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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반찬 다이어리 Nov 17. 2023

26. 빠른 사람들

실습실에 어색하게 앉아있는데 곧 검정색 조리사복을 입은 선생님이 등장하셨다.


"안녕하세요."

커트머리의 여자 선생님이 살짝 수줍은 듯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수업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커리큘럼을 말씀해 주셨고, 일자별로 무슨 빵을 만드는지가 쭉 적혀진 수업시간표를 나눠주셨다.


난생 처음 실물로 보는 조리사복이 신기하게 느껴져 선생님의 옷을 아래 위로 흘낏 쳐다봤다.

그리고 내 손으로 넘겨진 수업시간표에 다양한 종류의 빵이랑 제과류가 써있다는 사실이 생경하면서도 웃음이 삐직 새어나올 정도로 웃겼다.

여태 내가 살아오고 경험했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광경에 만족감과 설레임을 느끼며 선생님의 말씀 하나하나에 귀 기울여 집중했다.

집중하는 내 얼굴의 근육이 미세하게 위로 올라가 있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기분 좋은 긴장감이 나도 모르게 얼굴도 변화시킨 듯 했다.


선생님의 오리엔테이션은 생각보다 빨리 끝나고 바로 실습에 들어갔다.

첫 실기 실습은 다름 아닌 식빵이었는데, 그 옆에 "비상 스트레이트"라고 글자가 따로 적혀있었다.

식빵은 알겠는데 비상 스트레이트라니 전혀 감이 안잡혔지만 비상이라고 하니 뭔가 정상은 아닌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50대 언니 여자분과 20대 문신남, 통통하고 귀여운 인상의 20대 여자가 나와 같은 조여서 서로 눈인사와 어색한 아이스 브레이킹을 하며 각자의 이름과 간단한 소개를 했다.

시간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사불란하게 밀가루와 설탕 소금 이스트같은 재료들을 가져와 계량을 시작했다.

무엇부터 해야될 지 빠르게 판단이 안되서 우물쭈물 거리는 사이 다른 사람들은 재료가 담긴 통의 위치나 실습실 내 효율적인 동선을 벌써 다 파악해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솔직히 쉽게 봤고 그냥 주는 재료로 빵을 만들면 되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이 첫 수업부터 박살나면서 모든 건 체계가 있고 그냥 되는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나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친구들에게 놀라고 존경심을 갖게 된 날이었다.

특히 문신남은 커다란 덩치에서 느껴지는 육중함과는 다르게 행동이 그렇게 민첩할 수가 없었다.

행동이 그렇게 민첩하려면 머리도 좋아야되고 그만큼 경험에서 축적된 회로들이 제대로 작동되야만 가능한 것이다.

귀여운 인상의 20대 여자는 손끝이 야무지고 사회성이 아주 좋았다. 보통 흔히 얘기하는 MZ에서는 느껴보기 힘든 푸근함과 배려심이 돋보였다.

50대 언니는 사회에 찌들지 않은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었고 말도 차분하고 우아하게 하는 분이었다.


우리 조는 그렇게 우연히 구성된 만남에도 서로를 배려하면서도 긴장감을 놓지 않고 식빵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난생 처음 그렇게 많은 양의 밀가루를 손으로 만지고 반죽하며 그간 쓰지 않던 근육을 쓰니 잊고있었던 또 다른 감각이 세상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것 같았다.


발효된 반죽 세덩이를 빵틀에 넣어 조물조물 정돈을 한 다음에 오븐에 넣고 빵이 완성되기를 기다렸다. 이 순간이 제일 기다려지고 궁금했다.

모든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 만든 하얗고 평범한 밀가루가 쫀득한 반죽이 되고, 오븐에 넣으면 구움색을 띄고 부풀어올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탄생되는 순간.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선생님은 이제 오븐을 열어 빵의 색깔과 상태를 확인하고 꺼내도 좋다고 하셨다.

오븐을 여는 순간 실습실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비상스트레이트 식빵.

오늘같이 오리엔테이션하고 아이스 브레이킹을 하여 시간이 여유롭지 않은 날 빠르게 발효를 시켜 빵을 만드는 기법이다.


우리는 빠른 시간에 밀가루를 치대 만들어진 식빵을 꺼내 보고는 서로가 만든 빵을 비교해가며 신기해했다.

서로 식빵을 먹어보라고 권했고, 보송보송한 식빵의 부드러운 살을 뜯어먹으면서 웃음이 멈출지 몰랐다. 

계산되지 않은 웃음이 가득한 실습실의 광경이 따사로웠다.


#글로성장연구소 #별별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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