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없이, 순수하게
나는 가끔 내가 사랑하는 노래의 노랫말을 적어본다. 종이에 펜을 대고, 한 글자씩 베껴 쓰다 보면 그 노래가 조금은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가사는 이미 들은 적 있는 단어들의 나열이지만, 손끝으로 옮겨 적는 순간 그것들은 전혀 다른 표정을 가진다. 들을 땐 흘러가던 단어들이 적는 순간엔 내 안에 잠시 머문다. 그 머무름은 묘한 정적을 만들어낸다. 노래를 듣는다는 건 누군가의 감정을 ‘공유’하는 일이라면, 노래를 적는다는 건 그 감정을 ‘내 것으로 만드는 일’ 같다.
그래서일까. 들으면서는 알 수 없었던 감정들이 펜 끝에서 하나둘 피어난다. 구름 같던 노래가 어느 날은 비가 되어 내리고, 아이의 눈웃음 같던 노래가 어느 날은 할머니의 미소로 들린다. 한때는 청량했던 후렴이 이제는 묵직한 위로로 남는다. 예전엔 그냥 흘려보내던 가사들이, 지금은 내 마음 어딘가에 잔잔히 내려앉는다. 그건 노래가 바뀐 게 아니라, 아마도 내가 바뀐 탓일 것이다.
글로 적어서 다르게 보이는 걸까, 아니면 내가 달라져서 그렇게 들리는 걸까. 예전에는 단지 멜로디가 좋아서 들었던 노래가, 이제는 가사의 쉼표 하나에도 마음이 걸린다. ‘이 가사를 쓴 사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상상하게 되고, 그 감정을 천천히 따라가 본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 노래는 나의 과거, 나의 생각, 나의 하루와 겹쳐진다.
사람들은 가끔 그런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시간 낭비 아니냐고.”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짧은 순간이 얼마나 나를 채우는 시간인지. 가사를 옮겨 적는 동안, 나는 누군가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숨을 느낀다. 단어 하나에 담긴 망설임, 쉼표 뒤에 숨겨진 고백, 마침표 뒤의 여운까지. 그렇게 한 줄 한 줄 따라 쓰다 보면 결국엔 내 이야기로 돌아온다.
누군가의 노래로 시작했지만, 그 문장은 어느새 내 하루를 닮아 있다. 들을 때는 위로받는 사람으로 시작했지만, 적을 때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사람이 된다.
거짓 없이, 순수하게, 좋다. 그게 내가 노래를 적는 이유다.
그리고 아마, 그건 내가 나를 이해하는 가장 조용한 방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