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남자의 잡생각
회사를 다닐 때,
특히 육아휴직 전 2-3년간은
와이프와의 대화가 힘들고 짜증이 났다.
누구는 어떻더라는 비교, 힘듦에 대한 토로, 등등
입에서 나오는 그 어떤 이야기도
긍정적인 부분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 삶이 힘들었기에
와이프의 대화를 들어줄 여유가 없었으리라.
쉬면서 와이프와 정말 많은 대화를 하게 되었다.
대단한 인생의 계획을 말하는 것이 아닌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깨닫게 된다.
기획일을 하면서 회사의 장기 전략을 짰지만,
정작 나와 내 가족의 미래에 대해서는
무조건 승진과 임금인상 후로 미뤄졌던 것 같다.
그것도 정확히
어디까지의 승진과 얼마만큼의 임금인상도 없이.
대화가 많아지면서
내 속마음도 말하게 되었는데
나 자신의 한계와 힘듦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말했던 것 같다.
그 전이라면 가장으로써 책임이 있기에
힘든 일은 말하지 말자라는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말하게 되었다.
과거엔 스트레스가 쌓이면 술로 풀었고,
와이프가 대화를 시도하기라도 하려면
‘나 당신 이야기 들을 자세가 전혀 안 되어 있어.
무슨 이야기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안 하는 게 좋겠어’라는 말을
말 대신 구겨진 얼굴로 쳐다보며
눈에서 레이저를 쏘아 댔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육아휴직을 하며
40대 후반의 가장으로
집안에 내가 기둥이지라는 생각으로
혼자 감당하고자 하며 힘들었던 일.
나 스스로가 느끼는 한계.
그리고 나의 약한 점을 이야기하면
내가 너무 초라해 보일 것 같아 하지 못했던
내 속 마음.
이 모든 것들을 와이프와 이야기했다.
한 번에 폭발하듯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
육아휴직 기간 내내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을 말했고
와이프는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정말 고맙게도 크게 이해하고 공감해주었다.
내 맘이 건강하고 긍정적인 마음이 생기고 나니,
비로소 와이프의 말도 내 귀에 들어오게 되고,
나중에는 귀에 들어올 뿐만 아니라
나 역시 와이프의 말에 공감을 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말만 하려고 하면 짜증 냈던
이슈들(특히나 집 문제나 아이들 교육 등)이
어느 순간 들리게 되었고,
현실적으로 어떤 방법을 찾는 것이
내가 가진 자산에서
효율적이고 합리적인지를
함께 고민하게 된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동네 아주머니들과의 일상적인 대화,
아이들 간의 친함과 다툼 등
예전 같으면 나에게 하지도 않았을 이야기들을,
어느 순간
와이프가 나에게
시시콜콜 이야기하고 있었고,
난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고 있었다.
육아휴직 후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와이프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초반에 오빠가 육아휴직을 한다고 했을 때
걱정했던 건, 다른 엄마들이랑 이야기할 때
남편이 어떤 일로 우연히 한 달을 쉬게 되었는데
집에 같이 있는 게 너무 불편해 죽을 것 같다는
말들도 하고, 어떻게 하루 종일 집에서 같이 있어?
하면서 우려 섞인 말들을 해주다 보니 나 역시도
그 불편함을 어떻게 해야 하나.. 였던 것 같아.
그런데 우리는 오빠가 쉬면서,
나나 아이들한테 너무 잘해주고,
오빠 스스로도 기운이 나 보여서
너무 다행스럽고
이 순간이 정말 소중하고 좋은 것 같아”
그래.
가정을 위한 쉼은 정말이지 꼭 필요한 것 같다.
특히나 나와 같은 중년의 남성들에겐.
그리고 나중에 일에서 은퇴를 하더라도
와이프와 행복하게 잘 살 자신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