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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하 Aug 30. 2023

의대생들에게 인권국이 있었다.

한 때, 즉 2018~2019년도에 대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 협회(이하 의대협)에 인권국 부서가 있었다. 2020년에 의대협 구조가 개편되면서 실질적으로 인권국은 사라졌고, 그 해 의대 정원 증원 및 의대생 국시 거부 폭풍이 몰아치며 의대협 자체의 맥이 끊겼다. 그러나 의대협 인권국은 지금도 나의 기억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인권국에서 국장을 맡아 활동하기도 했지만, 인권국의 존재와 활동 자체가 의대생 사회에 유의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권국에서는 의대생 인권상황 실태조사, 퀴어문화축제 부스  행진 참여, 의대생 대상 인권 세미나  여러 인권 관련 사업을 진행했다. 국원 숫자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다들  부서를 애정했다. 동시에 인권국은 의대생 사회 내에서, 그리고 의대협 단체 내에서도 뜨거운 감자였다. 가장 핫했던 이슈는 퀴어문화축제 부스 참여였다.


의대협 인권국은 퀴어문화축제 부스 참여를 통해 의료기관에서 성소수자가 받은 차별을 조사하고, 의대협 인권국으로서 성소수자 인권 지지 의사를 표했다. 의대생 익명 게시판인 의대생 대나무숲에서 수많은 비난을 받았고, 같은 의대협 내에서도 반대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그들은 의대생들이 직접 동의하지 않은 바인데 왜 진행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사실, 의대협의 모든 사업들을 학생들의 직접 동의를 얻고 시행하지 않는다. 이러한 비판 및 비난을 받은 이유는 단순히 학생들이 이 사업을 반대하고 싶어서이다. 반면, 대나무숲에는 소수의 응원도 존재했다.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한 성소수자 의대생이 의대협 인권국 깃발을 보고 드는 반가움을 게시판에 남겼다.


돌아보면 의대협 인권국은 의미 있는 활동을 참 많이 했다. 의료계 학생으로서 조금 더 무게감을 실을 수 있는 말, 즉 의료와 인권이 교차하는 부분에 성명문을 냈다. 성명문에는 낙태죄 폐지, 트랜스젠더 비병리화, 병원 내 폭력사건 등이 포함되었다. 또한 의과대학 및 의학전문대학원 학생들에게 의료계 권위주의, 인공임신중절 권리, HIV/AIDS 인권 등 다양한 의료 인권을 배울 기회를 제공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의학연구소와 함께 의대생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시행하여 2018년 1,763명,  2019년 1,516명의 의과대학생이 참여했다. 해당 조사로 의과대학 내 폭력 및 강요, 성차별 및 성폭력, 그리고 사건 해결 과정의 문제에 대한 의미 있는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다.


의대협 조직 개편으로 인권국의 사업들은 없어졌다. 인권상황 실태조사 같은 경우 몇 년 치가 쌓이면 의미 있는 연구가 가능했을 것이다. 다른 사업들도 연속적으로 진행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많이 남는다. 그러나 의대협 내 인권국, 그 존재를 경험함으로써 단체 내 인권 부서의 필요성과 방향성을 생각할 수 있었다.


특정한 사람들을 대표하는 단체에는 인권 관련 부서가 필요하다. 그것도 이름만 있는 껍데기 조직이 아닌, 실질적으로 활동하고 목소리 내는 곳이 있어야 한다. 이 부서의 첫 번째 역할은 회원들, 특히 이 중 소수자와 약자의 권리 보호이다. 성폭력, 성차별, 그리고 권력에 기반한 폭력 등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를 보호하고 사건을 해결할 단체가 필요하다. 피해자의 목소리는 가해자, 그리고 다수의 큰 목청에 바스러지기 쉽다. 인권 부서는 이 불균형을 인지해야 한다. 피해자의 입장을 중심으로 하되, 사건을 종합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 역할은 해당 단체와 관련된 인권 이슈에 대한 발언이다. 특정한 사람들의 인권만을 주장하면 그 집단의 이기주의로 변질할 수 있다. 어떤 집단의 대표 단체는 사회 안에서 힘을 가지고 있다. 권력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 사회 내 책임에 대한 고찰 없이 자신의 이익만을 주장하는 단체는 이익집단으로 작용할 수는 있지만, 사회 내 다른 구성원이나 단체에 유의미한 단체로 인정받기 어렵다. 시민들의 지지도 받기 어렵다. 인권은 기본적으로 연대의 속성을 가지고 있어, 어느 한 집단의 인권만 칼로 잘라내 지킬 수 없다. 단체 내 사회적으로 소수자성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단체는 인권 문제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인권은 특정 부류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내 모든 구성원이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 나가야 하는 중요한 사안이다. 우리는 모두 사회 속에서 어느 순간 사회적 약자가 되며, 사회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때 모든 시민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ㆍ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받지 아니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10항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 속에서 이 조항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단체, 적어도 사회 내에서 대표성을 지닌 단체는 존재의 책임으로써 소수자의 권리를 지키고 인권 이슈에 목소리를 내야 할 필요가 있다. 개인과 단체, 사회가 함께 인권을 지켜나갈 때 우리 모두가 정의롭고 인간답게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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