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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Oct 19. 2022

탁구의 기준과 라이벌

영삼 형과 규옥이




승리의 쾌감


그 한순간을 위해 오늘도 탁구 일지를 쓴다. 경쟁하는 시대. 나는 어디쯤 가고 있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잘 가고 있는지 걱정되는 나날. 그럴 때 가늠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기준이 보이지 않을 때 편안함과 불안함은 동시에 싹튼다. 관장님이 말하길, 시간이 가면 다들 실력이 오른다고 하는데, 정작 나도 그들 속에 묻혀서 함께 실력이 오르는 게 맞는 걸까? 역시 불안하고 의심스럽다. 그냥 나도 자동으로 오르겠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딘가 의심이 가시지 않는다. 다들 오르는데 나만 뒤처지는 게 아닌지 불안하고 불안한 마음. 초조하고 초조한 마음.

오래전 선생님이 말했다. 네가 기준이야. 기준 손 들엇! 모두 좌우로 벌렷! 학생들은 기준을 보고 오와 열을 맞췄다. 앞사람 옆사람을 보며 나란히 잘 섰나 살폈다. 이 정도면 되겠지. 그러곤 안심했다. 기준이 가까이 있을 때 은근히 안심하는 마음.


영삼 형과 규옥이와의 3파전. 


나보다 위거나 위가 확실한 실력자. 탁구장에 가면 저마다 어울리는 상대가 있다. 저녁 7시. 사람들은 처음부터 게임에 돌입하지 않는다. 안녕, 어서 오세요, 반가워, 오랜만에 왔네, 어서 와 같이 치자. 이제 막 탁구장에 도착해 몸 푸는 타임. 벌써 탁구대 절반 정도가 찼다. 모두 저마다 짝이 있다. 평소 끼리끼리 탁구 치는 사람들. 나만 끼리가 없다. 둘러봐도 선뜻 다가갈 탁구대가 없다. 그들이 게임하지 않는데 어물쩍 심판석에 앉을 수도 없다. 조금씩 친분이 모자라다. 비켜! 우리는 게임 말고 연습할 거야, 라고 말할 것만 같다. 나는 누구와 탁구 치나? 탁구칠 상대가 없다. 하는 수 없이 레슨실로 들어가 탁구로봇과 친다. 커트 연습, 서브 연습도 한다. 그렇게 같이 칠 상대를 기다린다. 때마침 영삼 형이 레슨 중이다. 살았구나. 레슨이 끝날 때까지 나는 홀로 연습한다. 탁구대 위로 공을 통통 던져 드라이브 연습도 한다. 드디어 레슨이 끝났다. 영삼 형이 손짓한다. 나가자. 우리는 중간 테이블에 자리 잡는다. 포핸드 랠리를 시작한다. 시작하고 조금 뒤 규옥이 나타난다. 규옥 역시 탁구장 전체를 살핀다. 자신이 갈 자리는 어디인가. 그도 자신과 몸 풀 상대가 없음을 알아챈다. 그렇다면 게임뿐. 실력이 엇비슷한 상대. 개중 스스럼없이 게임할만한 상대. 그나마 친분 있는 사람. 비켜! 라고 말하지 않을 것 같은 상대. 우리를 선택한다. 

"여기 앉아도 될까요?"

규옥이가 다가오자 나와 영삼 형은 동시에 

"고수님 어서 오세요!" "어서 와라!"

하고 환영한다. 

영삼 형과 나는 포핸드 랠리만 했기에 급히 쇼트 랠리도 두어 번 한다. 그리고 가위 바위 보. 3파전 시작. 심판석의 규옥이가 말한다.

"여기서 2등만 하면 좋겠어요."

