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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반찬 다이어리 Nov 30. 2023

28. 뒤바뀐 자리

60세 그분에게 같은 세대라는 소리를 듣고 난 이후 그 말은 어딜 가나 계속 나를 따라다녔다.

그런 이유로 매일 학원에 갈 때마다 거울을 더 많이 보게 되었고 혹여나 쉬는 시간 화장실에 갈 때도 큰 거울에 비춰보면서 뚫어지게 나를 쳐다보았다.

상태가 꽤 괜찮은 날엔 거울앞에 서서 그녀를 노려보듯 좌우로 고개를 흔들어댔고, 상태가 별로인 날엔 나 스스로도 긴가민가 하여 고개를 갸웃하곤 했다.


마치 60세 그분에게 해야할 행동들을 거울에 대고 하듯이 말이다.

"이거봐요. 어딜 봐서 제가 당신과 같은 세대라는 거죠? 봐요. 아니잖아요."

"흠. 오늘 제 상태가 구리긴 해도 당신과 같은 세대는 좀 아니지 않나요?"


결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는 심정이었지만 솔직히 예전에 비해 후덕해진 모습은 어느 각도에서나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묘하게 기분 나쁘게 만드는 그 말은 나쁜 콜레스테롤처럼 서서히 온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갔다.


그 뒤로 나는 60세 그분과 같은 카테고리에 묶이지 않기 위해 학원에 갈 때 최선을 다해 외모에 신경을 썼다.

아침 저녁으로 다양한 영양소가 포함된 프로틴과 식이섬유를 더 열심히 꼬박꼬박 섭취했고, 이 기회에 살이나 좀 빼야지 라고 생각하며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같은 길을 내내 걸어갔다.

편도로 40분이 좀 안되는 거리를 뚜벅뚜벅 걷다가 어느 순간, 과거에 앞만 바라보던 고개의 각도가 양 옆까지 자유로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그렇게 정면에서 좌우까지 넓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늘 학원 수업시간에 임박하게 도착하던 나는 그날도 거의 정시에 맞춰 실습실 문을 열고는 쑥스러운듯 내 자리를 찾아 앉으려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평소 문신남과 50대 언니, 20대 성격좋은 여자친구의 조합이 보이지 않았다.

이상해서 옆 조를 둘러봤는데 평소랑 전혀 다른 멤버로 구성되어 있었다.

문신남은 창가 옆 남자 3명으로 구성된 조에 껴 있었고, 20대 성격좋은 여자친구는 지난번 60세 그분과 트러블이 있었던 20대 여자 두명이 있던 조에 같이 앉아있었다.


눈알을 두리번 거렸다.

내가 앉을 곳이 어딘가 싶어 다시 찾아봤는데 아무리 봐도 비어있는 자리는 가운데 테이블밖에 없었다.

그 자리로는 유독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60세 그분이 거기 앉아있었고, 우리 조였던 50대 언니가 그 옆에 앉아있었다.

내 자리는 그 두 분의 맞은편 빈자리였다.


"오늘 부득이하게 자리를 이렇게 구성해봤어요. 서로 돌아가면서 친해질 필요가 있고 상황되면 또 바꿀테니까 이렇게 지내보면서 열심히 해봅시다."

선생님의 일방적인 조 편성이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었다.

사회생활 20여년 경력으로 다져진 포커페이스가 순식간에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그날은 뭘 배웠는지도 크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60세 그분과 같은 세대로 묶이기 싫어서 그렇게 거울을 열심히 보며 나름 외모에 신경을 썼건만 이렇게 대놓고 같은 조로 묶이다니.

우리 조는 그리하여 최고령 3인방으로 누가 봐도 같은 세대로 볼 수 밖에 없는 조로 이뤄졌다.

그게 왜 그렇게 부끄럽던지, 왜 그렇게 화가 나던지. 50대 언니는 원래 우리 조에서 같이 잘 지냈기에 상관이 없었지만 최고령 3인방을 한 조로 몰아버린 건 큰 오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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