌네. 어쩜 좋아”

“저거저거 얼굴에 칼 댔네. 칼 댔어”            

“아이구 저건 과하다. 성형도 작작해야지. 저건 아니다. 누군지를 모르겠네. 중독 아니야”


본인이 예쁘고 잘난 거 몰라서 고쳤을까? 아니다. 더 예쁘고 더 잘나지고 싶은 욕심에 하나, 둘 더하다 보니 적정선을 넘어섰을 거다. 원 재료가 훌륭하니 더 좋은 맛을 내고 싶은 욕망이 스멀스멀 배어 나왔을 거다. 새로운 도전, 과감한 시도라는 미명 하에,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트렌드의 구호 아래, 욕망에 순응했을 거다. 그 결과 원재료의 원초적이고 아름다웠던 매력이 실종된다. 쩡한 맛이 사라지는 것이다. 달콤한 욕망의 결과다.  

투명한 국물에 무 몇 쪽 들어가 있는 동치미는 참 단순하다. 뉴슈가로 살짝 단맛을 더해본다. 백년초 가루로 발갛게 물도 들여본다. 찹쌀풀로 숙성을 촉진시킨다. 나둬도 될 맛에 손을 댄다. 오버다.

맛을 더하는 건 정성이지 투자가 아니다. 변화는 시간과 자연이 주도해야 맛이다. 동치미 국물의 짠맛은 소금이다. 물에 소금을 타면 짠맛은 난다. 그리고 좋은 무를 넣으면 된다. 엄마는 여기에 정성을 투자한다. 수돗물을 받아서 하루정도 숙성시킨 후 윗물만 곱게 떠낸다. 무거운 불순물은 가라앉히고 미네랄만 포함된 윗물만 쓰는 거다. 물을 미지근하게 데운 후 천일염을 넣는다. 물에 완벽히 용해시킨다. 그리고 또 하룻밤을 재운다. 온도를 식히면서 소금물을 안정시키는 시간이다. 엄마는 동치미를 김치 냉장고에서 숙성시키지 않는다. 땅에 묻은 항아리만이 동치미가 숙성할 수 있는 공간이다. 질 좋은 고추와 실파를 더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제 남은 건 자연 발효라는 신비한 기운과 일주일이라는 시간, 그리고 매서운 겨울 공기다.

살얼음 살짝 낀 국물을 바가지로 탁탁 친 후 잘 절여진 무와 고추, 실파를 꺼내고 동치미 국물 한 바가지 퍼 담으면 내 인생 최고의 음식 준비가 다 된 거다. 사기그릇에 동치미 무 가지런히 썰어 담고, 국물 붓고, 고추와 실파를 얹는다. 엄마는 늘 동치미를 반찬 중에 맨 먼저 내어 놓았다. 애피타이저로 한 모금하라는 뜻이다. 수저로 뜨지 않는다. 그릇 채 들어서 한 입 꿀떡 마셔본다. 크으. 쩡하다. 무 한 조각을 씹는다. 아삭. 달고 시원하다. 국물 한 모금 더. 카아. 쩡하다.

두 모금 정도 마시면 밥상이 다 차려진다. 따끈한 쌀밥에 동치미 국물에 곰삭은 고추를 한 입 베어 문다. 고추가 머금었던 동치미 국물이 입안에 터진다. 타닥. 맵싸하고 시원한 감칠맛이 쌀밥과 어우러진다. 다시 무 한 조각 더. 곰삭은 고추와 함께 먹으니 무의 단 맛이 더 잘 느껴진다. 좋다. 엄마가 아들 왔다고 올리신 오징어 볶음에 각종 전으로 입 안이 넉넉히 기름지다. 동치미 국물 한 모금 더. 깨운하다. 동치미가 달지 않고 쩡하니까 밥상 위의 모든 반찬의 맛이 선명해진다.

동치미를 비롯해서 엄마의 김치는 기본적으로 ‘쩡한’ 맛을 장착하고 있다. 이북식 손맛의 특징이다. 젓갈을 많이 사용하는 서울 이남의 김치와 달리 서울을 포함한 이북, 특히 평양식 김치는 젓갈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새우젓 살짝 치는 정도로 충분하다. 젓갈을 많이 사용하는 남도식 김치는 많이 깊다. 젓갈에 생조기를 갈아서 넣을 정도로 생선의 단백질 발효를 적극 활용하기 때문에(젓갈도 일종의 단백질 발효 물질이다) 김치의 맛이 짙다. 반면 평양식 김치는 맛이 심플하다. 김치가 익는 과정에서 단백질 발효의 도움을 최소화하거나 아예 사용하지 않고 젖산 발효에 의지하기 때문에 단순 명료한 맛이 난다. 쩡한 맛의 이유이다. 어느 지역의 김치가 더 맛있는 가는 각자의 기호다. 질문 자체가 무의미하다. 하지만 동치미는 확실하다. 쩡한 맛이 없는 동치미는 동치미가 아니다. 무 담긴 탁하고 찬 단물을 동치미라 일컫는 것은 단순 형태에 따른 언어적 분류일 뿐이다. 맑은 국물이 특징인 동치미는 애초에 젓갈, 즉 단백질 발효 음식이 첨가될 수 없는 성질을 가졌고, 따라서 이북식 김치의 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쩡’한 맛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게 동치미다.    


밥을 다 먹었다. 배부르다. 엄마가 동치미 국물을 또 담아 온다. 입가심하라는 뜻이다. 무와 국물을 입 안 가득히 치우고 우적우적 씹으며 삼킨다. 이렇게 완벽한 디저트가 있을까. 입이 개운해지니 욕심이 생긴다.


“엄마, 고구마 있어?”

“쪄야 되는데. 쪄줄까?”

“응. 동치미랑 같이 줘”


너무 맛있다. 너무 맛있어서 저승에 가기가 싫다. 오래오래 살아서 겨울마다 동치미를 먹고 싶다. 엄마의 동치미를. 욕심이다. 엄마의 동치미는. 확실히.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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