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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 약속장소

by 로건리

#1 오락실


초등학생시절 친구들을 만나려면 놀이터에 갔다.

놀이터에 나타나지 않는 친구를 찾으려면 오락실에 갔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 우리의 약속 장소는 놀이터 아니면 오락실이었다.

그마저도 없으면 그 친구의 집으로 가면 그만이었다.


내가 나고 자란 의정부 주택가를 돌아봤다.

그 시절 단골 오락실이 자리하고 있던 곳에 가봤다.

전혀 다른 업종의 가게가 들어와 있는 곳,

그 앞에 서있다 보면 잠시나마 초등학생 시절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것만 같다.


흔적마저도 남아있지 않은, 아파트 재개발로 골목 자체가 사라진 곳,

그곳은 같은 자리지만 조금 다른 감정이 느껴진다.

타임머신이 작동하지도 않고 낯선 느낌이다.


그때 그 친구들은 잘 살고 있겠지?




#2 교문


6학년 졸업식을 마치고 저녁에 우리는 다시 학교에 모였다.

한 친구가 울고 있었다.

우리가 각자 가족들과 식사를 하는 동안 바뀌어있었다.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간판이 바뀐 것이다.

국민학교 마지막 졸업세대,

그땐 그 친구 달래주면서도 그게 울 일인가 싶었다.


우리는 스무 살이 되면 여기서 만나자고 했다.

그리고 우리의 스무 살,

인터넷의 발전으로 다모임, 아이러브스쿨 등

온라인 플랫폼에서 친구들이 다시 연락되었다.


우리는 서른이 되면 교문 앞에서 다시 만나자고 했다.

우리의 서른은 취업을 준비하고, 결혼을 준비하며 바빴을 것이다.

추억팔이 장인인 나조차도 잊고 지나쳤으니까.


우리가 마흔이 되면 만나자는 약속은 그 누구도 하지 않았다.

그 사이 갑자기 병으로 세상을 먼저 졸업한 친구 소식도 들었고,

결혼을 축하한 지 몇 해만에 첫 번째 결혼을 종료한 친구도 있었다.

그 후로 연락이 없다.


고향의 주택가에는 내가 졸업한 국민학교도 아직 있다.

이제는 알록달록 요즘 분위기의 예쁜 초등학교 모습이다.

한참을 서성거려 보지만 친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때 그 친구들은 잘 살고 있겠지?



#3 공중전화박스


스무 살의 나는 참 낭만적이었다.

연상의 여인,

내가 어려서 약간은 무시하는 듯하면서도,

나를 완전히 밀어내지도 않는,

요즘 말로 표현하면 그게 썸이었을까?


휴대폰이 없다는 그녀는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약속 장소를 정했다.

마지막 이메일 속 장소는 8차선 도로 신호등 앞에 있는 공중전화박스였다.


피자를 좋아한다던 그녀를 위해

꼬깃꼬깃 모아둔 만 원짜리 열몇 장과 꽃다발,

그리고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가버리고,

지구의 조명은 밤을 향해 아주 천천히 암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시간, 그 기다림도 아름다웠다.

점심이 아니라면 저녁도 괜찮았다.

그러다가 슬퍼졌다.

내 마음이 하늘에 닿은 건지 빗방울이 떨어졌다.


공중전화박스 안에서 비를 피하고 있으면

사용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자리를 옮겨야 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 장사를 시작한 식당에 불이 꺼졌다.

가슴속에 슬픔의 조각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다가 두려워졌다.

그녀의 마음속에 나도 꺼져버릴까 봐.


막차 시간을 맞춰 집으로 돌아왔다.


23년이 지났다.

이제는 버스 대신 직접 운전을 하고 있다.

그 길을 지나며 문득 그때가 떠올랐다.

마침 그 신호등에 주황색 불이 들어온다.


23년 전 내가 서있던 자리를 보았다.

이제는 공중전화박스가 아닌 조경으로 예쁘게 꾸며져 있다.

내 마음속 그날의 기억 공간에도 예쁘게 조경을 해야겠다.


그녀는 잘 살고 있겠지?




기억 속 약속장소는 설렘, 기쁨보다 후회와 그리움으로 아픈 감정이 더 크다.

그래서 현재의 사람들과 관계에서 후회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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