역시 겸손한 녀석, 착하디 착한 동생이다. 규옥이는 구장 6부다. 실제 실력으로 보면 4부 강 정도 될 것이다. (5부에서 규옥이를 당할 자 없고 4부도 규옥이를 어려워한다)

그러자 영삼 형이

"나는 1등 해야지. 그러면 꼴등은 네가 되겠네"

라면서 맞은편 날 보며 웃는다. 안 그래도 요즘 영삼 형에게 계속 깨지던 참이다. 3대 1, 3대 2, 어쩔 때는 3대 0으로 (참) 교육도 받았다. 이긴 날이 언제이던가. 생각나지 않는다. 무려 일주일은 넘은 것 같다. 매일 함께 치는데 매번 패했다. 여전히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알게 모르게 영삼 형을 올려다보는 마음. 나보다 위구나 한다. (영삼 형은 요즘 최고 상승세다. 영삼 씨 공이 제일 어려워, 라고 핌플 강자 여자 2부 명숙 누님과 여자 3부 미현 누님이 말했다. 누님들은 얼마 전 디비전 T3에서도 준우승을 차지했다. 영삼 형은 이들뿐 아니라 남자 5부들까지 압도한다)  

"아악! 내가 꼴등 하겠네. 기왕 이렇게 된 거 한 세트라도 따는 게 목표닷!"

이것이 나의 출사표였다. 초라하다. 왜 이렇게 된 걸까?

 

결과부터 말하면 나는 영삼 형에게 3대 0으로 이기고 규옥에게도 3대 0으로 이겼다. 얼마만인지 감격이 파도처럼 철썩. 규옥과 영삼 형 대결은 3대 2로 규옥이가 이겼다. 나는 2승, 규옥은 1승 1패, 영삼 형은 2패. 벌써 슬럼프가 지나갔을 리가 없는데, 가끔 이런 날이 있다. 실력이 앞서서가 아니다. 이 서브를 넣을까? 저 리시브로 받을까? 이렇게 공격할까? 저렇게 수비할까? 결국 '수'가 통한 것이다. 탁구에는 수많은 수가 존재한다. 질 때면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본다. 내가 가진 모든 수를 동원한다. 그러고도 지면 그냥 답이 없는 것. 가진 수를 더 강화하든지 아니면 새 수를 만들어야 한다. 


그냥 게임한다? 

암 생각 없이? 

그냥 탁구 치다 보니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거 아냐? 라고 묻는다면 이제는 아니, 라고 단호히 답할 수 있다. 특정 상대에게 계속 지면 속에서 불이 난다. 처음 본 상대에게 져도 불나고 자주 본 상대에게 져도 불난다. 이것이 승부욕인지 뭔지 알 수 없지만 불이 나야 비로소 전략이란 걸 생각하게 된다. 특정 상대에게 통하지 않은 수, 얻어맞은 수를 미련하게 계속 적용하는 거 그것만은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반대로 상대에게 통한 수를 잊어버리는 거. 그것도 피해야 한다. 탁구는 또한 상대적이다. 비슷한 부수에서 절대 강자도 없고 절대 약자도 없다. 물고 물리며 돌아간다. 나는 또 다른 슬럼프를 피하기 위해 규옥, 영삼 형과의 게임과 수를 기록한다.




짧은 서브가 통하더라. 

규옥이는 리시브부터 2구 드라이브를 노리기에 그 노림수를 역 공략해야 한다. 서브를 길게 줄 것처럼 하다가 투 바운드되게끔 짧게 준다. 그러면 규옥이는 드라이브하려다 라켓을 올려보지도 못하고 실점. 물론 중간에 긴 서브도 간간히 섞어줘야 한다. 길게 주는 척 짧게 주는 서브. 그게 첫 번째 포인트다. 영삼 형은 짧은 서브에 가끔 홈런볼을 쳐 준다. 무지무지 감사하다. 서브 모션은 앞날 찌르기. 앞날 찌르기로 짧게 길게 길이를 조절한다. 


두 번째 포인트는 반회전 반커트 긴 서브를 보내고 3구 대응이다. 일단 빠르게 백핸드로 준다. 그러면 그대로 대각선을 따라 백핸드로 되돌아 올 확률이 높다. 그땐 이른바 누르는 쇼트가 작렬. 3구는 서브 방향 그대로 보낸다. 이윽고 네트에 걸릴 듯 말 듯 돌아온다. 이것을 한번 더 찍어 눌러 보낸다. 결국 높은 확률로 네트에 걸린다. 혹은 3구를 갑자기 포핸드로 틀어서 밀어도 된다. 코너웍이다. 이것은 규옥과 영삼 형 둘 다 통한다.


