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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첩 Dec 11. 2020

물음표 살인마의 결론

소개팅과 비염



+결혼 전 이야기입니다


남편을 만나기 전 소개팅을 몇 번 했습니다. 이런저런 사람을 만났었지요.

https://brunch.co.kr/@muistikirja/17

소개팅 자리에 나가는 건 신경 쓸 게 참 많습니다. 나가기 전부터 이런저런 보통 소개팅 때 신경 쓸 것에다 비염에 대한 것도 추가되거든요. 코 주변 메이크업은 여전히 거의 하지 않고요. 혹시 몰라 티슈는 더 넉넉하게 챙깁니다. 나가서도 신경 쓸 것들이 있는데요, 바로 앞에서 코를 닦거나 푸는 게 초면에 예의가 아닌가 싶기도 해서 친구나 가족 앞에서 하듯이 맘 놓고 휴지를 코에 대기도 꺼려집니다.

비염이 좀 심할 것 같으면 아예 맘 편하게 약을 먹고 나갑니다. 조금 졸리긴 하지만 계속 재채기하고 코 풀고, 코 막힌 목소리로 대화하는 것도 고역이니까, 차라리 조금 졸린 걸 택합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습니다. 약을 챙겨 먹고 출발했지요. 만나서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요, 음식이 나오자 상대방 분이 맥주 한 잔 하겠냐고 묻습니다. 바삭한 튀김도 있고, 음식 간도 전체적으로 짭짤하니 맥주를 마시기 좋을 거 같긴 했습니다. 실제로 주변을 보니 식사하면서 생맥주를 많이 마시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약을 먹고 나왔으니까요.

https://brunch.co.kr/@muistikirja/57


너무 딱 잘라 안 마시겠다고 하는 건 무례할까 싶어, 주문하시라고, 저는 사이다를 마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맥주와 사이다는 다른데, 맥주를 마시라고 권합니다. 혹시 술 병 나서 안 드시는 거냐고 묻습니다. 보통 술을 안 마시겠다고 하면 원래 술을 못하냐 같은 걸 묻던데. 술병이 났냐고부터 묻진 않던데요. 이 분은 대체 왜 이런 거부터 물었던 걸까요. 저는 아뇨, 그게 아니라,라고 답하는 중에 그분이 또 묻습니다. 그럼 체질상 술을 못 마시는 거냐. 그것도 아닌데. 저는 그냥 약을 먹고 나와서 술을 못 마시는 거라고 대답하는데 무슨 약이냐고 묻습니다. 알레르기성 비염 때문이라고 안 그래도 말하려고 했는데. 궁금한 게 많은 사람이었던 거 같습니다.


알레르기성 비염이라는 말을 듣고 그분은 실제로 알레르기성 비염 환자를 처음 보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꽤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질병인데. 그리고 다시 질문이 시작됩니다. 간질간질하다가 재채기가 나는 거 같은데 맞냐? 그럼 아까 재채기한 것도 비염 때문이냐? 뭐에 대한 알레르기인가? 알레르기가 있는 음식 같은 걸 먹으면 코가 막히는 건가? 비염일 때는 코가 가려운가? 매일 그런 건가? 약은 계속 먹는 건가?


그렇게 질문을 계속 던지던 그분은, 운동 안 하시죠?라고 합니다. 운동을 해야 튼튼해져서 면역력을 키운다면서. 음식도 이런 거(소개팅 장소에서 주문해 먹고 있던 음식) 말고 건강식으로 먹으라 합니다. 이 음식들 제가 먹고 싶다고 한 적 없는데요. 약 자꾸 먹을 생각 하지 말고 이겨내라고도 합니다.


그날 비염 환자를 실제로 처음 봤다는 분이 진단까지 내리네요. 운동을 즐겨하지는 않았지만 그 입을 다물게 할 정도의 힘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꾹 참았습니다. 폭력을 사용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거기에 대꾸하며 싸우면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 같고요. ‘사회적 지위와 체면’ 중에 지위는 없었지만 체면은 있었거든요. 그렇게 집에 오는 길에 주선자에게 내가 잘못한 게 있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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