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것에 대한 사랑

잃어버린 나를 다시 읽는 시간

by 무지

어떤 대학을 가느냐가 인생을 결정짓는 모든 것이라 생각했던 어린아이의 종착점.
대학수학능력시험, 일명 수능.


수능은 많은 것을 주었다.
목표 의식, 논리 구조, 시련, 행복.
수백, 수천 가지의 작품을 읽을 수 있게 도와줬고,
그게 그리 싫지 않았다.


그때의 ‘읽기’는 빠르게 읽는 것이 중요했고,
답을 내놓기에 급급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는 어린 시절, 이해가 될 때까지 읽고 또 읽고,
읽으며 상상하고, 그렸고, 끄적였다.


읽기에 정도가 어디 있겠냐마는,
그때의 읽기 방법으로 수능을 봤다면
난 아마 대학을 가지 못했을 것이다.


책과 커피.jpg


하지만 그러한 읽기는 점차 흐려져 갔고,

대학을 가고, 취직을 하고,
일상에 치여 쉬기에 급급했던 내게
남은 읽기는 수능이 준 속독뿐이었다.


그러다 이직을 위해 퇴사를 하고,
본의 아니게 시간이 많아진 나는
요즘 다시 책을 읽는다.


책을 굳이 빨리 읽을 필요가 없어진 사람은
책을 펴고 멍을 때리기도 하고,
같은 문장을 여러 번 읽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문장 옆에
나도 작가가 된 것 마냥 못난 글씨로 끄적여 보기도 하고,
고개를 들어 창문 밖을 보기도 한다.


쉽게 말하면, 여유다.
어떻게 보면 시간 낭비일지도 모르는 그 시간에서
나는 나를 찾고 있다.


커피와 책.jpg


잃어버렸던 내가 좋아하던 것들이
햇빛 사이로 떠오를 때면
최소한의 짐을 챙겨 무작정 밖을 나가 걷기도 한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카페가 보이면
일단 문을 열고 들어가서,
그다음 무슨 메뉴가 있는지 슬며시 들여다본다.


수능이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우스운 역경이 남긴 획일화를 지우고,
나는 나를 찾아가는 중이다.


생각이 많아지는 것은
복잡한 마음이 나를 심란하게 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나와 대화한다는 얘기이기도 하기에
나는 생각으로 잠을 지새우는 것 또한
행복이라 생각한다.


바쁘게 사는 것이 당연하고,
그 이유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남들과 다른 시선으로 볼 필요까지는 없다.


적어도 자신의 시간으로 무언가를 바라보는 행위로,
시간에 치여 시름하는 이들이
자기 자신을 잃지 않길 바란다.


너무나 뻔한 말이지만,
행복이란 그리 멀지 않다.

모두가 평안에 이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