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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반찬 다이어리 Dec 13. 2023

31. 필기시험 결과를 받아들다

첫번 째 필기시험은 제빵기능사 과목이었다.

단 한번도 시험 보기 전에 흡족하게 공부를 했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 없는 채로 평생을 살아왔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아 책 조금만 더 볼걸."

시간이 조금만 더 주어진다면 정말 열심히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은 간절함은 시험 시간이 임박해 올수록 더 심해진다.

늘 시험 전 불편하고 찝찝한 마음은 시험이 시작되면서 조금씩 사라진다.

전체 60문제 중에 확실하게 아는 문제는 몇개 되지 않았다. 정답일 것 같다고 생각한 문제마저도 나중에 다시 읽어보면 다른 게 답 같아서 시험시간 내내 헷갈림과의 싸움이었다.

보통은 시험 문제를 아무리 모른다해도 나름대로 생각해서 푸는 타입이라 이번에도 생소한 문제가 있었지만 종료시간까지 시간을 다 채워썼다.

그런 면에서는 최선을 다한 시험이었다.


제빵기능사 필기시험은 시험을 보고난 후 조금만 기다리면 컴퓨터로 채점을 매신 후 점수를 띄워주어 합격여부를 즉시 알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사실 빵집을 차릴 생각도 없고 배우는 과정에서도 엄청나게 흥미를 느낀 건 아니라서, 이 시험이 내 인생과는 크게 상관도 영향도 없을 거라는 건 직감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시험 결과는 항상 극한의 떨림을 가져다 주었다.


화면에 점수가 나타났고 한치도 예측할 수 없었던 결과에 나는 몇초간 속으로 함성을 지르고야 말았다. 

"합격" 

대부분 같은 장소에서 시험을 본 학원 동기생들을 건물 앞에서 만났는데 합격률이 절반을 넘지 않는 듯 했다.

예측이 안되던 시험결과에 합격점을 받아들은데다 생각보다 합격률이 그리 많이 높지 않은 분위기였기에 상대적으로 뭔가 더 이룬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랜만에 무언가 인정받은 기분이 들어 나는 동네방네 필기시험 합격 결과를 알렸다.

이 소식을 들은 친한 직장 동료가 전에 제과제빵 과정을 배웠었는데 시험에 떨어졌었다는 뜻밖의 고백을 하며 축하를 해주었다.

"언니 그거 시험 합격하기 은근 어려운데. 축하해."


시험이 끝난 후 큰일이라도 치룬 듯 나는 맛있어보이는 식당을 두리번거리며 찾기 시작했다.

"사장님. 여기 제육백반 주세요."

오전에 시험을 보고 학원 수업을 가기까지 한시간 정도의 여유시간이 있었기에 나는 재빨리 먹을만한 식당을 스캔하여 앉았던 것이다.

적당히 두툼한 돼지고기에 불향이 입혀져있고 고추가루로 칼칼한 맛에 단맛까지 어우러져 제육의 정석 양념이라고 봐도 좋을 법 했다.

게다가 뜨거운 밥에 여러가지 반찬, 국까지 작은 냄비에 끓여먹을 수 있는 완벽한 메뉴에 대만족하며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허겁지겁 학원으로 가서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고 60세 그분과 성격좋은 언니가 있는 우리 조에 조용히 앉았다.

60세 그분은 나를 보자마자 물었다.

"시험 잘 봤어요? 합격?"

"아.네."

그 분은 갑자기 내 손을 덥썩 잡아끌며 말했다.

"아우 우리 조는 다 합격이네. 나 다음주에 시험볼 때 좋은 기운 좀 받게 손 좀 잡아야겠네."

 그 분의 갑작스런 행동에 잠시 넋놓고 손을 뺏겼다가 나는 이내 스르르 손을 뺐다.


"왠 기운. 공부를 해야 결과가 좋지. 손하고 뭔 상관."

입을 삐죽대며 속으로 주절댔다.

60세 그분이 나를 같은 카테고리로 묶은 뒤로, 마음이 풀리지 않은 나는 어쩐지 손을 잡는 게 어색하고 부담스러워서 그 분의 손을 뿌리치고야 말았다.


#글로성장연구소 #별별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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