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꼰대가 되는 걸까요

나를 배우는 일

by 무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할 것들.
내 생각, 내 감정, 내 선호, 내 불호.
그 단순한 네 가지가
한때는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타인의 감정에 민감한 사람이었다.
늘 ‘내가 괜찮은가’보다 ‘저 사람이 괜찮을까’를 먼저 생각했다.
누군가의 표정이 조금만 어두워져도
그 이유를 내 탓으로 돌렸고,
누군가의 말이 조금만 차가워져도
내가 실수한 건 아닌지 돌아봤다.


그렇게 살아오면서 나는
나 자신을 가장 늦게 만났다.
늘 남의 온도에 맞춰 살다 보니
정작 내 온도가 몇 도인지 몰랐다.
어느 날은 너무 뜨거웠고,
어느 날은 지나치게 차가웠다.
중간이 어디인지 몰라
늘 어딘가 불편한 온도 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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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조금씩 알 것 같다.
기분이 나쁠 땐 나쁘다고,
좋을 땐 좋다고 말해도 된다는 걸.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다
정작 나를 깎아내리던 시간들이
이제는 조금 아깝게 느껴진다.


물론 여전히 타인의 마음을 살핀다.
그건 내 습관이자 본성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마음을
내 마음보다 앞세우진 않으려 한다.


이젠 남보다 나를 더 챙겨주고 싶다.
남이 원하는 내가 아니라,
내가 되고 싶은 나로 살아가고 싶다.
그게 이기적인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어릴 적엔 ‘착하다’는 말을 좋아했다.
그 말에는 묘한 위안이 있었다.
누군가 나를 착하다고 말하면
마치 그 한마디로
세상과의 관계가 단단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착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가두는 말이 되었다.
착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겼고,
그 의무감은 내 감정을 숨기게 했다.
화를 내면 나쁜 사람 같고,
싫다고 말하면 관계가 깨질까 두려웠다.


이제는 그 단어의 무게에서
조금은 벗어나고 싶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일 순 없어도
나에게만큼은 솔직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나를 지키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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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나’를 중심에 두는 연습을 한다.
조금 늦게 배운 감정이지만
이제라도 배운 게 다행이다.


피곤하면 쉬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고,
좋아하는 건 분명하게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살다 보니
관계의 수는 줄었지만
관계의 온도는 오히려 따뜻해졌다.


어설프게 맞춰온 관계보다,
서로가 진심으로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관계가 남았다.
타인을 배려하는 일도 결국,
내가 나를 이해할 때 가능하다는 걸 배웠다.


나를 조금 알게 되니
세상이 조금 덜 복잡해진다.
나의 불호를 인정하니
타인의 다름도 덜 불편해진다.


세상은 여전히 빠르게 변하지만
이제는 그 속도를 억지로 따라가지 않아도 괜찮다.
조금 느리게 걸어도,
그 길이 내 길이라면 충분하다.


결국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남들보다 잘 사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나로 사는 법’을 배우는 일인 것 같다.


좋은 말보다 진심이 중요하고,
예의보다 솔직함이 더 귀한 순간이 있다.
그 순간들을 모아 나를 단단히 세워가는 게
내가 생각하는 ‘어른의 삶’이다.


어설프게 남에게 맞추기보다,
나를 위한 결정,
나를 위한 만남,
나를 위한 표현을 하며 살아가려 한다.


그렇게 살아가는 걸,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가는 일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렇게 꼰대가 되어가는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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