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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첩 May 08. 2020

공감하거나 조롱하거나

사람들의 태도와 비염

올해 들어 생긴 습관은 코를 풀기 전에 손을 씻는 겁니다. 물론 풀고 나서 손을 닦고요.  그러고 보니 외출을 잘 안 해서 밖에서 코를 풀 일도 없네요. 밖에서 마스크를 벗는 것 자체가 두렵기도 하고 손을 깨끗이 하고 코를 풀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시기가 시기인지라 제가 코를 푸는 게 다른 사람에게 두려움 같은 걸 느끼게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밖에서 코를 푸는 것이 별로 특별한 일이 아니었는데 꽤 오래된 별스러운 일 처럼 느껴집니다.


“아유, 어떡해. 이거 쓰세요.”

아주 오래 전, 비염이 심해서 코를 닦으며 일하던 중 들었던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하면서 콧물을 한 번 닦고 다시 “죄송합니다” 하면서 일을 시작하려는데 그분이 자신의 가방에서 티슈를 꺼내 건넸습니다. 도톰하고 아주 부드러운 그 티슈. 한 장만 쓴 거라며 통째로 내게 건넵니다. 가져가서 쓰라고. 비염이나 코감기를 앓는 중도 아니었는데 이 부드러운 티슈를 포장이 귀여워 호기심에 샀던 그 사람은, 자신보다 더 필요할 것 같다며 그걸 제게 건넸습니다. 열 장 밖에 안 들었다며 금방 쓸 거 같아 안타까운 표정으로. 이런 천사가.

단편적인 걸로 사람을 판단하는 건 별로 좋지 않은 일이지만, 저도 모르게 저의 비염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로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공감을 하거나, 힘들겠다 같이 말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속마음은 다를지라도 내 앞에서 그렇게 한다는 건 최소한의 예의는 있다는 걸 테니까요.


코맹맹이 소리로 말하는 내게 코를 좀 풀라며 면박을 주는 건 아주 흔한 일입니다. 그냥 콧구멍이 부어 꽉 막힌 거고, 콧물을 내보내서 뚫리는 게 아니라고 말해도 끝까지 그래도 좀 풀어보라는 끈질긴 사람도 있지요. 뭐, 본인이 답답하고 안타까워 보여서 그럴 수도 있겠다며 이런 사람은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중간 정도에 두고 더 이상 판단하지 않으려 합니다.


남의 콧구멍은 왜 그렇게 보는 걸까


본인들은 별생각 없이 면박을 주거나 그걸 웃음의 소재로 쓰는 사람들은 나쁜 사람으로 분류하면서 저도 모르게 적대감이 듭니다. 사실 적대감이 들기 훨씬 예전에는 주눅이 들었습니다. 내가 뭔가를 크게 잘못한 것 같아 안절부절못했죠. 상대빙이 비위가 상하거나 기분이 나쁠까봐 항상 스스로를 단도리 했던 거 같습니다. 코를 풀고 난 휴지도 바로 잘 버리거나 그렇지 못할 상황이면 가방에  얼른 넣어 눈에 안 띄게 했지요.


그런 위축감이 적대감으로 바뀐 건 아마 다음의 일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학교를 다니던 때, 조금 긴 이름의 ‘학’으로 끝나는 과목이 있었습니다. 제가 코를 푸는 걸 보고 ‘콧물*****학’을 가르쳐 보라며 낄낄 거리던 이가 있었습니다. 한두 번은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그 과목을 듣는 한 학기 내내 강의실에서 코를 풀 때면 그 소리를 하더군요.(이상하게 그 강의실에 들어가면 재채기와 콧물이 났습니다. 수업 시작 후 30분 정도가 지나면 진정이 됐지만) 그리고 콧물이나 콧물이 말라 코 안에 있는 걸 굳이 열심히 들여다보며 ‘코딱지’를 달고 다닌다며 더럽다고 했습니다. (굳이 왜 남의 콧구멍을 그렇게 열심히 봤는지 의문) 그렇게 저는 조금 주눅이 들어 거울을 볼 때면 콧구멍에 신경을 쓰다 어느 날 화가 불쑥 났습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내가 왜 이렇게 신경을 써야 하는 거지. 그렇게 주눅 든 마음은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이후로 이런 사람에게는 주눅 드는 것보다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해버리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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