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아파트 문을 두드린다. 허리가 굽고 머리가 하얀 여성 어르신이 문을 열고 나왔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의과대학 및 간호대학 의료봉사동아리에서 왔습니다. 사회복지관과 같이 활동하고 있어요. 혈압(피로 인해 혈관이 받는 압력)과 혈당(핏속 당의 농도)을 체크해 드리고 건강상담 도와드리려고 하는데, 들어가도 될까요?”
주민이 반가운 기색으로 학생들을 받아들인다.
“그래요, 들어오세요.”
“네, 먼저 혈압과 혈당 재 볼게요. 식사하신 지 몇 시간 되셨어요?”
“어, 2시간 정도 되었어요.”
미리 챙겨 온 혈압 기계와 핏속 당 농도를 알 수 있는 혈당계를 써서 해당 수치를 잰다. 혈당은 식사 후 몇 시간이 지났는지에 따라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미리 확인해야 한다.
“혈압은 123/82로 괜찮고, 혈당이 160 가량으로 당뇨까지는 아니지만 다소 높네요. 고혈압 약이나 당뇨약을 드시고 계신가요?”
“고혈압 약은 먹고, 당뇨약은 따로 먹지 않아요.”
이후 학생들은 전반적인 생활이나 건강상태에 대한 문진을 진행한다.
“요즈음 건강적으로 불편한 게 있으신가요? 어떤 게 불편하신가요?”
“하루에 몇 끼 드세요? 요즘 우울감이 들지는 않아요?”
“최근 6개월 간 넘어진 적이 있나요?”
등의 질문을 통해 건강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고, 만약 의료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이 있다면 체크해 놓는다.
나는 의료봉사동아리에서 8년째 활동하고 있다. 의과대학 일 학년 이학기 때부터 선배 따라 시작하여 쭉 활동했고, 지금은 의사로서 학생들의 활동을 관리한다. 봉사활동은 임대아파트 내 사회복지관과 협력해서 진행한다. 학생들은 복지관에서 준비된 의료 용품들을 챙기고 주민들의 집을 방문한다.
문진이 끝나고 복지관으로 돌아와 어르신들이 어떤 건강 문제가 있는지 정리하고, 그 내용을 사회복지사 선생님과 나에게 발표한다. 우리가 학생들과 어떤 도움이 필요할지 토의한 후 우리의 결정 하에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어르신의 집에 재방문하거나 어르신과 병원을 연결시켜 준다. 요즘은 건강이 안 좋은 주민분들을 대상으로 매달 한 번씩 학생들이 방문하는 봉사 체계도 만들었다.
어르신들의 필요는 다양하다. 눈의 압력이 높아져 생기는 녹내장, 몸의 대동맥 속 막이 찢어지는 대동맥 박리 등 시급한 질환이 있었던 어르신들도 있고, 지속적인 허리통증과 무릎통증을 호소하는 어르신도 있다. 큰 건강적 문제는 없지만 혼자 밥을 해 먹기 어려워 반찬 배달을 원하시는 분도 있었다. 단순히 건강을 확인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사 선생님을 통해 필요한 상황에서 후속조치를 하는 점이 우리 동아리의 가장 큰 장점이다.
많은 어르신들이 학생들을 반긴다.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방문하는 어르신들의 상태는 눈에 띄게 좋아지기도 한다. 학생들 또한 어르신들을 보며 환자를 의학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에 대해 배우고, 자신이 의미 있는 행동을 한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다만 보람이 자기만족에서 끝난다면 의미 있는 봉사활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봉사활동에서 자기만족이란 것은 참 복잡하다. 이 자기만족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겠다. 하나는 내가 ‘의미 있는 일을 했다’이고, 다른 하나는 ‘이 활동을 한 나는 좋은 사람이다’이다. 첫 번째 생각은 꼭 필요하며, 이러한 만족을 위해서는 내가 한 활동이 진정으로 대상자에게 도움이 되는지, 즉 활동의 결과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만족은 다소 멀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봉사활동의 중심은 대상자가 아닌 ‘착한 나’가 된다.
봉사활동의 중점을 자기 자신에게 두는 것은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내가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전에 농촌봉사활동을 갔을 때 같이 갔던 친구가 한 말이 있다.
“나는 정말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농촌 분들은 잘 사시는구나.”
그 친구가 봉사활동을 깎아내리려는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봉사활동이 사정이 많이 어려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인식은 은은하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물론 봉사활동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언제나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이라는 공식은 맞지 않다.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하려고 하면 나도 모르게 대상자를 평가하게 된다. 이 사람이 내 도움을 받을 만한 사람인지, 도움에 있어 감사함을 표하는지를 따지게 되며, 나도 모르게 시혜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다.
나는 봉사활동이란 사람과 사람을 잇는 자율적인 활동이라고 정의한다. 우리 모두가 서로의 도움을 주고받으며 사는 사회에서, 도움이 필요하지만 사회적 지원이 비어 있는 곳에 의무감이나 대가 없이 도움을 채우는 작업이 봉사활동이다. 나와 동아리 사람들은 봉사활동을 통해 우리 주변을 벗어난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 봉사활동이라는 말도 가능하면 ‘자원활동’이라는 말로 바꿔서 쓰려한다. 봉사의 사전적 정의는 “국가나 사회 또는 남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힘을 바쳐 애쓴다”로,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한 활동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자원활동’ 은 남을 위한 활동이 아닌, 온전히 나의 자유의지로 행하는 활동이다.
요즘 자원활동을 ‘그냥’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다. 선하고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나라에 세금을 내는 것처럼 당연하게 사회구성원으로서 나의 밥값을 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내 의지와 자유를 가지고 ‘밥값’을 할 수 있는 것이 참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