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집회 의사일기 #4
탄핵안 가결 때 내가 미처 예상 못 했던 점은, 그 이후로 헌재의 시간이 너무나 길고 지난하게 이어질 거란 사실이었다. 윤석열이 탄핵당한 2024년 12월 14일부터 탄핵 인용으로 파면이 된 2025년 4월 4일까지, 헌재의 선고에는 무려 111일이 걸렸다. 그동안 우리 시민들은 계속 싸워갔다. 매일, 매주 집회에서 탄핵과 사회 개혁을 외치고, 여러 계열의 단체에서 기자회견 및 서명을 받았다. 의료부스 또한 계속되었다. 서울에는 천막 지붕이 있는 의료부스 한 개, 상황에 따라 두 개를 열고 운영했고, 부산에는 의료가방이 있는 책상을 의사들이 지켰다. 나는 평일에는 부산, 주말에는 서울에 가서 집회에 참여했다.
집회가 거의 생활이 되어버렸다. 그냥 우리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계속 나왔던 것 같다. 그 이상의 생각도 잘 들지 않을 정도의 절박함이었다. 한국의 운명이 달린 이 시점에서 시민으로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장은 참으로 크고도 다채로운 공간이었다.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무대에 나와 자신의 이야기와 윤석열 퇴진을 외쳤다. 이들은 성평등, 노동자의 권리, 안전과 평화, 민주주의를 짓밟는 윤석열을 규탄했으며, 소수자들, 노동자들, 그리고 모두가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에 대해 말했다. “내란수괴 윤석열을 파괴해라” “국민의 힘 해체하라” 등의 구호가 울려 퍼졌다. 음식을 나눠주는 다양한 푸드트럭과 사람들이 상주하는 부스가 있었고, 가판에서 여러 이슈에 대해 말하고 서명받는 사람들도 있었다. 기억 나는 건 홈리스행동에서 동자동 쪽방촌 공공주택 사업 추진의 필요성을 말하고 서명을 받은 것이었다. 그곳에서 이전에 같이 활동하던 친구를 만났다. 그동안 얼굴을 못 봤는데, 이런 데서 만나다니 반갑고 묘했다.
의료부스의 흰 책상 위에는 상비약과 소독 드레싱 용품이 의료물품이 빼곡히 담긴 주황색 가방이 놓여있었고, 그 주위에는 회색 플라스틱 의자가 여러 개 있었다. 그 안에서 의사, 간호사, 약사, 간간 치과의사 및 한의사와 보건의료학생들이 부스에서 환자를 기다렸다. 환자가 오면 학생들이 환자의 성별, 나이대, 증상을 물어 목록에 적었고, 그에 맞춰 의료인들이 치료를 진행했다.
나 또한 주말 집회 때 대부분 서울 의료부스에 있었다. 환자를 진료해 본 경험이 있는 의사로서, 그 경험을 최대한 활용하여 각 증상에 맞는 의료를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대부분의 환자-시민들의 증상은 경증이었다. 소화불량, 두통, 월경통 등에는 약을 처방했고, 넘어져서 까지거나 베인 상처에는 소독하고 밴드와 거즈 반창고를 덮었다. 간간이 크게 상처가 나거나 기저질환이 있는 환자들도 있었다. 보통 평일 저녁과 주말에 집회가 있었기 때문에 바로 병원을 방문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고, 응급처치라도 진행하고 필요하면 병원에 가라고 당부했다. 자그마하지만 내 능력으로 시민들을 지원할 수 있어서 보람찼다. 환자들을 진료하는 것은 나에게 즐거운 일이다.
집회 시기 중 내가 의사, 의료인으로서도 뜻깊게 여긴 일이 하나 있었다. 한 집회가 급하게 잡혀 공식적인 의료부스는 없고 대신 보건의료단체연합 회원들이 의료가방을 들고 참석했다. 이날 집회 중간에 경복궁역 쪽으로 잠시 편의점을 들를 일이 있었는데, 횡단보도 안내 스탭이 나에게 말했다.