이제 내가 리시브할 차례. 규옥의 서브는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짧은 커트 서브고 하나는 횡회전 하회전이 고루 섞인 서브다. 짧은 커트 서브는 투 바운드이기에 테이블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포핸드 커트로 받는다. 예전에 이걸 백핸드 커트로 받다가 어찌나 많이 두드려 맞았던지 눈물이 앞을 가린다. 나는 아직 백핸드 커트와 포핸드 커트의 차이를 다 알지 못한다. 다만 백핸드 커트로 주면 수없이 강타를 맞거나 선제를 빼앗기는데 반해 포핸드 커트로 바꾸고부터는 그러지 않게 되었음을 안다. 아마 다음 공 4구도 포핸드로 받게 되면서 선제공격에 유리해진 자세 때문이 아닐까라고 짐작한다.

 

규옥의 횡&하회전 서브는 원바운드이기에 테이블 밖으로 나온다. 아무 생각 없이 받으면 네트에 걸리거나 띄워주게 된다. 따라서 이것은 얇은 루프 드라이브로 걸어야 한다. 며칠 전 영삼 형이 규옥이를 이길 때 이 리시브가 결정적이란 걸 유심히 보았다. 나도 따라 해 보았는데 의외로 잘 걸렸다. 

나는 리시브 시 그것을 유념하고 있다가 짧은 건지 긴 건지 재빨리 판단한다. 판단해서 짧은 거면 포핸드 커트로 응수하고 긴 거면 드라이브 선제를 건다. 간혹 그보다 더 빠른 기습 서브가 올 때가 있는데 그때는 쇼트로 쭉 밀면 된다. 나는 리시브 때 라켓을 가슴 앞에 두고 숏인지 롱인지만 우선 판단한다. 


영삼 형의 서브 또한 횡&하회전 서브가 길게 온다. 역회전 서브다. 백으로 들어 올려 받으면 그대로 3구 스매싱 혹은 드라이브를 당한다. 잘 보고 하회전이 적으면 쇼트로 밀고 하회전이 많으면 좀 더 기다렸다가 밑에서 루프 드라이브를 포핸드 쪽으로 보내야 한다. 


규옥의 드라이브는 특이하다. 

이른바 루프와 전진을 버무림 한 롱~ 드라이브다. 탁구대 아래로 떨어지는 걸 집어 올려서 건다. 그리고는 동시에 끝스윙을 아주 길게 앞으로 가져가 전진 드라이브로 그 성질을 바꿔버린다. 규옥이는 젊다. 삼십 대 초반 팔팔한 나이어서 (순발력이 뛰어나기에) 숙였다가 앞으로 쭉 뻗어가는 순간 연결 동작이 가능하다. 그것은 쉬운 기술이 아니다. 밑에서 위로 쭉 올리는 루프 드라이브를 걸면 루프를 거는 거고 뒤에서 앞으로 때리는 전진 드라이브를 걸면 전진을 거는 거다. 즉 둘은 구분되는 드라이브다. 그런데 규옥이는 둘을 합쳐서 보낸다. 결론적으로 그의 드라이브는 빠르고 힘 있고 회전량이 많다. 그냥 받으면 하늘로 붕 떠 버린다. 머리로는 알지만 손은 여지없이 일반 전진 드라이브를 받듯 받는데 하늘로 붕 오버 아웃되고 그 공을 보며 좌절한다. 아니 탁구 친 세월이 얼만데 아직 루프 드라이브도 못 받는다냐? 나도 그랬다. 그러나 규옥의 드라이브는 단순한 루프가 아니다. 전진으로 힘 있게 오는데 알고 보니 루프의 성격을 지닌 것이다. 이를테면 얼굴만 보고 속는 것이다. 너~ 단순한 괴력의 아줌마인 줄 알았는데 막상 스킨십해보니(탁구 쳐보니) 앙칼진 아가씨구나. 아가씨처럼 손톱으로 팍 할퀴고는 달아나버린다. 라켓을 살짝 갖다 댔을 뿐인데. 손만 잡았을 뿐인데. 겨우 손만 잡은 건데 너무 과도한 반응 아닌가요? 뭐예요? 짐승 같으니! 흥! 남자 손 한번 잡지 않은 아가씨. 그것이 루프 드라이브의 속성이다. 천천히 큰 호를 그리며 아름답게 날아오는데 만지면 흥! 콧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펄쩍 뛰어오른다. 


