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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반찬 다이어리 Dec 08. 2023

30. 제과제빵 자격증 필기시험

60세 그 분과 같은 조를 하면서 지내는 기간이 길어질 수록 무뎌져야 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한번은 50대 언니랑 그날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언니가 뭔가 할말이 있는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난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무슨 일 있어요?" 하는 입모양을 하며 그 언니에게 화답했다.


학원에서 내려와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기 전까지 언니와 얘기를 나눴는데, 60세 그분이 이 언니에게 제빵 실습시간 동안 허드렛일이나 자잘한 심부름 같은걸 시켜서 언니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사실 그 분과 거의 형식적인 말만 하고 얼굴도 거의 마주치지 않으면서 할 것만 딱 하고 지냈기에 언니에게 그런 고충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어머 언니 마음 고생이 심하셨네요. 제가 무뚝뚝하게 있으니 그 분이 언니한테 함부로 시켰나봐요. 저 그동안 참았는데 사실 조 바꿔달라고 선생님한테 말할까봐요."

"반찬씨 이미 내가 선생님한테 얘기했어요."

항상 모범적이고 성격도 좋은 그 언니가 쥐도 새도 모르게 선생님에게 얘기를 했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기뻤다.


60세 그 분은 같이 작업을 해보니 눈치가 있는 편이 아닌데다, 시간 제한이 있는 실습시간에 몸은 되게 분주하게 움직이는데 초조해지는 상황이 되면 혼자 압박을 느끼며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성향이 있었다.

사람 자체가 나쁜 건 아니었지만 그런 것들이 조금씩 쌓여 주변사람에게 묘한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이었고, 나에게는 무엇보다 같은 세대로 묶었다는 사실이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녔기에 도저히 그 분을 같은 조원으로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런데 모범생인 그 언니까지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더 증폭되어 몇일 뒤 수업시간이 끝나는 틈을 노려 선생님께 우회적으로 조 변경에 대한 요청을 하였다.


그러던 중 선생님은 자격증 필기 시험이 곧 도래하니 다같이 접수해서 시험을 보자고 하셨다.

나는 자격증은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모두가 당연스레 시험을 접수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같이 등록을 했다.

필기 시험을 앞두고 문제집을 구입한 후 선생님의 지도하에 다 같이 수업시간의 절반을 할애해서 필기시험 공부를 했다.

각종 영양소부터 음식점의 시설 환경 규정에 빵 만드는 과정과 재료들, 그런 생소한 용어와 내용들이 다시 한번 내가 새로운 세상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필기 시험은 제빵과정과 제과과정 각각 따로 시험을 봤야했다.

생각보다 공부할 양이 많아서 잊혀졌던 수험생 시절이 살짝 떠올랐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평화로웠다.


학원 수업 후에 집에 가서 문제집을 펼쳐보고 공부를 하겠다는 다짐은 보통 집에 도착하자 마자 마음이 바로 바뀌어 버렸다.

실습을 하는 네시간 동안 거의 서서 작업을 하여 생각보다 피로도가 있었기에 집에 도착하면 바로 책을 펼치기가 귀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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