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법률사무소 무진 Sep 09. 2021

엄마표 영어 : 시작과 방향 설정


'엄마표 영어'는 그 태생상 통용되는 정의가 없고 엄마가 설계하기 나름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잘 시작하는 게 중요합니다. 방향성과 계획 없이 이것저것 따라하다 보면 길을 잃기 쉽습니다. 


방법론을 택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수많은 '남의 방법'들이 내 아이에게도 맞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남의 집 아이가 쉐도잉을 좋아했다고 내 아이도 그러리라는 법이 없습니다. 천권읽기 따라했다가 애가 책에 질려 담쌓게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 사람의 노하우를 다 더해 놓으면 좋을 것 같지만 막상 해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서로 다른 체계에서 나온 세부적인 가지만 억지로 붙여놓았기에 앞뒤가 맞지 않아 잘 적용이 안 됩니다.


저는 엄마표 영어를 3년째 진행하고 있는데, 처음에 큰 방향을 정해 두고 나니 흔들림 없이 안정적으로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참고하셔서 나와 내 아이에게 맞는 최적의 엄마표를 찾으시면 좋겠습니다. 




1. 목표는 영어영재 만들기가 아니다


제가 '엄마표 영어'에서 발견한 가장 큰 매력은 학습이 아닌 언어로서의 영어를 습득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사실 입시만을 위해서라면 어려서부터 이렇게까지 영어에 투자할 필요는 없어 보이거든요. 


다만 아이가 제 품 안에 있을 동안은 한국에서 살 예정이므로 지금 당장 원어민처럼 영어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영어로 된 정보를 번역 없이 편하게 받아들이고 세계인과 의사소통할 수 있을 것. 부모로서는 그 정도만 만들어 주면 나머지는 성인이 된 후 스스로 알아서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형학원보다 집에서 습관처럼 꾸준히 해 나가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학습이 아닌 언어로서 영어를 습득하기 위한 핵심 조건은 '12세 이하 시기의 충분한 노출'입니다. 그런데 알아보니 학원의 커리큘럼이 다양하기는 해도 그 한두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영어에 빠져있는 것이 아니더군요. 같은 시간이라면 낭비없이 집에서 집중적으로 영어에 푹 적셔주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말하기와 쓰기는 뒤로 미뤄두고 저학년 때는 듣기(보기)와 읽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중언어 환경이 아닌 한국에 살면서 '충분한 노출'이 되려면 영상시청과 원서독서만으로도 하루 두세 시간이 부족합니다. 여기에 말하기와 쓰기까지 하면 온종일 영어에만 매달려야죠. 


제 목표는 아이 영어영재 만들어 TV 출연하기가 아니므로 그럴 필요도 없고 인생에 다른 중요한 것이 많습니다. 그리고 말하기 쓰기 교육은 듣기와 읽기 수준이 어느 정도 뒷받침되어야 효율적입니다.


엄마표 영어가 흔들리는 이유는 '비교'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여섯 살부터 영어유치원 다니면서 말하고 쓰는 아이들하고 비교하기 시작하면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초등 저학년이 되면 학원에서 레벨별로 반을 나누고 테스트를 하므로 비교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그 수준의 성과 비교는 누가 구구단 2단을 빨리 외우느냐 하는 정도의 미미한 차이라고 봅니다. 내 목표는 구구단이 아니라 실력정석이므로 지금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생각하지만 주위를 보면 이것도 성격 나름인 것 같습니다. 불안하다면 굳이 엄마표를 고집할 필요가 없습니다. 학원표든 엄마표든 내가 된다고 믿고 가야 효과가 있지 않을까요.


참, 실없는 에피소드 하나 말씀드리면 큰아이 입학하고 얼마 안 돼서 하교길에 같은 반 친구랑 할머님을 만났어요. 제가 어디가시냐고 여쭤보니 할머님께서 "폴리 버스 타러 가요"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로보카 폴리요? 우와! 타요버스 말고 폴리버스도 있어요?"했더니 할머님 당황하시던데, 알고보니 유명한 영어 학원 이름이 폴리더라구요ㅋㅋㅋ. 제가 이 정도로 학원 이런 거 관심 꺼뒀어요. 괜찮아요. 내가 더 잘해요 하는 근자감에 살죠 뭐. 이 얘기 해 드리면 다른 엄마들 엄청 웃으시던데, 안 웃겼나요? 죄송합니다.



