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에 핀 상처는 치유될까?

우리가 가장 모르는 사람은 "나"

by 로건리

"여기서 끝내는 게 맞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 근데...."


그날의 분위기와 아내의 말이 너무 무거워서 일어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 역시 감정의 끝자락에서 간당간당 하던 시기였기에 극단적인 생각이 찾아왔다.

그때 아내가 말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제안 하나 할게.

우리.. 부부상담받아볼래?"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그렇게 우리 부부는 상담센터를 찾아갔다.

무덤덤한 척했지만 상담센터의 문을 여는 내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애써 숨겨왔던 진짜 내 마음을 들킬까봐 두려웠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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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 상담은 진전이 없고 잘 풀리지 않았다.

내 진짜 마음을 가리고 있던 가짜 마음은 절대 밖으로 나오지 않겠다고 요동치고 있었고,

상담사는 그런 나를 금방 알아차렸고, 좀 더 자신에게 솔직해지라고 말했다.


그때의 나는 내 진짜 마음을 입 밖으로 내뱉으면 내 삶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진짜 내 마음을 내뱉는 순간 우리는 진정한 부부로 거듭날 수 있었다.

상담이 진행되던 어느날, 왜 그랬는지 나도 알 수 없지만 무덤덤하게 고백하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엄마가 없어요."


"그리고 나는 아동학대 피해자이기도 해요."



늘 생각했다.

사랑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나를 키운 할머니의 마음이 아플까 봐

나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다고 스스로를 세뇌시켰다.






1988년 11월.


할머니와 고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5번째 따뜻한 겨울을 기다리고 있던 날이었다.

아빠가 새엄마를 데리고 집에 왔고, 나를 데려간다고 했다.


처음 보는 새엄마라는 사람이 낯설고 무섭긴 했지만, 엄마라는 단어는 어린 나에게 달콤한 사탕같았다.

그렇게 나는 아빠와 함께 새로운 보금자리로 향했다.

그 보금자리에서의 첫 기억은 안정감을 느끼게 만들었지만 그 안정감은 얼마 가지못했다.

새엄마는 곧 본색을 드러냈고, 미운오리새끼였던 나는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한 채 오롯이 혼자였다.








여느날과 다름없이 무차별하게 이어지던 폭력.

새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죽어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무작정 집을 뛰쳐나왔다.

뒤돌아보면 새엄마가 따라올 것만 같아 돌아보지도 못한 채 앞만보고 뛰었다.


"산에 올라가면 호랑이한테 잡아먹혀. 그러니까 절대 가면 안돼" 라던 아빠의 말이 떠올랐다.


차라리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게 더 안전하다고 느꼈고,

나는 산 입구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꼬마야 어디 가니?"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산 입구에 있던 작은 상회 주인아저씨였다.


"죽으러요."


아저씨는 다급하게 나와 내 팔을 잡았고, 멀리 새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훗날 전해들은 말에 의하면, 아무 감정없이 죽음을 말하던 내가

그 순간, 극도의 흥분상태로 놓아달라고 울부짖었었다고 한다.


아저씨는 나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옷 사이로 멍든 내 몸을 보았고,

그날 그곳에서 만난 아저씨는 나의 구세주가 되었다.


아직도 나는 기억한다.

집으로 돌아오던 날 나를 보며 오열하던 할머니와 고모의 모습을...









상담사가 물었다.


"그때의 기억이 선생님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그 기억은 동전의 양면 같았다.


어떤 날은 나의 불안감을 증폭시켜 나를 갉아먹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더 잘 살아야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다행히 내 주변에는 좋은 어른들의 관심과 사랑이 있었고, 그 사랑에 보답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픈 기억이지만,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동기부여로 승화시키고 있는중이다.



이제 나는 안다.
누군가를 제대로 마주하기 위해서는
내가 나를 먼저 마주해야한다는 사실을..




진짜 나와 마주한 나를 축복하듯, 우연한 기회로 나는 37년만에 친엄마와 재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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