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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첩 Jun 14. 2019

연필이가 내 흠이라고?

수첩의 소개팅

나는 20대 후반부터 결혼 전까지 몇 번 소개팅을 했다.

상대방은 내 이름과 나이, 사는 곳, 하는 일, 주선자와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를 전달받고 나왔다. 나 역시 비슷한 정보를 가지고 자리에 나갔다. 그 사람을 설명할 수 있는 객관적인 정보라는 것은 사실 몇 가지 없다.


상대방은 결혼을 염두하고 소개팅 자리에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간단한 호구조사(?)가 대부분 진행됐다. 그게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결혼이라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쏟을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얼른 판단하고 싶었을 테니까. 물론 그중에 과하게 조급한 사람도 많았다. 내 은퇴 후 커리어에 대해 묻는 사람도 있었고, 자기 누나들 성격을 설명하면서 이런 성격의 사람과 잘 지낼 수 있겠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간단한 호구조사에 빠질 수 없는 것은 가족관계다. 가족 구성원은 어떻게 되는지를 물었다. 넌지시 부모님에 대해서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깊이 묻지 않았다. 그 이후로 넘어가는 것이 형제관계. 형제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동생은 몇 살인지, 뭘 하는지는 거의 꼭 물어보는 질문이었다. 아마도 첫 만남에서 '어른'인 부모님에 대해서 자세히 물어보는 게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 부모님의 재산이나 직업 같은 걸 물어보면 속물처럼 보일까 봐 주저하는 것도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부모님보다 가볍게 물어보기에는 형제자매가 더 낫다고 여기는 걸까. 내가 언니나 오빠가 있다고 했더라도 이렇게 질문을 많이 받았을까. 동생이 있다고 하면 왠지 실없는 질문도 더 많이 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대뜸 동생도 수첩 씨처럼 키가 큰가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내 키는 그렇게 크지 않다) 동생은 공부를 잘하나요? 동생이 학생인지 아닌지도 안 물어보고 저렇게 질문한 사람도 있었다.


연필이에 대해 말했을 때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다


나중엔 거의 자동으로 연필이에 대한 대답을 하게 됐다. 동생은 자폐성 장애가 있고, 현재는 학교를 졸업해 주간보호센터를 다니고 있다고. 상대의 빠른 판단을 위해, 그리고 쓸데없는 추가 질문을 받지 않기 위해 빨리, 정확히, 간단하게 고지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다.

이후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 중 하나였다.

첫째는 잠시 침묵하는 경우. 그러고는 멋쩍게 분위기를 전환하려 한다. 혹은 자신이 아는 자폐성 장애에 대한 지식을 끄집어내 공감하려 노력한다. 간혹 천재적으로 특정 능력이 뛰어난 서번트 증후군을 떠올리고는 "동생분은 어떤 걸 잘해요?"라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둘째는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는 경우. 아, 그렇군요, 하고 자기 이야기를 시작하거나 나의 다른 점에 대해 물어본다. 진짜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예의나 배려 차원에서의 반응인지는 잘 모르겠다.

셋째로 위 둘 중 한 가지의 반응을 보이며 시작하다가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걸로 마무리 짓는 경우다. 침묵을 했다가 나에게 힘내라며 파이팅을 외친 사람도 있었다. 다른 누군가는 그게 뭐 별거냐는 식으로 대꾸하고는 그동안 상처가 많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억에 좀 깊이 남는 말은 "흠 없는 사람 없다 잖아요"다. 본인 나름대로 위로하려고 한 말 같은데, 좀 당황스러워 머리가 잠시 멍 했다. 나의 흠을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굳이 꼽아보면 나 자신의 약한 체력이나 스트레스 많이 받는 성격 같은 게 아닐까. 그런데 연필이의 장애가 내 흠이라니. 동생과 관련된 여러 편견들을 맞닥뜨려 왔지만, 내 흠이라며 위로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래도 대놓고 찡그리거나 나에게 그런 얘기를 왜 만나기 전에 하지 않았냐며 화를 내는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그 뒷 이야기


저 '흠 없는 사람 없다'는 사람은 소개팅 자리를 마치고 완곡히 거절의 뜻을 표했으나 계속 몇 번 더 연락을 해 왔다. 거절의 이유는 저 말 때문만은 아니었다. 저 말이 아니어도 해맑은 표정으로 엄청난 말을 많이 했기에. 다시 만나 그의 입에서 개구리처럼 펄쩍펄쩍 튀어나오는 말들을 아무렇지 않은 척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가 한 말들 중에 한 가지 "월급도 쥐꼬리만큼 받으면서 이렇게 돈을 쓰면 어떡해요?"라는 말이었다.   여러 번 저 얘기를 했다. 내가 밥값을 내려할 때도 그랬고 카페에서 계산을 하려고 할 때도 그랬다. 값을 내가 내고 그와의 자리를 마무리하고 싶었으나 실패했다. 그가 쥐꼬리를 여러 번 외치며 계산대에서 나를 떠다밀며 자신이 계산을 했기 때문이다. 카페에서는 꼭 내가 계산을 하고(밥값보다 큰 금액) 마무리 지어야지! 가 싼 걸 주문했음에도 카페에서의 합계액은 행히 밥값보다 더 비쌌다! 나는 얼른 카드를 내밀었다. 이 이후로 더 이상 그와 마주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빚진 것 같은 느낌은 더 싫었다.

그는 이번에는 떠다밀진 않았지만 큰 소리로 쥐꼬리 월급과 이렇게 돈을 쓰는 것에 대해 나무라듯 말했다.  소리에 눈이 커진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카드와 영수증을 건네받는 그 짧은 순간이 슬로모션처럼 길게 느껴졌다.  나는 내 월급이 얼마인지 말한 적도 없는데. 내 월급이 박봉일 거라 추측한 그는 이번에는 내가 계산하는 걸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식사보다 결제액이 많이 나온 이유는, 그러니까 돈을 이렇게 쓰는 건 꼭 나 때문 아니었다. 생과일 아낌없이 갈아 넣었다는 신메뉴와 여러 가지 케이크를 고른 것은 그였다.


주선자를 생각해서 완곡한 거절을 했던 건데 주선자까지 '기회가 자주 오는 줄 아느냐,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지' 같은 말을 해댔다. 아, 어디서부터, 무엇부터 말을 해야 할지. 결국 주선자와의 인연도 여기까지. 안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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