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9 동료/친구 9 - 이태원

중년 남자의 잡생각

by B 밀


집에서 이태원이 멀지 않다.


결혼 전에도 이 동네에서 살다가

결혼 후에 같은 동네에서 이사만 했을 뿐

내내 같은 지역에서 15년 넘게 살고 있다.


이태원이 가깝다 보니,

결혼 전에는 자주 갔던 것 같다.


젊음의 거리, 이국적인 풍경,

흥분과 쾌락의 성지




그러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나서는 이태원을 갈 일이 없었다.


시끄러움, 교육상 안 좋음.

타락한 젊은이의 성지.


같은 이태원인데 나의 인식이 바뀐 것 같다.




육아휴직 기간,

와이프와 둘째가

일이 있어 함께 나가고

큰 애와 끼니를 뭘로 때울까.. 하다가

이태원을 오랜만에 가봤다.


아빠와 딸의 둘만의 데이트.

브런치 하는 이 시간이 왜 이렇게 좋았었는지.


그 이후 이태원은

가족과 함께 점심을 먹기 위해

자주 찾는 장소 중 하나가 되었다.


이국적인 풍경, 맛있는 점심식사,

행복한 가정의 성지




어느 날,

자전거를 가끔 같이 타는 동네 동생들이자

직장 동료들이 이태원을 한 번 가보자고 한다.

(동생이지만 나이가 40대 중반이다.)

젊음을 느껴보고 싶다며

형님도 때때로 이런 기분전환이 필요하다고 꼬신다.



낮에 가족들과 함께가 아닌,

밤에 가 본 이태원은 진짜 백만 년 만이다.

도로며, 술집이며

정말 선남선녀들로 넘쳐난다.


술을 한 잔 씩 먹고

기분이 업 된 동생들이

클럽을 가자고 한다.


계속 손서래를 치는 나에게

잠깐 들리는데 어떠냐며,

양팔을 붙잡고 클럽을 들어간다.

(이렇게 표현하니, 조금.. 마음이 편하다.)


시끄러운 음악, 젊은이들의 흐느적거림,

눈 둘 곳 없는 의상..


영 어색함에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느껴진다.


10여 분 정도 있다가,

동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계산만 하고, 먼저 가겠다고 하고 나선다.



젊음의 거리, 이국적인 풍경,

흥분과 쾌락의 성지,

더 이상 내가 있어서는 안 되는 곳.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


‘난 이제 가정적인 아빠니깐,

저런데 가면 안 되지.’라고

살짝 들렸음에도 자책하는 머릿속 A와


‘아.. 사람들이 욕해도

좀 더 구경이나 할 걸 그랬나?’라고

아쉬워하는 머릿속 B와


‘늙은이가 주책이군.’이라고 욕하는 머릿속 C가

계속해서 싸우고 있다.



‘머리’ 속 A, B, C가 싸우는 사이,


‘다리’는 자연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가고,

‘팔’은 자연스럽게

아빠에게 달려오는 아이들을 안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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