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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귀와 눈맞춤하면

우리는 마주 보았다

by 머피



지난 추석,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일어난 일이다.



안동에서 진주로 내려오는 길. 남성주 참외 휴게소. 화장실에 가려고 들렀다. 아내와 딸아이는 여자 화장실에 가고 나는 남자 화장실에 갔다. 손 씻고 나와서 화장실과 매점 사이에 어정쩡 서서 기다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데 빈 테이블 위에 사마귀 한 마리가 있었다. 나는 무심코 보고 지나쳤다. 그리고는 이내 호두과자가 맛있을까? 아니면 호떡이 맛있을까? 하며 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이내 '왜 이리 안 나오지?' 하면서 돌아보는데 아내가 그 테이블 위 사마귀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아내는 허리 숙여 뭉근히 사마귀를 보았다. 테이블과는 대략 1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 무얼 그리 재밌다는 표정으로 보는 것일까? 내가 옆에서 보니 사마귀가 고개를 갸웃갸웃 움직이고 있었다. 사마귀가 아내 쪽을 향해 고개를 흔들거리자 아내는 "이놈이 예쁜 사람을 알아보네~"라면서 귀엽다는 듯 웃었다. 내가 옆에서 볼 때도 사마귀는 마치 아내와 눈이라도 맞춘 듯 고개를 까닥까닥 아내의 좌우 고갯짓을 따라 하는 것이었다.


명절을 맞아 수많은 사람들이 화장실에 갔다가 매점으로 지나쳐갔다. 근처 테이블이나 벤치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아내의 눈은,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여기 작은 사마귀 한 마리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구나. 넌 이렇게나 귀여운데 어쩌자고 여기 사람들 속 한가운데까지 와 있니? 뭐 그런 눈빛이었다. 아내가 사마귀를 보고 이렇게 귀엽다는 표정을 짓는 것도 처음이었다. 아내는 평소 사마귀를 비롯 벌레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난 이 사람의 성향이 변하였나 싶었다.


그러다 아내와 사마귀의 아이컨택이 다소 시간이 길어지는가 했을 때였다. 내가 '그만 보고 호두과자 사러 가자'는 말을 막 하려던 참이었다. 순간 사마귀가 테이블에서 펄쩍 뛰어 아내의 어깻죽지에 착지했다. 그 작은 사마귀가 1미터의 거리를 훌쩍 날아 한방에 아내의 옷 위에 내려앉은 것이다. 그와 동시에 아내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악!" 아내는 제자리에서 다급히 뛰며(제자리 점프) "떼줘, 떼줘, 떼줘, 떼줘!"라며 고함을 쳤다. 주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놀라 아내를 쳐다봤다. 다들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어서 휘둥그레 봤다. 아내는 폭발적으로 (과격하게 뛰어 사마귀가 떨어지도록) 뛰었다. 나는 급히 다가가 아내의 어깨 위를 툭 쳤다. 그러자 사마귀는 떨어졌고 바닥에 내려앉는가 싶더니 곧바로 사람들의 발에 밟혀 '타닥!' 하고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분명 들었다. 그 '타닥'은 사마귀의 골격이 부서지는 소리였다. 내려다보니 사마귀는 어떤 남자의 구두에 밟혔는데도 기우뚱 고개를 드는 게 아닌가. 다리가 부러졌지만 머리는 살아있었다. 나와 딸아이는 놀란 아내를 진정시키고 차에 태웠다. 아내가 차에 타면서 했던 말.


"나 한 몸 희생하여 수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줬잖아."


그러면서 아내는, 제 한 몸 희생하여 긴 여정에 지친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웃음거리를 줬다며 자화자찬했다. 실제로 정말 그랬다. 아내가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뛸 때 군중은 무슨 일인가 쳐다봤었고 내가 어깨를 툭 치고 "떨어졌다"라고 소리치자 주위에서 "와하하하하하~" 웃음소리가 피어났다. 주위 아이들은 "저 아줌마 좀 봐~ 되게 웃겨"라고 했고 어른들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빙긋빙긋 미소 지었다. 찰나의 장면에 우리 가족은 그네들의 표정 변화를 거의 다 포착하였다. 부끄러우면 더 잘 보인다. 내가 말했다.


"아니, 벌레를 끔찍이도 무서워하는 사람이 뭘 그리 유심히 보고 있었대?"


"날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게 너무 귀여워서 그랬지."


너무도 짧은 사마귀와의 만남. 어쩌면 사마귀는 자신을 좋다고 보는 사람에게 친근의 표시로 뛰었을지도 모르는데, 막상 다가가니 그렇게나 무서워할 줄은 몰랐으리라. 사마귀야 미안해. (믿고 뛴 건데 툭 내려치는 바람에 ㅠ)




지난 추석 남성주 참외 휴게소에서 갑자기 소리쳤던 사람, 여기 제 옆에 있답니다. 그때 잠깐이나마 재미있었나요? 아내가 다시는 사마귀와 눈 마주치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마귀야~ 미안해~




지금 생각해보니, 아내는 벌레 때문에 펄쩍 뛴 적이 많다. 내가 툭 쳐서 떨어뜨린 적도 있지만 때로는 아내 옆에 있던 이들도 많이 도와주었다. 아내의 '떼줘 떼줘' 외침은, 워낙에 진정성이 깊은 고함과 뜀박질이라, 도저히 남편이 다가올 시간적 텀을 기다릴 수 없어서 바로 옆에 계셨던 분이 호의적으로 툭 쳐주신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드립니다. 이상~ 벌레가 무서운 아내를 둔 남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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