“오늘 의료부스 없으니까 조심히 다니세요.”
이 말을 듣고 의료부스가 생각보다 큰 지원군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진 기술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고, 그 지원이 생각보다 든든하게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면서도 한편 책임감을 느꼈다. 사람을 치료하기에 사회의 아픔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며, 사람을 아프게 하는 사회면 맞서 싸워야 한다. 스스로 되뇌게 되었다.
집회 의료부스에는 보건의료계열 청년 학생 또한 자리했다. 12월 10일부터 보건의료단체연합의 청년 및 학생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윤석열 퇴진! 보건의료청년학생 모임>활동을 시작했다. 간호대, 약대, 의대, 치대, 한의대 등 다양한 보건의료계 학생들과 청년들이 참여했고, 특히 간호학과 학생들이 많았다. 청년학생 모임 톡방을 만들었고, 관심 있는 학생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여기저기 홍보했다.
학생들이 꽤 많이 모여 평균 170명, 많을 때는 190명에 달하기도 했다. 카톡방에 주로 집회 소식, 뉴스 등이 올라왔다. 학생들은 참여하여 진료보조를 맡거나 의료민영화 반대/공공의료 확충 유인물을 나눠주고 관련 서명을 안내했다. 많은 시민이 서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때로는 줄이 길게 늘어서기도 했다.
나는 의료부스가 보건의료인들과 학생들의 구심점이 되었다고 본다. 윤석열 퇴진 집회가 자신이 처음으로 참여한 집회인 학생들도 여럿 있었고, 몇몇은 집회 때마다 자리를 지키는 소위 “NPC”가 되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진료하고 간호하다가 의료지원을 하러 집회에 나온 자들도 있었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공간이 바로 의료부스였다. 집회 때는 의료지원과 공공의료 서명을 받고, 행진할 때는 보건의료단체연합 깃발과 윤석열 퇴진! 보건의료청년학생모임 깃발을 들었다. 의료부스에서 보낸 집회의 시간은 이들에게 어떠한 기억을 남겼을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시민임을, 살아있음을 느꼈다. 사회를 바꾸는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느꼈다.
발언하고 구호를 외치고 연대 공연하는 집회가 끝나고는 행진이 시작된다. 부산에서는 보통 이때 의료책상을 정리하고 행진에 따라나섰다. 다 같이 도로 위를 걸으며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평소에는 차만 다니는 도로 위를 당당히 걷는 우리의 모습이 짜릿했다. 부산 행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피켓에 하얀 전구들을 두른 피.꾸.(피켓 꾸미기)였다. 응원봉 뿐만 아니라 그 피켓도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반짝였다. 두 번째는 마! 였다. 행진 트럭에서 부산에 있는 국민의 힘 국회의원들을 하나하나 호명하면, 우리는 마! 하며 일갈했다. 박수영! 마! 조경태! 마! 걸으면서 킥킥 웃었다.
서울의 집회 행진은 트럭이 주로 10대, 때때로 5대였다. 각 트럭마다 깃발과 시민들이 섞여 대오에 섰다.
트럭 뒤 칸에는 사회자 둘과 음향 담당 스텝 한 명, 그리고 비상시 대처할 의료인 한 명이 탔다. 트럭 옆에는 집회 스텝과 민변 변호사가 대동했다. 트럭이 생각보다 흔들려서 앉아 있거나 사회자 자리의 철봉을 잡아야 했다. 행진 시간대가 해가 지는 시간대였기 때문에, 햇빛 속에서 행진하다 중간쯤 오면 어느새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트럭 위가 확실히 뷰가 좋다. 트럭을 따라오는 깃발, 그리고 응원봉을 든 시민들을 보면 장관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트럭에 오를 때마다 행진 모습을 사진으로 몇 장씩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