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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Oct 25. 2022

작은 탁구장 불이 꺼지고

네온에 불이 켜지지 않는다




휴우 휴우~ 헉헉~



헐떡이는 숨소리. 

쉬익 쉬익~ 슝슝~ 라켓 휘두르는 소리. 철컹철컹~ 철문 붙잡는 소리. 비지땀을 흘리는 중년. 49세. 젊지도 늙지도 않은 열정. 지방 소도시 어느 변두리 길가 낡은 빌딩 지하의 작은 탁구장. 탁구대는 고작 세 개. 불을 켜지 않으면 암흑 그 자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누가 존재하려나? 처음 문 열면 찬기운만 스산하게 나오는 공간. 저기 구석 모퉁이에 비상구 유도등만 하나 보일 뿐 그 무엇도 식별할 수가 없다. 좀체 사람이 오지 않는 곳. 손님이 끊겨버린 곳. 주목받지 못하는 장소. 누군가 며칠 몇 달 몇 년을 머무른다 해도 아무도 모를 곳. 여기 사람이 있나요? 사람이 사나요? 일부러 지하계단을 따라 내려가 문 열지 않는 한... 열어서 여기가 뭐하는 데야? 궁금해하지 않는 한... 탁구장인데 왜 이렇게 눅눅해? 하지 않는 한... 그곳이 뭐하는 곳인지 누가 머문 곳인지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타인의 공간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접근하지 않는다. 다만 탁구장이라는 표식이 있으니, 정말 탁구 칠 수 있는 거야? 탁구 치고 싶다 하고 들어서기 전, 여기가 어떤 곳인지 누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삐거덕 문 여니, 

진짜 탁구장이구나 하고 그제야 알게 된다. 탁구대도 있고 레슨실도 있어. 에어컨도 있고 화장실도 있어. 없는 게 없어. 아아, 다만 사람이 없구나. 탁구 치려면 상대가 있어야 하는데, 상대가 없네. 상대가 없어서 매번 레슨만 받고 집에 돌아가는 사나이. 맨 안쪽 구멍이 송송 난 철문 너머 레슨실에서 그가 후후! 기합 넣으며 포핸드 스윙을 한다. 49세의 직장인. 이름은 종현. 뚝뚝 비 오듯 땀 흘리는 얼굴. 부지런한 남자. 늘 탁구복이 축축하니 젖어있다. 머리카락이 드문드문, 금테 안경, 말랐지만 땅땅한 체격, 서글서글 순박한 눈빛, 시골 어디에서나 봄직한 인상, 선한 기운, 나는 어쩌자고 이곳에 들어와 그를 쳐다보는가? 작은 탁구장의 주인이 아주 저렴한 금액, 이벤트로 월회비와 레슨비를 내걸었기 때문이다. 보통 탁구장의 절반에 절반도 안 되는 금액으로 레슨비와 월회비를 퉁치는 행사. 홍보 효과 때문인지 멋모르고 반짝 열 명이 모였다. 하루 이틀, 일주일 이주일이 지나가니 나만 남았네. 원래 과정은 두 달인데 이주일 만에 9명이 달아났고 나 혼자만 남았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이곳에 다녔다. 

한가로운 저녁시간. 자전거도 타고 탁구도 치고 거기다 레슨도 받고, 일석삼조, 일타 삼피, 돌 하나로 세 마리의 새~ 였다. 다만 같이 칠 상대가 없어서 레슨만 받고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종현 형을 유심히 봤다. 그는 이벤트와 관계없이 원래부터 소속된 유이한 기존 회원 중 한 명이었다. 종현 형은 나와 다르게 비싼 돈을 지불하고 레슨을 받았다. 나는 이벤트 회원이고 종현 형은 이른바 정규 회원이었다. 형은 회당 레슨을 거의 50분은 족히 받았다. 나는 딸랑 15분 남짓? 왜 이렇게 차이가 나냐고 따지려다가 종현 형의 레슨비 액수를 듣고 그만두었다.  


