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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첩 Jun 21. 2019

친구들에게 벽을 쳤던 건 나일까

수첩의 친구들

몇 년 전 바쁘던 시절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을 때였다. 친구 몇이랑 다 같이 걷다가 누군가가 어디선가 신경쓰이게 쩔렁 거리는 소리가 난다고 했다. 다들 그 소리가 아까부터 났다며  어디서 나는 건지 찾았다. 내 가방 안에서였다. 가방을 열자 동전이 앞 주머니 가득 들어있었다. 연필이가 자기가 좋아하는 걸 사 오라며 집에서 모아두던 동전들을 내 가방에 넣어놨나 보다. 그래서 내가 친구 만난다고 하고 나올 때 '돈'으로 자기가 원하는 과자를 사 오라고 했구나. 어쩐지. 내 뒤통수에 대고 돈을 계속 강조하더라니. 어쩐지 오는 길에 계속 동전 소리가 나더니. 근데 이 소리가 다들 그렇게 크게 들렸나.


연필이가 자기가 좋아하는 과자를 사 오라고 넣어 놓은 것 같다고 했더니 가방 무겁진 않냐, 귀엽다 하고는 다시 다른 걸로 화제가 전환됐다. 그렇게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또 다른 데서 야식도 먹고. 꽤 오래 시간이 지나고 집에 가려고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데 친구 한 명이 말했다. 야, 편의점 갔다 가야지! 아, 과자!


그 짧은 순간 나는 여러 생각이 들었다. 우선 친구가 그걸 세심하게 기억했다는 게 고마웠다. 그러면서도 불쑥 든 생각이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게 실제로는 굉장한 노력을 기울인 배려였나 싶었다. 내가 기분 나쁠까 봐 그동안 겉으로 무심하게 대한 걸까. 사실은 나와 연필이에게 신경을 쓰면서도. 고마운 마음과 동정을 받은 것 같아 약간의 비참한 마음이 섞여 튀어나왔다. 동정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나의 자격지심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불쑥 튀어나오는 마음을 넣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어떻게 기억했어? 아니, 나도 편의점 갈 거였거든. 동생 놈이 00면 사 오라고 해서. 너도 아까 동생이 과자 사 오랬다며.

내가 너무 앞질러 생각했구나. 그들에게 연필이는 그냥 내 동생이었다.


너와 연필이


앞선 글에 등장했던 친구에게 얼마 전 고해성사를 했다. 너의 이야기를 썼다고.

https://brunch.co.kr/@muistikirja/11

(그전까지 내 주변에 브런치에 연필이와 이야기를 쓰는 걸 아는 사람은 둘 뿐이었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소개하고 무슨 내용이든 일단 써 보라고 권했던 친구 님, 그리고 남편.)

친구는, 본인이 저런 말을 한 걸 기억하지 못했다. 약간 쑥스러워하기도 했다. 아마, 큰 고민과 큰 마음을 담아 한 말이 아니어서 그런가 보다.


그렇게 툭, 또 친구는 묻는다. 연필이가 요즘도 뭔가를 잘 만들고 그러냐고. 예전에 연필이가 비즈 팔찌나 목걸이를 만들었던 걸 하고 나갔던 적이 있다. 연필이가 장식한 손거울을 가지고 다녔던 적도 있다. 그게 갑자기 생각나서 그런 듯하다. 요즘 핸드 메이드 제품을 사람들이 좋아하니 한 번 웹 상에 상품 등록하고 팔아보라고 했다. 나는 웃음이 터졌다. 아니, 걔 그거 하기 싫어해. 겨우 한 개 만드는 것도 힘들 걸. 전에 만든 것도 억지로 앉아서 선생님이 만들라 하니 만든 거지.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하고, 뭔가를 먹고 싶다고 할 거야. 하기 싫어서. 친구는 마지막으로 설득했다. 요즘 핸드 메이드 제품이 인기라고.


연필이의 재능만 생각하고 연필이의 장애를 특별하게 취급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 그래서 이런 얘기를 툭툭 할 수 있는 걸까. 생각해보니 다른 친구들도 대부분 저랬던 것 같다. 장애가 있는 동생이 있다는, 뭔가 특별한 취급을 해주지 않았다. 그저 일상적 이야기를 흘리듯 할 때 연필이가 화제에 등장해도 그냥 그렇구나, 쟤 동생은 저런 면이 있구나 정도로 반응했다.


어쩌면 내가 벽을 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너무 과하게 연필이의 존재를 오히려 의식하고 살았던 것 아닐까.  남들과 다르게 취급하는 것에 화를 내다가 어느새 그것에 익숙해져 버렸나. 무례한 말로 상처를 주는 사람들과는 친구를 아예 맺지 않았는데. 과하게 동생은 이름이 뭐야? 동생은 뭘 좋아해? 동생은 뭘 잘해?처럼 부담스럽게 관심을 가졌던 이들은 내가 나도 모르게 밀어내 놓고는. 그렇게 밀어내지 않고  내 곁에 남은 친구들에게 나는 왜 자꾸 이랬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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