2. 7살까지는 모국어에 집중한다.


언제 영어를 시작할지 처음 고민해 본 것은 첫째 돌 무렵이었습니다. 회사 동료들 중 선배맘들이 유명한 영어동요 전집들과 경험을 통한 평가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시더군요. 또 친구들과 만나 육아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도 영어 교재에 관한 정보는 빠지지 않았지요. 


솔직히 그때까지 아이 영어에 관해서는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았기에 '아, 나만 늦은 건가?'싶어 부랴부랴 알아봤어요. 속으로 '헐 무슨 그림책 세트가 150만원이야?'하고 놀랐지만 겉으로는 티도 못 내고 선배맘이나 친구들이 알려주는 정보를 열심히 주워들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직 돌쟁이잖아요? 우리말도 못하잖아요? 자연스러운 이중언어 환경도 아닌데, 혹시 우리말 배우는 데 영어가 방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되더군요. 도대체 영어를 일찍 배우면 얼마나 잘하게 되는 걸까, 모국어 습득시기를 쪼개 나눠야 할 만할 가치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주변 지인들을 보니, 해외체류 경험이 없이 한국에서만 자란 아이들은 유아 때부터 꾸준히 영어학습을 하고 영어유치원에 다닌 아이들도 'bilingual'(2개 언어를 모두 능숙히 구사하는)의 수준에 이르는 경우는 많지 않았습니다. 물론 유치원생 치고는 매우 훌륭한 영어실력이지만요.


인터넷을 검색하니 그렇다 아니다 상반되는 주장과 논거들이 난무하던데,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방대한 논거들의 진위와 타당성을 스스로 가려내기 어렵더군요. 사실 인터넷에 떠도는 '연구결과'라는 것들의 진짜 가치는 전문가가 아니면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정책적이나 상업적 의도로 시작부터 편향되거나, 혹은 실력부족으로 수준미달인 연구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비전문가들은 그 중 자신이 이해하는 부분만 받아들여 논거로 삼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결국 판단은 엄마 몫입니다. 저는 아이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고 선행해야 할 과제는 모국어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조기 영어교육으로 얻을 이익을 위해 혹시 모를 모국어 능력의 저하를 감수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영어동화 전집은 들이지 않았습니다. 5살 때 영어유치원을 보내야 하나 한번 더 고민했는데, 같은 이유로 영유도 보내지 않고 영어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한참 한글책을 재밌게 읽던(정확히는 제가 읽어주던) 시기였거든요. 결국 영어는 8살에 시작했습니다.


모르죠. 외국어 조기교육과 모국어 습득능력은 별 상관관계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시너지 효과를 낼 지도 모르지요. 저는 전문가가 아니니까요. 여튼 제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큰아이 3년차 해 나가는 것을 보니 이 정도면 괜찮다 싶습니다. 그래서 둘째도 8살에 시작했습니다. 


우리집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한글책과 친하게 지내왔고 엄마, 아빠, 할머니와 많은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 속에 영어가 일찍 들어왔다면 우리의 즐거운 대화와 독서시간이 그만큼 줄어들었겠지요. 그렇게 생각하니 그 시절 영어가 없던 것이 별로 아쉽지 않군요.



3. 한글책 독서가 우선이다.