나는 지켜보다가,


"저기, 안녕하세요, 매번 인사만 드렸는데, 기다릴 테니 레슨 끝나고 저랑 한게임 하실래요?"


라고 말 걸어 보았다. 그러자 그도 마침 기다렸다는 듯


"좋아요. 안 그래도 제가 먼저 부탁하려고 했는데, 알다시피 저는 초보예요."


라고 웃으며 답했다. 우리는 금방 친해졌다. 듣자니 그는 여기를 무려 1년간 다니는 중이라고 했다. 1년 동안 이렇게 일주일에 두 번, 50분씩 레슨을 받았다고 했다. 정규회원인 자신과 다르게, 탁구장 주인이 이벤트로 한 번씩 사람들을 모집했지만 늘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모두 떠나갔다고 했다. 이유는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새로운 이가 오건 말건 그저 레슨만 받았다고 했다. 레슨만 받으니 실전을 치러보지 못했다. 게임을 해보지 않으니 자신의 탁구 실력이 늘었는지 줄었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지난 레슨이 아까워 한 달씩 레슨비를 내고서 계속 레슨을 받아왔는데 그게 벌써 1년이 넘어버렸다. 이제와 그만둘 수도 없고 계속하기도 망설여지고 지금이 그런 때라고 했다.


나는 종현 형과 탁구를 쳤다. 

게임을 해보았다. 해보니 그는 나랑 한 부수 정도 차이 났다. 2년 전, 내가 8부고 그는 9부였다. 나는 마구 공을 돌리는 사파였고 그는 정직하게 직선으로만 치는 정파였다. 그는 1년여 동안 레슨을 받으며 스매시 파워만 키웠다. 살짝살짝 치다가 스매시 타이밍이 나오면 정말 정직하게 스매시만 때렸다. 그래, 스매시가 탁구지, 그렇게 돌리는 건 탁구가 아니야, 라고 말하듯 스매시를 특별히 선호했다. 내가 커트만 해도 그는 헤맸다. 어느 때부터인가 나는 더 이상 커트를 하지 않았다. 스매시만 때리는 탁구에 물들었다. 스매시가 아무리 파워풀하다고 해도, 정직하게 같은 코스로만 오면 어떨까? 단순하다. 그저 라켓만 갖다 대면 자동으로 카운터가 된다. 그냥 라켓을 가져다 코스만 막으면 득점되는 것이다. 그는 나와 게임할 때도 비지땀을 흘렸다. 스매시! 스매시가 탁구지. 탁구는 땀 흘리기 위한 운동. 전력을 다해 스매시를 때린다. 탁구대에 스매시 때린 공이 길고 빠르게 탁! 꽂힐 때의 쾌감. 어디 한번 받아보라고. 스매시는 빠르고 경쾌하다. 이 때는 다른 전략이나 전술이 없었다. 그냥 치고 막고 공 주으러 다녀오고, 가 전부다. 어쩌면 탁구 흉내를 내는 다이어트 체조일지도 몰랐다. 같은 폼으로 치고 때리고 이기면 이기는 거고, 지면 지는 거였다.




둘 만의 탁구장. 

종현 형과 둘이서 탁구 칠 때 중간중간 입구 쪽으로 괜스레 자꾸 시선이 갈 때가 있었다. 아무도 없는데 뭘 쳐다보는 거야? 라고 종현 형이 묻길래, 이상하게 누군가가 보고 있는 거 같아요, 라고 말한 적이 있다. 동시에 종현 형과 나는 "으스스하잖아, 야아~ 그러지 마아~" 하는데 학생 하나가 불쑥 뛰어 들어왔다. 탁구장의 본래 회원은 두 명이었다. 유이한 회원. 종현 형 말고 고등학생이 한 명 더 있었다. 이름은 정수다. 정수도 레슨을 열심히 받았다. 레슨을 받는데 중간중간 "워어어어!" 하고 괴성을 질러댔다. 시도 때도 없이 워어어~ 하고 질렀다. 뭐야? 대체 왜 저래? 주인이 애를 잡나? 나는 처음 그 소리를 듣고 궁금했고 무서웠다. 지하 탁구장 맨 안쪽 철문 안에서, 그냥 레슨만 받으면 될 일이지, 웬 고함이래? 하는데 약간의 장애가 있다고 했다.

