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첩 Sep 06. 2019

잘하는 거요? 음, 글쎄요

오해 또는 편견들(1)

결혼하고 맞은 첫 명절, 시어머니가 연필이에 대해 물어봤다. 이름을 물어봐 답했고, 학교를 다니냐고 해서 주간보호센터라는 곳을 다닌다고 말했다. 궁금한 것이 많지만 애써 참고 조심스레 물어보는 것이 느껴졌다. 시어머니는 한 번도 연필이를 본 적이 없었다. 며느리의 하나밖에 없는 동생인데 상견례 때도, 결혼식 때도 보지 못 했을 테니 궁금한 것이 당연하겠지.

https://brunch.co.kr/@muistikirja/22

그래서 최대한 쉽고 친절하고 잘 답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아, 그렇구나 라며 내 대답을 듣던 어머님은 이렇게 물어봤다.

동생은 뭘 잘하니?”

음, 글쎄. 잘하는 건 많은데. 자기만의 규칙 만들기? 연필이는 일상생활에서 어떤 물건의 위치, 생활하면서 루틴 하게 하는 일상의 순서들, 입는 옷들도 나름의 규칙이 있고, 그 규칙이 지켜져야 안심하고 마음 편해한다.

그리고 맛없는 것 감별하기? 연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이 있지만 그게 조금이라도 맛이 없으면 안 먹는다. 평소 안 좋아하는 음식도 아주 맛있는 음식점에 가면 잘 먹는다.

균형감각이 좋은 것? 연필이는 잘 넘어지거나 뭔가를 떨어뜨리지 않는다. 바퀴가 달린 롤러스케이트나 인라인스케이트 같은 것도 처음 탈 때도 거의 넘어지지 않았다. 뭔가를 들고 가다가 떨어뜨려 깨뜨린 적도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기대하는 답은 아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질문에 딱히 없다고 대답했다. 이 날도 그랬다. 시어머니는 자폐성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머리가 비상해서 뭘 하나를 천재적으로 잘한다던데, 라며 아직 잘하는 걸 못 찾은 걸지도 모르니 잘 찾아보라고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기억할 때는 머리가 비상한 것도 같은데. 그리고 잘 하는 걸 찾는 시간이 30년 정도로는 부족했을까.

 

살면서 이런 질문을 정말 많이 들었다. 소개팅에서도 들었을 정도니까.

https://brunch.co.kr/@muistikirja/17


나는 이런 상황에 익숙한 편이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악의도 없었고, 진심으로 궁금했으며, 어느 정도 자폐성 장애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그저, 이해가 조금 부족했을 뿐. 오히려 선한 마음으로 나의 동생에게 관심을 가지고 묻는 질문이 그것이었다. 위에서 말 한 나의 시어머니 처럼. 그래서 그런 따뜻한 관심이 고마웠지만, 어떤 기대감(?) 같은 것들을 깨는 답을 해야 한다는 게 아직도 어색하고 좀, 그랬다.


그림을 잘 그려요, 악기를 잘 다뤄요, 운동을 잘해요, 요리를 잘해요 같은 건 없다. 그러니 뭘 잘하냐고 물어볼 때는 처음 들어보는 걸 잘한다고 말해도 당황해하지 말았으면. , 그냥 뭘 잘 하냐고 묻는 일이 줄었으면 좋겠다.


+읽어주시는 분들께 항상 감사하는 마음 갖고 있습니다.

글을 쓸 때면 제 글이 아무 유익함이나 즐거움 없이 읽는 분들의 귀한 시간을 뺏기만 하진 않을까 걱정을 하곤 합니다.

+다음 주 금요일(13일,추석)은 한 주 쉬고 그 다음주 금요일(20일)에 다음 글을 올리겠습니다. 추석 즐겁게 보내세요. 고맙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연필이가 내 흠이라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