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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반찬 다이어리 Nov 23. 2023

27. 소란한 제빵실

그날도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따스한 봄 햇살을 받으며 걸어서 학원에 도착했다. 

각 조별로 네명 또는 세명이 모여서서 커리큘럼에 나온 레시피대로 재료들을 순서대로 덜어와 계량을 하고 반죽을 하며 설거지를 하는 루틴은 늘 비슷했다.

보통 어떤 종류의 일이던 여럿이 모여서 팀으로 하게되면 알아서 눈치껏 일을 하는 게 좋다. 서로 배려하고 솔선수범해서 먼저 행동을 하면 정말 눈치없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자연스럽게 그 팀의 분위기는 선순환이 되서 순번을 굳이 정하지 않아도 일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50대 언니와 문신남, 성격좋은 20대 여자친구와 나, 우리 조는 그렇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먼저 움직이며 센스있게 행동했고 그 결과 사이좋게 잘 돌아갔다.

얼떨결에 앉은 자리에서 만들어진 조였지만 지내면 지낼 수록 우리 조가 맘에 들었고, 서로를 배려를 하며 편안해지다보니 웃긴 일이 생기면 마스크 넘어 서로 눈빛으로 웃음을 주고받곤 했다.


베이킹을 하면 할 수록 그 문신남은 한손으로 계란을 툭 쳐서 아무렇지도 않게 깨질 않나, 반죽 분할을 할때도 균일하게 무게를 잘 맞춰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엔 온몸에 문신이 많고 빡빡머리라 뭔가 어두운 곳에서 일했던 사람인가 했는데 손도 빠르고 행동도 민첩하니 그의 과거를 혼자 추적하기에 이르렀다.

"분명 뭔가 요식업에 종사했거나 요리사 자격증이 있는 친구일거야."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옆 조의 과정을 꼭 확인하게 된다. 특히 반죽이 다 끝나서 발효를 기다리기 직전의 성형된 모양으로 완성된 빵의 형태를 미리 가늠할 수 있는데 우리 옆 조나 맨 끝에 남자 3명으로만 구성된 조도 꽤나 실력들이 좋았다.

총 11명의 수강생 중 60대 여자분을 제외하고는 내가 제일 못하는 수준이었다.

우선 집안 일을 많이 해보지 않은 티가 났다. 손도 느리고 무엇부터 먼저 해야될지 머리가 탁탁 안돌아갔다.

"음 다들 밀가루를 좀 만지다 왔나. 왜이렇게 잘하지."


실습실은 남향에 큰 유리창이 한쪽 면에 설치된 곳이어서 유독 햇살이 밝게 들어왔다.

햇빛이 창을 통해 깊게 비춰주니 기본적으로 환한데다 모두 준비물로 챙겨온 하얀 조리복을 입고 있었기에 실습실은 더욱 밝을 수 밖에 없었다.

모든게 새롭고 흥미롭게 느껴져 사람들 표정도 다 밝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어디서 신경질적으로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우리 옆 조 60대 여자분과 20대 젊은 친구 두명으로 구성된 테이블에서 나는 소리였다.

아마 같이 작업을 하다가 미묘한 다툼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60대 여자분과 한 친구간에 신경전이 계속 있다가 60대 여자분이 빽 하고 화를 터뜨린 것 같았다.

평화로운 실습실에 예상치 못한 소음이었고, 그 60대 어른은 손을 털더니 밖으로 나갔다.


쉬는 시간이 다가와서 나는 화장실도 다녀올 겸 실습실 밖을 나갔는데 응접실 소파에 그 60대 여자분이 앉아 있었다.

나는 근처에 앉아서 잠시 휴식을 취하려는데 갑자기 그분이 나를 붙잡고 말을 거셨다.

"아휴 요새 젊은 친구들은 왜이렇게 타이트한가 몰라요. 내가 참 힘들어서 원."

"아 네 그러셨어요.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그러게 말이에요. 아니 우리 세대라 그런가 말이 잘통하네. 그쵸? "


순간 나는 말을 멈췄고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수가 없었다.

같은 세대라니.

그 말을 듣고 적어도 우리 옆 조 테이블에서 일어난 사건이 단순히 한쪽에서만의 잘못이나 책임이 아닐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모든 다툼이 다 그렇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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