위 2번이 언제 영어를 시작할지에 관한 것이라면, 3번은 영어를 시작한 이후에 적용되는 원칙입니다. 저를 포함해 많은 엄마표 영어의 핵심은 '장시간 영어 노출'에 있습니다. 이중언어 환경이 아닌 곳에서 모국어의 습득방식으로 영어를 가르치려면 영상이나 책을 통한 인위적인 영어노출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루 3시간 이상 노출을 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시간표를 짜 보고, 또 실제 생활을 해 보니 하루 3시간씩 매일 꾸준히 영어만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영어 올인 정책'이 되어 버리더군요. 특히 저는 아이가 자유롭게 노는 시간을 2시간 이상 배정하고 잠을 9시에 재우다보니, 영어를 3시간씩 하면 한글책 읽을 시간이 쪼그라드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결국 또다시 선택의 시간이지요. 며칠 고민했습니다. 내 스스로 세운 초등시기 제1의 목표는 '생각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중고등학교, 나아가 대학 이후 평생을 해야 할 공부의 기초체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목표 달성을 위한 필수과제는 독서입니다. 머리가 말랑말랑한 초등학생때 넘칠만큼 독서에 푹 적셔줘야 합니다. 영어를 아무리 잘해봤자 기술이지만, 생각하는 능력은 사람의 크기를 결정하는 문제입니다. 자, 우선순위가 나왔네요.


그래서 한글책 독서가 우선이라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엄마표 영어를 앞서 해 나간 분들이 강조하는 최소 3시간 이상 노출을 포기하고, 하루 2시간으로 진행했습니다. 1년차 내내 욕심이 났지만 꾹 참고 2시간이 넘지 않도록 제한했고 저녁식사 후의 시간은 혼자 또는 아빠엄마와 함께 한글책 읽는 시간으로 활용하도록 노력했습니다. 아이 2학년부터 코로나로 학교에 잘 안 가서 영어시간을 30분 늘렸지만, 학교 다닐 시간에서 빼 온 것이므로 한글독서나 놀이시간에는 영향이 없도록 했습니다. 


3년차에 되돌아보면, 하루 2시간도 '언어로서의 영어 습득'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글책 독서가 중요하다는 소신은 더욱 강해지고 있습니다. 2년차부터 매일 1시간씩 영어책 읽기(음원을 들으며 읽는 집중듣기 방식)를 하고 있는데, 책과 안 친한 아이라면 버텨내기 어려웠을 겁니다.


또 아이는 영어책 수준이 점진적으로 높아지는 과정(Nate the Great 등의 쉬운 챕터북 → Magic Tree House 등의 일반 챕터북 → Roald Dahl이나 쉬운 뉴베리 수상작 등 저학년 수준의 소설 → Percy Jackson 등 환타지 소설이나 The Story of the World 같은 비문학서)을 무리없이 따라가고 있는데, 이는 꾸준한 한글책 독서의 힘이 뒷받침된 덕이라고 생각됩니다.


모국어 독서 비중을 얼마나 둘 것이냐에 관한 원칙을 미리 세워두는 것은 꼭 강조하고 싶습니다. 제가 해 보니, 아이가 엄마표 영어를 잘 따라오면 자꾸 욕심이 나요. 더 잘 하고 싶고, 더 많이 하고 싶습니다. 거기 휘말리면 하루종일 영어만 붙들고 있게 될 겁니다. 


영어만을 위해 독서, 놀이, 운동 그밖의 소중한 것들을 희생할 가치가 있는지, 또 과연 귀여운 아이 때를 지나 중고생 시기까지도 모국어 능력의 향상 없이 영어만 홀로 쑥쑥 키워 낼 자신이 있는지 엄마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져야 합니다.  



4. 학습방법과 교재는 내 스스로 발굴한다.


제가 하는 엄마표 영어의 구조상 큰 틀은 '책 + 영상'입니다. 매일 꾸준히 책을 청독(집중듣기)하거나 묵독하고 영어 영상을 시청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떤 책, 무슨 영상을 볼 것인지 자주 검색합니다. 


그러다가 학습방법과 교재를 꼼꼼하게 골라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우연히 유튜브를 많이 봐서 영어를 잘 하게 되었다는 아이의 동영상을 보게 되었어요. 정말 영어도 잘 하고 똑똑한 아이더군요. 그런데 아이의 말투와 표현에서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습니다. 


