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 가족 16 - 아버지 (3)

중년 남자의 잡생각

by B 밀


아버지의 모습이 싫어

항상 거리를 두고,

되도록이면

대화를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부모님 댁을 방문하면

항상 와이프와 아이들에게

할머니, 할아버지랑 이야기하라고 하고,

난 TV만 본던지,

방 안에 들어가서 잘 나오지 않았었다.


아직 어린 나의 아이들에게도

법대를 가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아이들에게 노래를 불러 보라던가

춤을 한 번 춰 보라던가 할 때,


아이들이 쑥스러워 잘 안 하려 하면

“에이. 바보 같이~ 그것도 못해?”

라고 내가 어릴 적부터 들어 노이로제가 걸린

“바보같이~”를

아이들에게 말씀하시곤 하셨다.

(화를 내도 듣지를 않으시니..)




육아휴직 후

어찌어찌하다 보니,

우리 가족은 3주에 한 번씩 방문하지만,

난 매주 부모님 댁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버지와 대화를 하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었다.


여전히 말씀 중에

타인의 히스토리를 읊고 계시고,

여전히 나와는 이제 친구라 부를 수도 없는

검사였던 녀석의 이야기를 하시지만,


나의 육아휴직 기간,

아버지의 대화에

점점 스펙트럼이 넓어지기 시작함을 느낀다.


내가 쉬면서 긍정의 힘이 넘쳐서,

어떤 말씀이던지

좀 편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도 있을 것 같고,

(사실 이게 가장 큰 이유일 거다.)


아버지 스스로도

검사, 정치, 아는 사람에 대한 장황한 소개 말고

일상생활의 이야기를 하시기 시작한다.


나의 아이들에게 법대 가서 뭐하냐며

너희들, 하고 싶은 거 하라는

놀라운 말씀을 꺼내시는가 하면,


어디 마트에서 모자를 봤는데 이쁘더라며,

같이 한 번 보러 가자고도 하시고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과거에 비해 그 사람에 대해 소개하는 사족이

확연이 줄어들었다.




육아휴직이 끝날 무렵,

“이제는 매주 못 오겠네요. 그런 의미로..” 하면서

아버지를 포옹해 드렸다.


‘살면서 아버지와 포옹을 한 적이 있던가?’


아버지 역시 어색해하시며 날 포옹하셨는데,

그때의 환한 미소를 잊을 수가 없다.


“너 자주 안 오면 심심해서 어떻게 지내냐?”


왠지 울컥해 온다.

거의 50년 만에

아버지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눴는데,

아버지는 이제 아흔이시고,

이 시기가 길지 않다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



P.S. 몇 번씩 언급한 바와 같이 육아휴직기간 동안

모든 일이 다 잘 풀렸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내 한평생의 버거움이라

생각했던, 아버지와의 관계 개선이,

잘 된 모든 일 중 으뜸이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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