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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첩 Sep 20. 2019

나는 참 밝은 사람일까 좀 어두운 사람일까

오해 또는 편견들(2)


살면서 비슷한 시기에 상반된 두 가지 말을 들었던 적이 있다. 물론 각기 다른 사람에게서. 굳이 설명하자면 그 시기 나는 별로 불행하지 않았다. 그런 하루를 아주 감사하며 살았지만 크게 기뻐할 일이 생긴 그런 때도 아니었다. 그저 하루를 열심히 평온하게 살고 있던 그런 때였다.


수첩이는 참 밝아서 좋네.”

그리고는 내가 인상이 좋고 매일 기분 좋게 웃는다고 칭찬했다. 그래서 내가 아침에 오면 분위기가 밝아진다고 했다. 그리고 이어서 장애인 동생이 있는데 어쩌면 이렇게 티 없이 밝은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썩 기분 좋은 말은 아니었다. 아니, 어딘가 기분이 상하는 말이었다. 분명 칭찬으로 한 말이거나 격려하는 말인데. 아마 장애인을 가족으로 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이와 비슷한 말을 듣지 않았을까.

수첩이는 좀 더 밝아질 필요가 있어.”

저 말은 일종의 충고였다. 내가 항상 그늘이 져 있는데 그 이유를 알았다면서. 아마도 동생의 장애 때문에 힘든 일이 많겠지만(?) 그렇더라도 나의 인생을 위해서, 이제부터라도 나의 인생을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일단 나의 태도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나와 별로 대화도 나눠보지 않은 사람이 이런 식으로 충고를 하니 좀 당황스러웠다.

두 사람 모두 내 동생이 장애가 있다는 걸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각각 했던 말들이다.

장애인 가족을 둔 사람인데 밝다는 건 일종의 칭찬이라 생각해서인지 나의 앞에서 말한다. 아주 대견하다는 표정과 밝은 목소리로. 당황스럽고 기분이 썩 좋지 않지만 그 말에 나에 대한 애정과 따뜻한 마음이 묻어나 나는 대부분 고맙다고 답을 한다.

어두운 사람이라고 말할 때는 위에 나온 사람처럼 직접 말하는 경우는 잘 없었다. 주로 뒤에서 내가 장애인 동생이 있어서 그늘이 져 있는 것 같다는 얘기를 하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 한 명이 내게 그 이야기를 전한다. 그들은 나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이 이야기를 전해줬다. 아, 위에서 말한 그 사람도 다른 사람들의 내가 어둡다는 말을 듣고 나에게 충고를 하고 싶어 졌을지 모른다.


나의 어떤 순간의 모습들 중 일부를 각각 보고 나를 상반되게 판단할 수 있겠지. 사람은 여러 모습이 있으니까. 그냥 내가 좀 극단적으로 상반된 면이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말면 될 일이다. 그런데 왜 이런 말들이 연필이가 장애인이라는 걸 알고 나서 들리는 걸까? 밝다는 것과 어둡다는 것 모두 장애인을 가족으로 둔 사람은 기본적으로 어두울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할 수 있는 말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흠, 장애인 동생이 있다고? 그런데 밝네? 장애인 가족이 있으면 좀 어두울 줄 알았는데 아니구나. 그래, 참 보기 좋아. 칭찬할 만하군.

-어, 장애인 동생이 있다고? 그래, 그러고 보니 뭔가 그늘이 있는 거 같네. 그래, 장애인 동생이 있으니 어두운 거였어.


‘나’를 이루는 건 여러 가지다. 나의 타고난 성격, 건강, 경제적 상황, 다른 사람과의 관계와 그에 따르는 경험들. 아주 여러 가지의 것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겠지. 그런데 그중 한 가지에 대해 알고 나를 규정짓는다는 게 썩 유쾌하지 않다.


+추석 잘 보내셨는지요. 한 주 쉬고 다시 글을 올립니다.

+이것을 주제로 브런치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가 나도 모르게 자기 검열을 하고 있더군요. 이런 걸 듣고 그냥 넘기지 못하고 기억해 놨다가 생각하고, 그걸 활자로 쓰는 것은 너무 못난 짓이 아닐까. 전에 썼던 글에서 냉소적 모습을 보이는 내 태도가 열등감 때문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는데, 이것 또한 열등감이 아닌지 생각하다니. 그냥, 느끼는 대로 솔직해져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https://brunch.co.kr/@muistikirja/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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