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트럭이 천천히 간다.
5학년 재민이는 골짜기 맨 안쪽에 산다. 스쿨버스가 골짜기로 들어가는데 저 앞에 흰 트럭이 간다. 점점 거리가 좁혀진다. 흰 트럭이 천천히 가고 스쿨버스가 빨리 다가간다. 트럭을 운전하는 이가 차창을 내리고 팔꿈치를 턱 걸치고서 터덜터덜 걷는 것처럼 느리게 간다. 뭐가 그리 급한가. 운전하는 이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굴곡진 길 따라 구불구불 간다. 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는다. 재민이가 말한다. 원래 그래요.
"그래, 알지, 잘 알지."
"재민아 잘 잤어?"
주연이의 말이다. 주연이는 스쿨버스에 유이한 5학년이다. 재민이만 타면 늘 정답게 인사 나누고 조잘조잘 수다를 떤다. 재민이가 뭐라 뭐라 답하는 소리가 작아서 들리지는 않지만 주연이의 목소리가 커 잘 들린다.
"재민아 왜 그래? 재민아 와하하하~너무 웃겨! 샘! 재민이 너무 웃겨요~완전 개그맨이야!"
이따금씩 재민이 아버님은 골짜기 입구에서 기다렸다.
골짜기에 들어가지 말고 여기 내려다 주고 바로 가, 라는 표정이다. 나는 선뜻 반가운 인사를 하면서 '아버님, 감사합니다'라며 손 흔들었다. 아버님은 흰 트럭 차창에 크고 굵은 팔뚝을 턱 걸치고서 으하하하, 그려 그려, 너털웃음을 지었다. 나는 재민이를 내려주고서 다시금 꾸벅 인사했다. 그러면 크하하~ 여유로운 웃음으로 답하던 아버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잠시간 만남이 어찌나 반갑던지...
한 번은 스쿨버스가 가는데 대뜸 추월해서는 팔뚝을 내밀어 '서라, 서!'라고 흔든 적도 있다. 나는 '대체 어떤 용무가 있길래 스쿨버스를 길 중간에서 세워?'라고 쳐다보는데 예의 그 굵은 팔을 보고서는 곧바로 알아차렸다. 아이고 반가운 아버님이구나. "재민아 아빠지?" "네~" 차를 세우니 재민이는 "아빠다~" 소리치며 환하게 트럭에 올랐다. 멋진 아버님. 낚아채듯 아들을 태우고 터덜터덜 웃으면서 갔다.
느즈막에 아이를 가졌다고 들었다.
늦은 나이에 막내 같은 아들이 태어났다. 얼핏 봐도 오십 대 중반 이상은 되어 보였다. 느즈막에 태어난 아들이라 귀하디 귀하게 키운다고 했다. 아들이 얼마나 예쁘면 저럴까. 아버님은 매일같이 학교 가는 아들을 봤다. 둥그런 얼굴 만면에 가득 미소를 띠고서 아들의 뒷모습을 봤다. 내가 스쿨버스를 돌려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버님은 그렇게 버스를 봤다.
하루는 재민이가 소쿠리 가득 대봉감을 가져왔다.
이게 뭐냐고 물으니 "아빠가 먹으래요"라고 말했다. 홍시였다. 재민이 집에는 감나무가 많다. 대봉감도 직접 따신 거라고 했다. 아버님이 스쿨버스 운전석 쪽으로 다가와 말했다.
"수고 많습니다. 이거 별거 아니지만 나눠 들어요."
"아, 이렇게나 많이요? 홍시가 탐스럽네요. 안 주셔도 되는데."
"(기왕 땄으니) 그냥 먹어요."
아버님이 굵은 팔뚝을 내저으며 나눠 먹어요, 라고 말하길래 더 말할 수 없었다.
재민이는 아빠를 닮아서 통통한 체격에 얼굴이 잘생겼다.
동그란 얼굴에 눈동자가 선명하다. 짙은 눈썹에 인상이 부드럽다. 그래서인지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 얼마 전에는 하굣길에 여학생 무리가 따라와 재민이를 놀리고 장난을 쳐댔다. 재민이가 반응하지 않자 한 학생이 재민이를 때렸다. 자그마한 체구의 학생이었다. 재민이는 맞고서 아무런 대항도 하지 않은 채 스쿨버스 자리에 앉아 눈물만 흘렸다. 버스가 출발하는데도 훌쩍훌쩍 울었다. 내가 말했다.
"나쁜 놈들, 우리 착한 재민이를 때리다니, 혼구녕을 내줄게, 그러니 그만 울어, 집에 가서도 울면 아빠가 속상해하시잖아."
재민이는 곧 울음을 그쳤다. 뚝 그치고는 말끔해진 얼굴로 버스에서 내렸다.
엊그제 아침 등굣길.
아버님이 보였다. 아버님은 스쿨버스가 회차하는 모퉁이에 나무의자를 놓고 앉아있었다. 앉아서 아들이 스쿨버스에 오르는 모습을 내내 지켜보았다. 나는 운전석에서 꾸벅 숙여 인사했다. 그러자 그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려~그려" 하는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재민이가 안전벨트를 찰칵~하고 맸다. 나는 핸들을 돌리며 보호탑승자 선생님에게 말했다.
"오늘은 웬일로 아버님이 의자에 앉아서 다 지켜보시네요."
"그러게요. 아들을 정말 사랑하시는 거 같아요."
내가 차를 돌려 비상 깜빡이를 두어 번 반짝거리자 그가 뒤에서 손 흔드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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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게 그의 마지막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아들이 이제 겨우 5학년인데. 아버님은 갑자기 쓰러졌다. 어제 하굣길에 재민이가 집에 먼저 갔더라고 전해 들었다. 그냥 학교 근처에 온 김에 데려간 줄로만 알았다. 그리고는 오늘 아침, 비보를 전해 들었다.
5학년 주연이가 스쿨버스에 올랐다.
타면서도 아무런 말이 없다. 말없이 스쿨버스는 달려 어느덧 재민이네 골짜기에 다다랐다. 그렇게나 말 많던 주연이가 오늘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물끄러미 골짜기를 봤다. 보더니 훌쩍거렸다. 흐억 흐억.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보호탑승자 선생님이 다가가 달래주었다. 한동안 주연이는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나는 울음소리에 멍하니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아 서둘러 선글라스를 썼다. 고요했다. 스쿨버스에 탄 학생들 모두 말없이 바깥만 바라봤다.
스쿨버스가 잠시간 골짜기 입구에서 머뭇거렸다. 보호탑승자 선생님이 말했다.
"오늘은 안 들어가셔도 됩니다."
"아, 그게 아니라 뭔가 인사를 드려야 할 거 같아서요... 그냥 그래야 될 거 같아서요."
나는 가만히 재민이네 쪽을 응시하면서 고개 숙였다.
스쿨버스는 재민이네 골짜기에 들어가지 않고 지나쳐갔다. 들어가 재민이를 태워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들어가 아버님을 뵈어야 하는데 그럴 수 없었다. 이제 골짜기 저 안쪽에 들어가도 반가이 인사하는 아버님을 뵐 수가 없다.
아버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