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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반찬 다이어리 Jan 15. 2024

낭만은 사치, 월요일은 빨리 다가온다

미리의 표현에 금형은 뭔가 찔린 듯이 당황한 기색을 보이고는 피곤할테니 얼른 쉬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미리는 좀 전까지 두근대며 이리저리 날뛰던 심장이 그제야 제자리를 찾은 듯 마음의 평화를 얻은 것 같았다.     

그녀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거울을 바라보았다.

“젠장. 어제도 화장을 안지웠네.”

마스카라가 눈 밑에 번져있었고 얼굴엔 기름기가 잔뜩 껴 한숨이 나올만한 얼굴이었다.

미리는 바로 세면대로 직행해 뒤늦은 후회를 하며 클렌징폼으로 세 번이나 얼굴을 박박 씻어댔다.


그리곤 팬트리로 가서 뭐가 있나 쭉 훑어본 후 익숙한 듯 라면을 집어 들었다.

“오늘 해장은 이걸로 해야지.”     

라면을 먹고 나니 피곤함이 온몸을 타고 퍼지는 것 같았다. 잠시 책을 들고 있다가 어느 새 미리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한참을 자고 일어나니 벌써 어스름한 저녁이 되었다.


“위잉”

“황 과장님 어제 잘 들어가셨어요? 덕분에 어제 정말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 보냈어요. 앞으로도 과장님 어디 계시든 심심할 때 저 좀 꼭 불러주세요. 그럼 주말 푸욱 쉬세요.”

핸드폰을 열자 생각도 못한 메시지가 와 있었다. 홍 대리의 동기인 심 대리로부터 온 것이었다.     

미리는 멍하니 초점 흐린 눈으로 보다가 갑자기 헛웃음이 나왔다.

정작 바라는 사람한테는 그런 메시지가 오지 않고 엉뚱한 사람에게 오다니.     


직장인에게 주말은 이틀이 아니라 하루처럼 빨리 가는 법이다.

어느 새 지독한 월요일이 돌아와 출근을 하는 데 문득 지난 금요일의 술자리가 생각나 왠지 사무실로 들어가기가 멋쩍었다.     

“안녕하세요.”

언제나 출근 인사는 어색했다.


“황 과장.”

출근하자마자 고 부장이 그녀를 불렀다. 불길한 예감을 안고 고 부장에게로 다가갔다.

“황 과장. 월요일 아침부터 이러고 싶지는 않은데 어쩔 수가 없구만. 지난번에 얘기했던 4번 항목 월별 시장동향 분석 그래프 수정했지? 얼른 보고서 달라고. 시간을 그렇게 줬는데 아직 다 안한건가 설마. 대체 그거 하나 고치는데 시간을 얼마나 잡아먹는건가. 오늘 오전까지는 무조건 이상없이 마무리해서 올려달라고. 몇 번을 얘기하나 도대체.”     


지난 금요일의 술자리를 떠올릴 여유같은 건 없었다.

미리는 급한 불부터 꺼야했기에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고, 자리에 앉자마자 엑셀을 열고 스크롤로 계속 내리며 그래프를 찾았다.

“아 이거 분명히 수정한다고 했는데 왜 안됐지?”

미리는 정신없이 데이터를 수정하고 문구도 좀더 어울리게 보완하여 보고서를 마무리했다.     

“메일이 전송되었습니다.”

“부장님. 방금 보고서 올렸습..”

 “지금 읽고 있네.”

고 부장은 남에게 칭찬하는 법이 없었다. 아무 말이 없으면 보통 이상이 없다는 걸로 이해하면 되는데 다행히 별말 없는 걸로 보아 이번엔 무사히 통과된 것 같았다.     


미리는 잠시 화장실에 들러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피곤하게 산다. 황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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