(규옥이가 만든) 아가씨의 대응법을 정리해본다. 바운드가 높으면 스매싱이다. 뒤에 약간 높은 지점에서 앞으로 내려가면서 휘둘러야 한다. 대각선으로 찍듯이 때린다. 바운드가 낮으면 루프이기에 빠른 박자로 덮어야 한다. 그래 그래 다 이해할게, 손 한 번만 꾹 잡자, 그만큼 사랑해요 하면서 라켓면을 앞으로 숙여 덮는다. 둘 다 바운드가 정점에 이르기 전 따닥 박자다. 아줌마든 아가씨든 말할 틈을 주면 안 된다. 입 열기 전에 등 떠밀어 보내야 한다. 네네 안녕히 가세요. 정점을 지나 일단 입 열고 말하기 시작하면 늦다. 못 말린다. 루프가 아래로 떨어질 때 늦박자에는 똑같이 루프 드라이브를 걸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실패 확률이 높다. 아줌마 아가씨와 말싸움에서 이길 확률이 낮은 것과 그 결이 같은 것이다.

 

영삼 형의 드라이브는 스매싱에 가깝다. 즉 우직한 아줌마에 가깝다. 회전보다는 파워에 중점을 둔다. 따라서 발로 뛰어 받아야 한다. 내가 탁구대 좌측 끝에서 치면 형은 자신의 좌측 끝에서 내 우측 끝으로 그대로 찍어버린다. 아줌마의 힘은 상상 그 이상. 나는 좌측 끝에서 멍하니 쳐다본다. 아줌마 너무해요. 그래서 나는 치자마자 우측 끝으로 달려간다. 날아올 지점을 미리 예상해 움직이는 거다. 달려가 숙여서 형의 대각으로 카운터를 날린다. 아줌마가 이리로 올 걸 예상했어요. 그게 승부수다. 


랠리에 들어간다. 

오래전부터 랠리는 내가 더 강하다고 규옥이는 말하곤 했다. 영삼 형도 그랬다. 왜 그랬을까? 그 연유를 찬찬히 따져보니 서브 리시브에서 내가 밀렸기에 득점할 확률은 오직 랠리에만 있었기 때문이다. 정작 가장 중요한 서브 리시브에서 득점하지 못하니 끌려다닐 수밖에. 그나마 랠리에서 득점하곤 했는데 그것도 규옥, 영삼 형이 강타를 때리다 실수했을 때가 더 많았다. 내가 강타를 때려 득점한 것도 있지만 거의 드물다.(나는 수비형인가?) 규옥, 영삼 형의 공을 수비하다가 두세 번 정도 버티면 세네 번 째는 실수해 주는 거다. 내가 지는 게임에서 지켜보던 이들이 덕담이라고 한마디 해준 것들은 죄다 '그래도 수비가 뛰어나다' 였다. 이 말은 수비만 잘하는 걸로 귀결된다. 


어제는 랠리에서 당당히 강타를 때려서 이겼다. 공격으로 승리. 평소와는 그 느낌이 사뭇 달랐다. 평소에는 될 대로 대라, 모르겠다, 들어가면 장땡, 들어가면 로또, 뭐 이런 식이었다. 막연히 세게 때리는 거였다. 

확률로 분석해본다. 먼저 살살 때리면 들어갈 확률 90% 실패할 확률 10%다. 그러나 세게 때리면 들어갈 확률 50% 실패할 확률 50%가 된다. 나는 1%라도 확률을 높이고자 순간 동작을 천천히 가져갔다. 천천히 코스와 각도를 맞춰 때렸다. 때릴 때 힘도 조금 뺐다. 힘 빼고 코스만 몸 쪽으로 틀어도 성공확률이 확 올라간다. 천천히의 효과가 더해져 60% 힘 빼니까 70%, 코너웍 하니 80%의 성공률. 5개 때리면 무려 4개가 꽂히는 확률. 