나는 이후 탁구장에 들어설 때마다


"정수! 이봐! 정수! 너 정수 아니야?"


라고 인사했다. 그러면 정수는


"정수 아닌데, 정수 없는데"


라고 답했다. 내가 장난 어린 말투로


"어? 정수 아니야? 어디 보자. 무슨무슨 고등학교 1학년 2반 27번, 키는 167센티미터에 60 킬로그램, 대동아파트 101동 603호 첫째 아들 정수 아니야?"


라고 녀석의 아는 정보를 다 가져다 댔다.


"아닌데, 1학년 2반 27번은 맞는데 정수는 아닌데"


라고 녀석은 워어어~를 섞으며 대답했다. 이윽고 내가


"정수 아닌가? 엄마 이름은 한영숙이고 동생 이름은 경수인 정수가 아닌가?"


"엄마가 한영숙은 맞지만 정수 아닌데"


"그러면 영수? 종수? 봉수? 것도 아니야? 그러면 형수? 육수? 국수? 박수?"


라고 받아치면 정수는 여지없이 웃음이 터져서는


"정수 없다~ 정수 찾아봐라"


라며 까불었다.


"이상하다, 분명 정수가 눈앞에 있는데? 정수를 어디 가서 찾지?"


라고 내가 말하면 정수는


"워어어~ 정수 없다"


라고 말하며 탁구대 주변을 뛰어다녔다.




하루는 학생의 어머니가 먹거리를 들고서 탁구장을 찾았다. 


초코파이와 사이다였다. 이게 뭐예요? 물으니


"우리 정수가 요즘 탁구장이 재미있대요. 탁구장 다니는 재미에 푹 빠졌네요.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했다. 내가


"도와준 거 없어요, 그저 같이 탁구 치는 건데 뭘 이런 거까지"


라고 말하자 어머니는


"우리 정수는 친구가 없어요. 그런데 애한테 말 시켜주시고 같이 게임해주시고 칭찬해주시고 그런 게 너무 고맙습니다"


라며 고개 숙였다.


"아니에요. 정수가 워낙 밝아서 저희도 좋아요."


어머니와 종현 형과 나는 우적우적 초코파이를 먹었다. 꿀꺽꿀꺽 사이다를 마시면서 뛰어다니는 정수를 봤다. 정수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저 혼자 빈 공간에 탁구공을 치고는 워어어~ 노래 부르며 공 주으러 가고 다시 그곳에서 공을 치고는 주으러 다녔다. 아무도 탁구를 쳐 주지 않을 때 정수는 그렇게 저만의 탁구 놀이를 했다.


평소 정수는 심판을 봤다. 나와 종현 형이 게임할 때면 늘 정수가 심판을 봤다.


"정수야! 심판 좀 봐줄래?"


라고 종현 형이 부탁하면


"정수 없다~워어어~"


하면서 정수는 매번 튕긴다.


"에이~정수야~그러지 말고 삼촌이 부탁할게, 한 번만 심판 봐주라, 국제 심판님!"


