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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첩 Sep 27. 2019

당신 옆의 장애인이 저 집에 살 수도 있는데

오해 또는 편견들(3)

지금 집으로 이사 오기 전 살던 동네에는 아주 잘 관리된 산책로가 있었다. 나는 자주 그곳을 걸었는데, 평일 낮 시간 동안은 인근 주간보호센터나 학교에 다니는 발달장애인들이 산책을 나오곤 했다. 인솔자로 보이는 사회복지사나 교사 외에도 장애인 한 두 명을 전담하는 ‘선생님’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아마도 대부분 자원봉사자인 것 같았다.

우리 집이 있던 동네에서 출발한 그 산책로를 한참 걷다 보면 고가의 공동주택이 보인다. 한 ‘선생님’이 자신이 맡은 장애인과 걸으면서 그 공동주택을 보며 “오, 저게 OO구나. 저기 봐요, 저기, 저게 그 유명한 OO에요, 우와, 좋다, 그쵸? ”라고 좀 높은 톤으로 말했다. 같이 가는 장애인이 별 반응이 없자 “바로 그 OO”라는 말을 반복했다. 나는 “그거 신기한 사람 선생님밖에 없어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빠른 걸음으로 그들을 지나쳤다. ‘선생님’은 오늘 처음 보겠지만 저 장애인들은 자주 이 길을 걸으며 봤을 텐데. 그리고 아마 그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주간보호센터일 테니 그 집이 자기 집이거나 자기 집이었거나, 비슷한 좋은 집에 사는 장애인들도 있을 텐데. 그 ‘선생님’은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 것 같았다. 같이 걷고 있는 장애인이 저 집에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왜 못 할까.


나 역시 장애인이 있다고 하면 왠지 경제적으로도 어려울 거라 짐작하는 사람을 꽤 여럿 겪었다. 나는 별로 질이 좋지 않아 사지 않는 것을 큰 맘먹고 나눠주는 사람이 있었다. 고기 먹은 지 얼마나 됐냐며(오늘 먹고 나왔는데?) 고기를 사주겠다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 고맙지만 괜찮다며 거절했다. 밥을 굶은 정도는 아닙니다, 라는 식의 말을 하면서. 이런 건 뭐, 어쨌든 친절한 마음에서 나온 거니까, 나도 웃으며 거절하면 되는 거였다.


무섭기보단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문제는 그렇게 지레짐작하고 나를 만만하게 볼 때였다. 굳이 왜 이렇게까지 하나 싶었던 일이 있는데, 학창 시절 때였다. 집으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은 엄마가 누군지 얘기 안 하는데 네 친구라고 한다고 전화를 바꿔줬다. 받으니 온갖 욕설을 마구 쏟아냈다. 처음 들어 보는 욕도 많았다. 아주 익숙하진 않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또래의 여자 목소리였다. 그렇게 한참 욕을 하던 목소리는 뭣도 아닌 게 돈도 없는 척은 왜 하고 다니냐며, 동생도 애자면 깝치지 말고 짜지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다음 날 한 친구가 내게 이상한 전화받지 않았냐고 물었다. 우리 반의 ■■가 자신의 친구(나와 초등학교 때 딱 한 번 같은 반이었던 아이)에게 우리 집에 전화해 욕을 하도록 시켰다는 거였다. 그 아이는 가정형편이 어렵고 체구도 작다는 이유로 반 아이들이 무시하듯 대했다. 나는 별로 친하진 않았지만 상냥히 대하려 노력했다. 내가 그 아이를 무시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 아이에게 친절하게 말하는 사람은 나와 내게 이상한 전화받지 않았냐고 묻던 아이 정도였다.


우리 집에 전화해 욕을 했던 ■■의 친구는 같은 반이던 초등학생 때 딱 한 번 자신이 학교 앞 가게에서 파는 떡볶이를 산다며 나에게 꼭 오라고 했다. 나는 거기 주인이 철판에 떡을 떼어 넣다가 바닥에 떨어진 것을 그대로 철판에 넣는 걸 본 이후로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친한 사이도 아닌데 얻어먹기도 좀 불편했다. 그냥 거절하기는 좀 그렇길래 떡볶이집 앞까지는 같이 가서 말했다. 나는 떡볶이를 좋아하지 않고, 오늘 집에도 빨리 가 봐야 해서 그냥 가겠다고, 떡볶이는 먹은 걸로 하겠다고, 고맙다고 하고 가려고 했다. 그 아이는 되게 재빠르게 내 신발주머니에 오백 원 짜리 하나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받지 않길래 다음 날 천 원 짜리 과자를 하나 사서 건넸다.


저 둘은 내가 장애인 동생이 있다는 걸 알고, 그리고 내가 친절히 대하자 나를 만만히 봤었던 것 같다. 내게 이상한 전화를 받지 않았냐고 했던 친구가 ■■가 했던 말을 내게 들려줬다. 못 살지도 않는데 못 사는 척하고, 공부도 못하는 척해서 재수 없다고. 내가 굳이 못 사는 척을 하고, 공부를 못하는 척을 할 이유가 없는데. 이야기를 전해 준 친구는 그냥 전화만 하고 끝날 거 같으면 자기도 말을 전하지 않으려 했는데, 그 아이가 자신이 친한 노는 언니(?)들을 다 동원해 나를 손 봐줄 거라 했다며, 집에 가는 길에 조심해야 될 거 같다고 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다른 애들이 무시하고 험한 말을 해도 가만히 있더니, 내게는 그렇게 분노를 했다는 것도 웃겼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재수 없게 느꼈더라도 저렇게 내게 전화해서 욕을 하고 다른 사람에게 나를 손 봐 달라고 할 정도의 수고를 할 만큼 분노할 일인가. 왜 멋대로 생각해 놓고 멋대로 분노해 버린 걸까.


동정은 사양할게요


물론 한 가정에 장애인이 있다면 경제적으로 더 힘든 건 사실이다. 장애인 본인은 물론, 그 장애인을 보살펴야 하는 사람 역시 경제활동을 하기 힘들며, 필수적으로 그 장애인에게 들어가야 하는 비용이 있기에, 꼭 필요한 지출은 더 많고, 벌이는 더 많이 벌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절대적 기준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건 아닌데. 자신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울 거라 막연히 짐작하는 사람이 많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동정으로, 그리고 그것이 그 사람과 그 가족의 모든 면에 대한 동정으로 발전하는 사고는 지양해 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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