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집회 의사일기 #5
1월 4일 낮, 광화문 쪽 퇴진 집회로 향할 계획이었다. 이때 동시에 윤석열 체포를 요구하는 한남동 집회가 1박 2일간 이어지고 있었다. 한남동 쪽에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었는데, 탄핵 반대 집회 측이 점점 주위에 많아지고 있었다. 윤석열 퇴진! 보건의료청년학생 모임 톡방에 한남동 집회에 의료진이 한 명도 없어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떴다. 택시를 타고 바로 한남동으로 향했다. 가는 중에 부스를 지키는 학생에게 전화가 왔다. 필요한 의료물품 목록을 말해달라고 해서, 약은 있고 드레싱 용품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목록을 주었다. 중간에 교통 통제로 통과할 수 없어 내려서 집회까지 걸어갔다. 오가는 사람들로 거리가 붐볐다. 탄핵 반대파가 공격적으로 나오거나 폭력을 휘두르지 않을지 걱정도 되고 무섭기도 했다.
집회 옆에 버스가 한 대 있었다. 길어지는 집회에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마련된 버스이다. 조금 떨어져서 의료부스가 있었다. 도착해서 무엇보다 제일 많이 놀란 점은, 약국에서 구할 수 있는 온갖 상비약 -감기약, 타이레놀 등- 이 박스 째 쌓여 있었다. 정확한 과정은 모르지만, 필요한 물품들을 알리면 사람들이 즉석으로 후원해 배송하는 구조 같았다. 내가 요청한 물품도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스텝들이 사왔다.
집회 장소는 넓지 않았지만, 주위에 포진한 탄핵 반대 집회 사람들, 무대의 큰 소리 등으로 더 긴장되었다. 워낙 추운 날씨였고, 내가 간 때가 이미 2일째 철야 집회였기에 두통, 소화불량 등 신체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부상 환자도 있어 염좌 처치나 간단한 소독 및 드레싱을 했다. 의료부스에 난로가 있었기에 추위로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가끔 난로를 쬐다 현장으로 돌아갔다.
집회 내내 겨울이어서 날씨가 추웠다. 특히 이날은 저녁 되어 눈이 펑펑 내렸다. 집회 본부에서 공급받은 은박 담요를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후 다른 의료진들이 왔고 나는 교대를 해서 집에 왔다. 그 밤, 그 새벽에도 사람들이 길 위를 지켰다. 의사와 간호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다음 날 새벽에 부스가 빌 까봐 다시 집회 장소로 출발했다. 집을 나오니 온 세상이 하얬다. 걱정하며 집회에 도착하니 도로에도 눈이 있었고 길 양옆으로는 눈 녹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의료부스에도 사람들이 지키고 있었다.
오전 10시에 윤석열 체포 촉구 기자회견으로 집회가 마무리됐지만, 사람들은 조금 더 남아있었다. 끝나고 보건의료청년학생모임 깃발을 포함해 사람들이 다 같이 깃발을 박자 맞춰 좌우로 흔들었다. 하얀 풍경 속 검은 아스팔트, 그리고 길 위 은색 키세스들이 반짝였다.
덧붙여, 그 자리에 있지는 못해도 마음은 함께하는 시민들이 있었다. 무언가 물품이 필요하다고 올리면 이후 그 물품들 우수수 배송되었다. 후시딘이 필요하다고 말했을 때 30분~1시간쯤 뒤 후시딘 15개가 배송됐다. 그랬기 때문에 의료부스에도 여러 상비약이 박스째로 쌓였다. 의료인들은 사이사이 의료부스 가방 책상에 약품들을 정리했다. 집회에 앉아 있지 못해도 물품을 보내는 시민들이 우리의 든든한 뒷배처럼 느껴졌다. 추운 날씨와 집회 반대파에 대한 두려움이 주는 긴장과 후원물품들, 사람들이 건네주는 먹을거리들의 따뜻함이 마음속에 뒤섞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