고 한번 더 부탁하면


"아이 참, 정수 바쁜데, 워어어~ 별 수 없죠"


하면서 신난 표정으로 심판석에 앉았다. 앉아서 점수판을 착착 넘기는데 의외로 심판을 잘 봤다. 뭐가 득점이고 뭐가 실점인지 정확히 아는 것이었다. 탁구 규칙에 대해 벌써 다 알던 정수. 어쩐지 기특했다. 어쩔 때는 종현 형이 이겼는데 내 점수판을 쓱 넘겨주는 센스도 있었는데,


"어, 정수야, 너무해, 삼촌이 오래간만에 이겼는데 저쪽 삼촌 점수판을 넘기면 어떡해?"


라고 종현 형이 우는 소리를 하면


"이히히히, 정수 들켰다, 우어어"


라며 특유의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아유, 그래, 우리 정수, 심판도 참 잘 보고 대단하다."


"워어어~"




어느 날 지하 탁구장에 불이 꺼졌다. 


이미 불 꺼진 지 오래 지났다. 코로나가 진행되고 방역이 심화되면서 지하 탁구장은 단속의 타깃이 되었다. 나와 종현 형과 정수만 있는데 담당자들 여럿이 들이닥쳐서 험상궂게 점검하고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우리는 더 버티지 못하고 탁구장을 떠났다. 떠나고 며칠 뒤 정수 어머니가 장문의 카톡 글을 보내왔다.


'탁구장에 계신 두 분 삼촌. 그동안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정수가 이렇게 밝은 표정일 때가 없었는데, 탁구장에 갈 때면 신난다고까지 말하더군요. 정수에게 탁구도 많이 가르쳐주시고 같이 운동도 해주시고 격려해주시고, 탁구장에 다녀온 날이면 정수가 집에서 종알종알 얼마나 말을 많이 하는지 모릅니다. 큰삼촌이랑 게임했는데 오늘 한번 이겼어요. 작은 삼촌이랑도 했는데 두 번 이겼어요. 내가 스매시를 날렸어요. 나보고 잘한다고 칭찬도 해줬어요. 오늘 심판을 봤는데 삼촌들이 심판 잘 본다고 아이스크림도 사줬어요. 정수는 탁구장에 가는 게 정말 좋아요. 매일매일 계속 가고 싶어요. 삼촌들이 보고 싶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정수가 이렇게까지 말하니 너무 좋았답니다. 우리 정수랑 함께 탁구 쳐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가정에 좋은 일만 있고 부디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정수와 정수 엄마로부터.'


전해 듣기로 탁구장 주인은 타 도시로 이사 갔다고 한다. 

탁구장에 불 켜는 사람이 없어서, 탁구장에 탁구 치는 사람이 없어서 탁구장 문은 열리지 못한다. 나는 이따금 그 탁구장 앞을 자전거로 지나가곤 하는데, 간판은 아직 떼어지지 않았지만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나무판자로 얼기설기 가로막혀 캄캄하다.


2년 전, 내가 계단에 불을 켜고 침을 꼴깍 삼키며 문 열어서 번개같이 투다닥 전등 스위치를 올리던 기억이 선명하다. 종현 형이 헉헉대며 스윙 연습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정수가 '우어어어, 정수 엄따' 소리치며 심판 보던 장면이 뚜렷하다. 그 공간은 그대로인데 문득 뭉근해지는 기억. 지금 정수는 학교 잘 다니고 있을까? 키가 더 컸겠지? 이제 무슨무슨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겠구나. 만나면 기억이나 할지 모르지만 언제나 씩씩하게 밝게 지내길.


종현 형은 2년 전, 코로나가 잠시 뜸할 때 나랑 현재의 탁구장으로 같이 옮겨 갔었다. 현재의 탁구장에서 9부가 8부 되고, 8부가 7부 되고, 또 내가 6부가 되기 전, 코로나가 다시금 활성화되어 작은 도시 여기저기에 번져나는 바람에 결국 이기지 못하고 떠났다. 이 한마디만을 남기고서.


"코로나 없어지면 돌아올게."


안녕, 꼭 다시 만나요. 나의 정다운 탁구 파트너들. 


큰삼촌과 정수가 그리운 작은 삼촌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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