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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첩 Apr 29. 2019

"연필이 마음속에 두꺼운 벽이 있는 거야"

수첩과 연필의 어린 시절(1)

폭신한 바닥. 싱크대 장난감 세트와 들락거릴 수 있는 작은 집 모양. 그리고 많은 장난감. 유치원도, 장난감 가게도, 내가 가봤던 어디도 여기보다 재미있지 않았다. 30년은 된 것 같은데 아직도 기억이 난다. 상냥한 말투의 여자분이 동생과 함께 놀래?라고 물어봤다. 나는 거기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연필이는 그 많은 장난감 중 작은 것 하나만 좋아했던 것 같다.

신나서 놀다가 엄마를 보면 그렇지 않았다. 갑자기 죄책감이 들었다. 연필이 때문에 여길 왔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아마도 그곳은 동생의 발달상태를 평가하는 곳이었던 것 같다. 내 기억으로는 이 곳을 두 번 정도 갔던 것 같다. 한 번은 엄마와 연필이, 그리고 외할머니와. 또 한 번은 엄마와 연필이, 그리고 아빠랑.


연필이가 다른 집 동생과 다르다는 건 대충 느끼고 있었다. 일단 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우유 하나도 꼭 먹는 상표와 특정한 맛이 있었다. 인사할 때 손바닥이 아닌 손등을 보이며 손을 흔들었다.

부모님이 내게 연필이의 장애에 대해 설명해줬는데, 내가 잘 이해를 못했다. 어린 내가 생각하는 장애나 병은 신체가 불편하거나 몸이 아픈 것이었다.

"연필이 마음속에 안 보이는 두꺼운 벽이 있는 거야. 우리가 힘을 합쳐서 그 벽을 깨부숴야 해."

(이 맘 때 아빠는 자주 비유를 해서 설명을 는데, 내가 크고 나서 그러지 않는 걸로 봐서 원래 비유를 좋아한다기보다는 어린 자식에게 이해를 시키기 위해서 그랬던 것 같다.)

그 말을 듣고 한참 동안 그걸 마음속에 새겼다. 그러면서 벽 안에서 답답해하고 무서워할 연필이를 위해 벽을 깨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조기 교실이라는 곳을 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엄마는 연필이를 데리고 '조기 교실'이라는 곳을 다니기 시작했다. 조기 교실은 어린 나이의 연필이와 같은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곳이었다. 엄마는 좌석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추우나 더우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동생을 업고 안고, 걸리면서 그곳을 다녔다. 연필이는 오가며 어느 날은 울었고, 어느 날은 지쳐 잠이 들었다고 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연필이가 울면 중간에 내려야 했다. 울던 걸 진정시키고 지하철은 역 플랫폼 벤치에 앉아 있다가 다시 타면 됐는데, 버스는 밖에 서서 기다리다 다시 버스 요금을 내고 탔다고 했다. 교통카드라는 것이 없을 때니 연필이를 데리고 버스요금을 내는 것도 최대한 간편하게 해야 했다. 좌석버스는 500원짜리로 내면 금액이 딱 맞아떨어져 거스름돈을 받아가지 않아도 됐다. 그 때 나는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500원짜리가 생기면 쓰지 않고 뒀다가 엄마를 줬다.

조기 교실은 한 곳을 계속 다닌 건 아니고 좋은 곳이 있다고 하면 알아보고 옮기기도 했는데, 모두 우리 집에서 멀었다. 30년 전은 지금보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대중의 이해도도 떨어지며(아예 자폐성 장애가 뭔지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선택할 수 있는 교육기관의 숫자도 적었다.


스피드 퀴즈와 숨은 그림 찾기


부모님은 여러 교육법을 배워 집에서 해보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사물이나 동물의 사진이 인쇄된 카드를 보여주고 연필이에게 이름을 말하게 하는 것. 여러 장의 카드를 넘기면서 물어보는 것이 마치 스피드 퀴즈를 하는 것 같았다. 또 카드를 탁자에 가득 늘어놓고 작은 볼펜이나 막대를 연필이에게 쥐어주고는 사물의 이름을 불러주면 연필이가 그걸 찾아 짚어내는 것도 있었다. 이것은 마치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부모님과 나는 연필이가 가족의 말을 듣고 집중해서 그 말을 따라준다는 것에 감동했다. 연필이와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할 수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좀 더 지나서는 한글로 작은 카드를 만들어 그 카드를 읽는 연습도 했다. 이것 역시 무척 빠르게 잘 해냈다. 곧 한글을 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현재도 한글을 떼지 못했다. 아마 당시에 한글 카드를 보고 빠르게 읽은 것은 글자를 익혔다기보다는 글자의 형태를 그대로 외웠던 것 같다. (연필이에게는 그림 카드를 보고 말하는 것과 차이가 없었으려나?) 지금도 그때 익혔던 단어가 보이면 종종 소리 내 말하기도 한다.


아빠가 어렸을 때 말한 연필이의 벽은 깨지 못했다. 그 벽은 깨지는 벽이 아니었다. 대신 그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소통하는 법을 각자 익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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