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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과수 Nov 22. 2017

무과수의 집

나에게 집이란 단순히 잠을 자고 밥을 먹는 공간이 아닌 그 너머의 더 큰 의미가 있다. 나는 집에서 많은 것을 한다. 글을 쓰고 책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차도 마시고 직접 요리를 해서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때로는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기도 한다. 나에게 집이라는 공간은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자, 나를 위로해 주는 위안의 공간인 샘이다.


부산 토박이로 22년을 살다 23년째 되던 해 서울로 상경했다. 서울에서의 나의 첫 번째 집은 대학교 기숙사였는데, 그때도 나름 주어진 작은 공간을 소소하게 꾸몄었다. 좋아하는 포스터를 붙이고 잡지와 소품을 가져다 놓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4인이 생활하는 공동의 공간에 혼자만의 시간이 있을 리 없었다. 음악을 크게 틀어 듣고 싶지만 이어폰을 꼽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고, 친구를 방으로 데려오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물론 좋은 룸메들을 만나 편하고 재밌게 생활했지만, 2년 정도 살고 나니 점점 자취에 대한 열망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학교 입학 후 3년째 되던 해, 나는 첫 자취를 하게 되었다. 드디어 나의 공간이 생긴 것이다. 나의 취향대로 집을 꾸미기 시작했고, 비어있던 공간은 서서히 온기를 가지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밖에서 힘들어 지친 나를 보듬어주는 아늑한 보금자리가 된 것이다. 하지만 취업으로 급하게 이사를 가게 되면서 이 행복들은 사라지고 만다. 빨리 집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했고, 그런 조급함은 공간에 대한 합리화를 하게 만들었다. 손에 쥐고 있는 돈이 얼마 없었기에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별로 없었다. 그렇게 나는 반지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괜찮다고 생각했던 집에 점점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해가 중천에 떠있을 시간에도 우리 집은 여전히 깜깜했고, 빨래를 널어놓으면 꿉꿉해질까 창문을 항상 열어두어야 했다. 빨래를 널 공간도 없어 빨래 대가 아닌 옵션으로 있던 옷걸이에 걸어 말려야 했다. 그러다 비가 오던 날 벽에 물이 새기 시작하면서 집에 대한 애정이 뚝 떨어지고 말았다. 아무리 집에 정을 붙이려고 이리저리 구조도 옮겨보고 꾸며봐도 도저히 마음이 가지 않았다. 집이 작아서가 아니다. 반지하라서가 아니다. 집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 아주 기본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는 공간에 대해 화가 났고 서글펐다. 이런 주거 환경에 놓여 살고 있는 사람들이 나뿐만이 아닐 텐데 말이다.


다행히 반지하 집은 단기 계약을 했던 터라 계약이 끝나기 한 달 전, 나는 이사를 갈 집을 미친 듯이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물론 서울에 집은 많다. 내가 가진 조건에 맞는 집이 잘 없어서 그렇지. 이때 처음 현실의 벽에 부딪혀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집 다운 집을 구하게 이렇게 힘든 거였구나. 내가 가진 보증금으로는 집을 찾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구나. 그렇게 집을 구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 했을 때, 운명적으로 지금의 집을 만나게 된다.


갑자기 서울로 올라와서 집을 구해야 하는 친구가 있어 혼자 일 때보다 조건이 조금 더 나아졌다. 그렇게 룸메가 될 친구와 함께 집을 찾다 인터넷에 올라온 복층 집 매물을 발견했다. 드디어 집을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집을 보러 갔더니 어젯밤 집이 팔려버렸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부동산 아주머니께서 당황해하시더니, 재빨리 연락해 같은 건물에 있는 다른 층 집을 보여주셨지만 사진과 다르기도 했고 집주인이 보증금을 더 올리는 바람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아쉬움이 가득한 나의 표정을 본 부동산 아주머니께서 '예쁜 집 하나 있는데, 그거 보여줄게! 가자!'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그런 아주머니 뒤를 졸졸 따라가게 되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작은 부엌이 있었고 작은 통로를 들어가면 방이 나오는데, 나는 그 방을 보자마자 탄성을 내뱉었다. 마치 유럽에 있을 법한 창문을 가진 다락방 같은 형태를 한 집이었다. 이 집을 만나려고 그렇게 힘든 시간을 지나쳐왔나 싶을 정도로 첫눈에 반해버렸다. '너무 마음에 들어요!'라는 말과 함께 집 곳곳을 확인하고 문제가 없어 바로 계약을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알고 보니 아주머니에게 나와 비슷한 또래의 딸이 있으셨고, 내가 딸 같아서 애정을 가지고 대해주셨던 게 아닌가 싶다. 연고도 없는 타지에 나를 예뻐해 주시는 아주머니가 생겨 나도 무척이나 기뻤다.






몇 안 되는 보증금을 손에 쥐고서, 서울에 있는 수많은 집들 중 내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집을 찾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넓지 않더라도 깨끗하고 적어도 기본은 되는 집을 찾고 싶었을 뿐이데, 그런 집 찾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다 드디어 보자마자 한눈에 반해버린 집을 만나게 되었고 8월 말 이사를 앞두고 있다. 의, 식, 주 중에 하나인 '집'. 인간생활에서의 기본적인 것조차 쉽지 않은 이 삶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덤으로 왜 집을 '보금자리(지내기에 매우 포근하고 아늑한 곳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라 부르는지 더 깊이 이해하게 된 시간이었다. 앞으로 나에게 몇 번의 이사가 더 남았을지 모르겠으나, 보금자리를 찾는 그 시간은 불안하면서도 지금보다는 더 나을 거라는 희망이 항상 함께 할 것이다. <20170730 무과수의 일기>




이렇게 서울에서의 4번째 집을 만나게 되었고, 나는 그 집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무과수의 집>은 4번째 집에서 살아가는 나의 일상을 기록하는 글이다. 바삐 돌아가는 경쟁사회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과연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나는 집이라는 공간이 충분히 그런 역할을 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과수의 집>에서 이런 공간과 평범한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스스로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안식처가 생기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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