가만 보니 아이가 유튜버들의 과장된 말투와 표현을 그대로 따라하는 겁니다. 아마 그 아이도 실제 일상에서는 더 자연스러운 말투를 쓸 것이라 추측됩니다. 혹여 나쁜 습관이 들었더라도 기본 실력이 좋으니 금방 고칠 수 있을테고 큰 문제라고 할 것은 아닙니다. 인위적 교육 없이 아이 스스로 그런 실력을 키운 것은 대단한 성과이지요.


다만, 저에게 어떤 경각심을 주더군요. 엄마표 영어의 책임감이랄까요. 온라인상에서는 온갖 카페에 블로그에 책에 엄마표 영어가 흔한 것 같지만, 실생활에서 제가 만나는 사람 중에는 아직 한 사람도 못 봤습니다. 그만큼 검증되지 않고 불확실한 길이지요. 


더구나 저는 욕심이 많아서 영어에 올인하지는 못해요. 하루 2시간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내야 합니다. 그러려면 '진짜'들이 필요합니다. 넘쳐나는 자료들 중에 좋은 것만 골라 아이 앞에 가져다 줘야 합니다.


그래서 초반 1년차에 좋은 자료를 찾기 위해 참 많은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시간을 들여 고르고 모은 자료 10개 중 9개는 버리는, 정말 비효율의 극치를 달리는 작업의 연속이었습니다. 퇴근 후 집에서 보내는 개인시간 중 취미, 여가, 친목, 쇼핑 이딴 것들은 인생에서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거울을 보니 1년간 10년 늙었습디다. 젊음을 유지하려는 분께 엄마표 영어는 비추입니다.


사실 그렇게 찾아헤매 얻은 결과물이 기존에 많이 알려진 자료보다 탁월한 것은 아닙니다. 겸손이 아니라 진짜로 그렇습니다. 기존의 잘 알려진 책, 영상물과 대부분 겹치고, 정말 약간을 추가한 정도이지요. 다만 저는  성향상 '선택과 집중'의 방식을 선호해요. 학창시절 때도 1년에 문제집 5권을 끝내기보다는 마음에 드는 1권만 택해 5번 반복하는 성향이었지요. 그래서 10개를 찾아 9개를 버렸습니다. 정말 마음에 드는 자료만 남겨서, 여러 번 반복했습니다.


만약 지인에게 엄마표 영어를 알려준다면 자료검색에 저처럼 매달릴 필요는 없다고 말할 것 같습니다. 이미 엄마표 영어 노하우가 책이든 인터넷이든 많이 알려졌기 때문에, 그냥 사람들이 오랜기간 많이 추천하는 자료들(검증되었다는 뜻이므로)만 골라 진행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젊음을 유지하세요...흑흑).


하지만 모두에게 강조하고 싶은 바는 앞부분에서 말한 '경각심'입니다. 책, 영상자료, 유튜브 등 자료가 넘쳐납니다. 어느 정도는 옥석을 가릴 줄 알아야 하며, 특히 유해한 컨텐츠를 걸러내야 합니다. 


무엇이 '유해'한지의 판단은 개인의 몫이지요. 제 경우를 예를 들면, 저는 유튜브에서 영어교육 목적으로 제작한 컨텐츠들 중에 인도 쪽에서 만든 것은 걸러냅니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국가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표현이나 단어를 쓰는 경우도 있고, 발음도 그 지역색이 섞인 경우가 많습니다. 영어가 미국식이냐 영국식이냐는 취향의 문제이지만 한국인이 굳이 인도식 발음을 배울 필요는 없지요. 그리고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내용들도 꽤 있습니다(지나치게 규율과 복종을 강조하고 가부장적이거나 양성평등에 반하는 등).


첫 1년차의 자료수집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1년 지나고 나면 내 아이의 성향도 파악되고 요령도 생겨서 자료수집에 드는 시간이 많이 줄어듭니다. 좋은 자료를 발견하면 계획표에 몇 글자 적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그래요. 


'엄마표'라는 것을 하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자료 수집의 부담은 따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저 역시도 계속 찾는 중이고 말이지요. 너무 한 번에 완성하려면 힘드니까 차근차근 가십시다. 



작가의 이전글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면 (下)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