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 나 5 - 와이프와의 대화

중년 남자의 잡생각

by B 밀


둘째, 와이프와의 대화


회사를 다닐 때,

특히 육아휴직 전 2-3년간은

와이프와의 대화가 힘들고 짜증이 났다.


누구는 어떻더라는 비교, 힘듦에 대한 토로, 등등

입에서 나오는 그 어떤 이야기도

긍정적인 부분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 삶이 힘들었기에

와이프의 대화를 들어줄 여유가 없었으리라.


쉬면서 와이프와 정말 많은 대화를 하게 되었다.

대단한 인생의 계획을 말하는 것이 아닌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깨닫게 된다.




기획일을 하면서 회사의 장기 전략을 짰지만,

정작 나와 내 가족의 미래에 대해서는

무조건 승진과 임금인상 후로 미뤄졌던 것 같다.

그것도 정확히

어디까지의 승진과 얼마만큼의 임금인상도 없이.


대화가 많아지면서

내 속마음도 말하게 되었는데

나 자신의 한계와 힘듦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말했던 것 같다.


그 전이라면 가장으로써 책임이 있기에

힘든 일은 말하지 말자라는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말하게 되었다.


과거엔 스트레스가 쌓이면 술로 풀었고,

와이프가 대화를 시도하기라도 하려면

‘나 당신 이야기 들을 자세가 전혀 안 되어 있어.

무슨 이야기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안 하는 게 좋겠어’라는 말을

말 대신 구겨진 얼굴로 쳐다보며

눈에서 레이저를 쏘아 댔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육아휴직을 하며

40대 후반의 가장으로

집안에 내가 기둥이지라는 생각으로

혼자 감당하고자 하며 힘들었던 일.

나 스스로가 느끼는 한계.

그리고 나의 약한 점을 이야기하면

내가 너무 초라해 보일 것 같아 하지 못했던

내 속 마음.

이 모든 것들을 와이프와 이야기했다.


한 번에 폭발하듯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

육아휴직 기간 내내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을 말했고

와이프는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정말 고맙게도 크게 이해하고 공감해주었다.


내 맘이 건강하고 긍정적인 마음이 생기고 나니,

비로소 와이프의 말도 내 귀에 들어오게 되고,

나중에는 귀에 들어올 뿐만 아니라

나 역시 와이프의 말에 공감을 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말만 하려고 하면 짜증 냈던

이슈들(특히나 집 문제나 아이들 교육 등)이

어느 순간 들리게 되었고,

현실적으로 어떤 방법을 찾는 것이

내가 가진 자산에서

효율적이고 합리적인지를

함께 고민하게 된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동네 아주머니들과의 일상적인 대화,

아이들 간의 친함과 다툼 등

예전 같으면 나에게 하지도 않았을 이야기들을,

어느 순간

와이프가 나에게

시시콜콜 이야기하고 있었고,

난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고 있었다.




육아휴직 후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와이프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초반에 오빠가 육아휴직을 한다고 했을 때

걱정했던 건, 다른 엄마들이랑 이야기할 때

남편이 어떤 일로 우연히 한 달을 쉬게 되었는데

집에 같이 있는 게 너무 불편해 죽을 것 같다는

말들도 하고, 어떻게 하루 종일 집에서 같이 있어?

하면서 우려 섞인 말들을 해주다 보니 나 역시도

그 불편함을 어떻게 해야 하나.. 였던 것 같아.

그런데 우리는 오빠가 쉬면서,

나나 아이들한테 너무 잘해주고,

오빠 스스로도 기운이 나 보여서

너무 다행스럽고

이 순간이 정말 소중하고 좋은 것 같아”




그래.


가정을 위한 쉼은 정말이지 꼭 필요한 것 같다.

특히나 나와 같은 중년의 남성들에겐.


그리고 나중에 일에서 은퇴를 하더라도

와이프와 행복하게 잘 살 자신이 생겼다.




keyword
이전 12화012 나 4 - 요리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