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만 아는 만남
무료한 일상.
독도님은 무슨 좋은 건수 없을까 궁리 중이다. 주말이라 마음이 바쁘다. 뭔가 새로운 만남 같은 쌈박한 게 없을까. 바삐 클릭 중 인터넷 커뮤니티 카페에 금강산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우울한 이들의 노래라는 부제를 보고 독도님은 카페에 가입하여 이리저리 글을 읽어본다. 게시판에 댓글도 달고 그러던 중 문득 초대장이 날아온다. 채팅방이다. 때마침 여자로 보이는 유저가 기다린다. 독도님은 반가운 마음에 급히 자판을 두드린다.
"안녕하세요?"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한동안 대답이 없다. 뭐야? 빈 방인가? 하면서 한숨 쉬는데 별안간
"독도님,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말이 등장한다. 아, 있구나 하면서 독도님은
"구슬님! 처음 뵈어요"
라고 말을 잇는다. 아이디가 구슬이라니. 아마 구슬처럼 얼굴이 예쁘거나 목소리가 좋을지도. 미리 댓글 달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기대하는데
"술 마시고 싶어요"
라는 응답이 온다. 독도님은 당황스럽다. 갑자기 술이라니. 우울한 이들은 저마다 갑작스러운 사정이 있겠지. 사정에 따라 이처럼 불쑥 손 내미는 경우도 있지. 다 이해한다고 마땅히 들어주마 하고 말을 건다.
"제가 살게요. 지금 어디세요?"
손끝이 떨린다.
감당할 수 있을까. 끝없이 드는 의문. 나는 질문을 남발한다. 더러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 섬찟한 두려움. 그래, 역시, 아무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러다가도 불쑥 감당해야 한다는 의지. 다시금 돌아오는 질문. 감당할 수 없을까. 어쩌면 감당할 수 있을지도. 까짓 이런 인생도 있는 법. 저런 인생도 있겠지. 처음 만나는 사람인데, 같을 수야 없지. 때때로 우린 우리가 되어 하나로 치부되지만 반대로 우린 지극히 우리가 아닌데도 우리라고 해서 우리인 줄로 알았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남보다 먼 관계다. 내게 서울이라는 도시가 낯설어도 그저 여러 타 지역 중 하나일 뿐. 타 지역에서 타 지역의 말투를 쓰는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지방 출신에게 서울은 결코 근원적 터전이 될 수 없다, 라고 나는 배타적 가정을 내려본다. 서울 출신이 지방에 뿌리내려 새로이 터전을 마련한 들 언제고 돌아갈 날을 꼽듯 지방 출신도 늘 자기네 고향을 그리워하며 달력을 넘긴다. 그렇다 하더라도 다시금 마음을 열어보자. 어느 곳이나 사람 사는 세상. 오늘 내게 당신이 낯설어도 우리는 서로 인정하고 감당하고 적응해야 해. 나와 다른 인생들. 그러나 역시 서울과 지방이 아니야. 국경을 넘어선 곳에서 왔는데. 나더러 어떡하라고.
술잔을 든 내 손이 떨린다. 구슬님은 물끄러미 내 손을 보다가 스르르 옆으로 시선을 옮겨간다. 손목으로, 어깨로, 목으로, 얼굴로, 그리고 얼굴 옆 창가로. 시선이 옮겨가며 닿는 부위, 부분이 마치 뱀이 기어가는 것처럼 촉감이 전해져 간지럽다.
창가 너머 바깥은 온통 시커먼 하늘. 어디를 보는지 종잡을 수 없는 초점. 두리뭉실 내가 모르는 어딘가를 또 보겠거니 가늠해본다. 가늠하고 감당하고 적응하리라 여기며 구슬님을 본다. 그녀는 내가 저를 보는 줄 아는지 모르는지 슬며시 미소를 띤다. 미소는 어떤 뜻일까. 누구를 생각해서일까. 누구? 설마? 아니다, 아니야, 아아, 또다시 무섭다는 생각. 퍼뜩 정신이 든다. 이건 늪이다. 이미 발이 빠졌다. 빠져들고 있다. 뺄 수가 없다. 이미 젖은 물기가 청바지를 타고 스멀스멀 올라온다. 차갑다. 옷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냉기가 섬뜩하게 느껴진다. 알고 싶지 않다. 알고 싶지 않아요. 듣고 싶지 않다고 입을 떼는데 나는 실제 이렇게 말한다.
"계속 듣고 싶어, 당신의 이야기, 더 들려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