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남자의 잡생각
나에게 골프는..
취미가 아니라 일이었다.
오랜 기간 기획 업무를 하다가
잠시 영업 팀장으로 발령이 난 적이 있었다.
회사 생활의 시작과 동시에 기획업무를 한 탓에
한 참 질려 있을 때여서,
스스로 영업을 좀 해 보겠다고 나섰고,
보스는 제휴사들을 관리하는 영업팀장으로
날 보내 주었다.
그 팀에 발령받았을 때,
팀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팀장님, 당장 가서 골프부터 등록하세요.”
“응. 업무 좀 파악하고, 연습할게.”
“아네요. 일단 골프부터 배우셔야 해요.”
이것들이 일은 안 하고, 골프부터 배우라니.
일단 1:1로 팀원들과 미팅을 잡고, 이 팀이 가진
이슈들과 사람들부터 파악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팀원 중 한 명이 말한다.
“팀장님, A 카드사 주관 골프 라운딩이 잡혔어요.”
“뭐라고? 언제?”
“한 달 후 토요일이요.”
그때부터 내 맘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건 4명이 모여 친목을 도모하는 수준이 아니고,
카드사 주관으로 수십 명이 모여
대규모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이다.
하필 첫 골프 라운딩이 그런 자리라니.
당장 회사 앞 골프장을 등록하고
점심마다 골프장에 가서 레슨을 받았다.
그리고 저녁에는 스크린 골프장도 가서
연습도 하고.
그런데 아무리 연습을 한다고 해도
4주 만에 골프를 잘 친다는 것은
택도 없는 일이었다.
중간에 팀원과 머리를 올리러 나갔는데
(처음 골프장을 나가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단다.)
공식적인 자리에 나가기 전에,
골프장 분위기라도 알아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우와..
이건 진짜..
좌절에 좌절.
과연 영업팀으로 와서 첫 공식 일정을
해 낼 수 있을지 자신감이
팍! 떨어졌다.
벌써 5-6년 전 일이지만
그때의 나는 무슨 일이든 다 자신이 있을 때였다.
새로운 일이 들어와도
‘그까짓 거 그냥 하면 되는 거지’란 생각이었고,
실제로도 꽤 성공적으로
일을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근데.. 이번엔 달랐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잘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시간은 흘렀고,
수십 명이 카드사 주관 골프 대회에 참석했다.
(당시 팀원들이 자기들이 안 쓰는 골프채, 골프복,
장갑, 모자, 골프 가방 등을 주어서
장비는 얼추 갖춰졌다.)
CEO들은 없었지만,
부사장, 전무, 상무, 이사, 팀장..
각 회사의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모였고
난 어느 팀인가 배정이 되어
그들과 함께 라운딩을 돌았다.
첫 스윙.
깡!
요란한 소리와 함께 공은 날아갔고…
어디로 떨어졌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긴장 많이 하셨나 봐요. 맘 편히 하세요.”
그네들끼리는 영업일을 오래 해 와서인지
예전부터 알아 온 사이로 보인다.
“아.. 네..”
그런데 라운딩이 계속 진행이 되는데도
좀처럼 내 샷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옥 같은 라운딩.
온몸을 타고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가 없다.
제발.. 빨리 끝나기를..
이토록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했던 적이 있던가?
그렇게 경기는 끝났고
모두 모여 술파티가 벌어졌다.
갑자기 주최사에서 상을 마련했다고 한다.
일등상, 이등상, 무슨 상, 무슨 상,
참 이름 한 번 거창하게 잘 짓는다.. 생각하는데
내 이름이 호명된다.
‘날? 왜?’
의아해하면서 단상으로 오른다.
“호명하신 분은 A회사에서
오랫동안 기획일을 하시다가,
이쪽 영업일은 처음 해 보시는 팀장님이십니다.
골프를 배운 지가 한 달 밖에 안 되셨다고 하는데
(해당 카드사를 맡고 있는 팀원이 이야기했나 보다.), 역시.. 오늘의 꼴찌가 되셔서
수고상을 드리려고 합니다.”
젠장.
그때의 창피함이란.
그 이후 약 1년 정도 영업일을 하면서
자주 골프를 치러 나간 것 같다.
골프는 친목이지 일은 아니라서,
결국은 상대방에게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사람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고,
기획일을 했기에 다양한 옵션들을 계산하고
제안해서,
그들의 맘을 샀고,
우리도 큰 성장을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영업에서 친목은 중요했기에
한 달에 못해도 2번 정도는 라운딩을 나간 것 같은데
그때마다 참 곤혹스러웠다.
무엇보다 골프에 흥미가 없었고,
연습을 하러 가기가 귀찮았다.
연습을 안 하니,
라운딩을 가면 형편없는 실력이었고,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그럼에도 왜 이렇게 골프에는 정이 안 갔는지..
빈곤의 악순환이라더니
나에게 골프는 딱 그런 느낌이었다.
1년의 시간이 지나
보스가 기획 쪽 업무에 구멍이 생겼다며
다시 기획 업무를 봐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이전보다 승진을 하여
기획으로 다시 복귀했으니 큰 불만은 없었다.
원했던 영업 경험도 쌓았고,
스트레스받는 골프를 안 쳐도 되고.
(그런데 골프를 제외하면 영업일도
나에겐 꽤 맞는 듯했다.)
근데 승진을 하다 보니
이쪽에서도 골프를 칠 기회가 생긴다.
동료와의 친목이 아닌
내부 임원들과의 라운딩이 있는 모양이다.
물론 그건 거절이다.
그리고 영업일을 하면서 경험했던
골프 이후로는
골프채를 잡아 본 적이 없다.
나랑 안 맞아.
P.S. 생각해 보니, 공과 관련된 운동은
어릴 적부터, 나와는 궁합이 안 맞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