노플레이의 기준

 

옆 탁구대의 공이 우리 탁구대 위로 오면 즉시 노플레이가 된다. 그러나 옆 탁구대의 공이 내 발밑으로 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발밑에 오든가 말든가 나는 플레이를 이어간다. 당연히 내가 득점하면 그대로 인정된다. 그러나 내가 실점하면 어떻게 될까? 심판의 권한이지만 대개 노플레이가 된다. 옆 탁구대의 공이 발밑에 들어왔기에 플레이에 지장 받았다고 판단되는 것이다. 지장 받아 실점했기에 그것은 노플레이가 된다는 이론. 반대로 득점하면 발밑에 공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방해를 이겨내고 탁구에 집중하여 이긴 것이다. 칭찬받아 마땅하므로 당연히 득점이 인정된다. 그럼 반면에 상대편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지금 저쪽 선수 발밑에 탁구공이 굴러왔구나. 옆 테이블 사람이 선뜻 공 줍지 못하고 기다리네? 내가 사력을 다해 드라이브 걸어 이겨도 득점으로 인정되지 않겠구나. 그런데 내가 집중력을 잃고 실점하면 그대로 인정될 테지. 너무 불리해. 뭔가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생활 체육 탁구의 묘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탁구의 흐름도 비슷하다. 부수별 랭킹별 실력별로 줄 서듯 늘 일정한 결과만 나올까? 일정해야만 공정할까? 그렇지 않다. 생활 탁구에는 여러 가지 변수가 들쑥날쑥 치고 들어온다. 집에 걱정거리가 생기면 곧 발밑에 공이 들어온 것이다. 당장 공이 어디 있는지 내려다볼 형편이 아니다. 앞만 보고 집중해야 한다. 그럼에도 행여 공을 밟을세라 신경이 딴 데 가있다. 언제든 공을 밟을 수도 있고 때문에 실수할 수도 있다. 간신히 두어 번 잘 버틴다. 세 번째에 그럼 그렇지 하며 실수한다. 밑에 공 탓을 한다. 환경 탓. 남 탓. 다른 조건, 이놈의 공 때문에 실점했잖아, 하고. 

 

사람들은 저마다 고유의 스타일을 가진다. 나는 내 입장에서 늘 똑같은 스타일로 출발한다. 이 분에게는 통하고 저분에게는 통하지 않는 수. 방해 요소가 들어와도 버티는 힘. 패하고 패하다 적용해보고 실험해보다 노림수가 마침내 통할 때 그제야 안심이 된다. 멈추지 않았구나. 뒤처지지 않았구나. 열심히 하고 있구나. 


누가 기준이야?


기준은 어디에 있나? 지금은 딱히 누가 기준인지 점찍어주지 않는다. 기준을 모른 채 계속 좌우로 벌려만 한다. 야! 기준 너 어딨니? 선생님이 없다. 이제는 너무 멀어 보이지 않는 기준. 별수 없다. 먼 데서 찾기보다 가까이서 찾아본다. 라이벌을 보면서 내 위치를 파악한다. 라이벌인 규옥, 영삼 형과의 대결. 내가 여기쯤 있구나. 아직 사정거리에 있구나. 그럴 때 드는 안심. 안심이라고 하니 문득 안심 스테이크, 고기가 떠오른다. 갑자기 배고파진다. 게다가 오늘은 수요일. 지글지글 타는 고기가 먹고 싶다. 솥뚜껑에서 익어가는 삼겹살이 생각난다. 그러고 보니 삼겹살 먹어 본 지 언제이던가. 줄줄 흐르는 돼지기름에 콩나물 무침이랑 김치를 턱턱 놓아 볶는다. 고소한 향이 난다. 하얀 버섯과 마늘도 굽는다. 잘 익는다. 계란찜 한 숟갈로 입맛 다신다. 깻잎 상추에 고기 한 점, 마늘 반 조각, 김치랑 콩나물 몇 가닥, 고이 싸 입에 쏙 넣는다. 우적우적 씹는다. 건배! 꿀꺽! 어떻게 먹어야 더 맛나나? 


오늘은 삼겹살 일지도 적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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