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밥반찬 다이어리 Jan 15. 2024

낭만은 사치, 월요일은 빨리 다가온다

미리의 표현에 금형은 뭔가 찔린 듯이 당황한 기색을 보이고는 피곤할테니 얼른 쉬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미리는 좀 전까지 두근대며 이리저리 날뛰던 심장이 그제야 제자리를 찾은 듯 마음의 평화를 얻은 것 같았다.     

그녀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거울을 바라보았다.

“젠장. 어제도 화장을 안지웠네.”

마스카라가 눈 밑에 번져있었고 얼굴엔 기름기가 잔뜩 껴 한숨이 나올만한 얼굴이었다.

미리는 바로 세면대로 직행해 뒤늦은 후회를 하며 클렌징폼으로 세 번이나 얼굴을 박박 씻어댔다.


그리곤 팬트리로 가서 뭐가 있나 쭉 훑어본 후 익숙한 듯 라면을 집어 들었다.

“오늘 해장은 이걸로 해야지.”     

라면을 먹고 나니 피곤함이 온몸을 타고 퍼지는 것 같았다. 잠시 책을 들고 있다가 어느 새 미리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한참을 자고 일어나니 벌써 어스름한 저녁이 되었다.


“위잉”

“황 과장님 어제 잘 들어가셨어요? 덕분에 어제 정말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 보냈어요. 앞으로도 과장님 어디 계시든 심심할 때 저 좀 꼭 불러주세요. 그럼 주말 푸욱 쉬세요.”

핸드폰을 열자 생각도 못한 메시지가 와 있었다. 홍 대리의 동기인 심 대리로부터 온 것이었다.     

미리는 멍하니 초점 흐린 눈으로 보다가 갑자기 헛웃음이 나왔다.

정작 바라는 사람한테는 그런 메시지가 오지 않고 엉뚱한 사람에게 오다니.     


직장인에게 주말은 이틀이 아니라 하루처럼 빨리 가는 법이다.

어느 새 지독한 월요일이 돌아와 출근을 하는 데 문득 지난 금요일의 술자리가 생각나 왠지 사무실로 들어가기가 멋쩍었다.     

“안녕하세요.”

언제나 출근 인사는 어색했다.


“황 과장.”

출근하자마자 고 부장이 그녀를 불렀다. 불길한 예감을 안고 고 부장에게로 다가갔다.

“황 과장. 월요일 아침부터 이러고 싶지는 않은데 어쩔 수가 없구만. 지난번에 얘기했던 4번 항목 월별 시장동향 분석 그래프 수정했지? 얼른 보고서 달라고. 시간을 그렇게 줬는데 아직 다 안한건가 설마. 대체 그거 하나 고치는데 시간을 얼마나 잡아먹는건가. 오늘 오전까지는 무조건 이상없이 마무리해서 올려달라고. 몇 번을 얘기하나 도대체.”     


지난 금요일의 술자리를 떠올릴 여유같은 건 없었다.

미리는 급한 불부터 꺼야했기에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고, 자리에 앉자마자 엑셀을 열고 스크롤로 계속 내리며 그래프를 찾았다.

“아 이거 분명히 수정한다고 했는데 왜 안됐지?”

미리는 정신없이 데이터를 수정하고 문구도 좀더 어울리게 보완하여 보고서를 마무리했다.     

“메일이 전송되었습니다.”

“부장님. 방금 보고서 올렸습..”

 “지금 읽고 있네.”

고 부장은 남에게 칭찬하는 법이 없었다. 아무 말이 없으면 보통 이상이 없다는 걸로 이해하면 되는데 다행히 별말 없는 걸로 보아 이번엔 무사히 통과된 것 같았다.     


미리는 잠시 화장실에 들러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피곤하게 산다. 황미리.”

이전 08화 그와의 대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