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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반찬 다이어리 Jan 05. 2024

33. 이대남과 같은 조가 되다

필기 시험 결과가 나오고 나서도 당락과 관계없이 수업 일수가 꽤 남은 상태였기에 우리는 여전히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제과 과정을 배우며 실습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동시에 60세 그분과 같은 조로 지낸 시간도 꽤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데 성격 좋은 50대 언니의 조 변경 요청과 나의 둥글면서도 날카로운 투덜거림에도 조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에 반 쯤은 포기상태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날은 학원까지 걸어가는데 어느 새 몸에 열기가 느껴지고 이마에 살짝 땀이 맺혔다.

제과제빵 수업 초기만 해도 꽤 쌀쌀하게 느껴졌던 온도가 이제는 온 몸을 부드럽게 이완시켜주며 마음까지 누그러뜨려 주듯 따뜻했다.

기분 좋은 여유로움을 느끼며 학원 건물에 도착해 카페같은 학원의 대기 공간 지나 우리 반 실습실 유리문을 열었다. 

60대 그분과 온화하신 50대언니, 그리고 내가 가운데 조라 구석에 있는 문을 열고 살짝 안쪽으로 들어가면 됐는데 갑자기 내 자리가 안보였다.

다시 자세히 보니 50대 언니가 창가쪽인 맨 오른쪽 끝에 앉아계셨고 60대 그분은 그대로 가운데 조에 계셨다.


"어. 어떻게 된 일이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두리번 거리며 내 자리를 찾고 있는데 50대 언니가 웃으며 내게 손짓을 했다.

"여기에요. 반찬씨. 앉아요."

난 50대 언니 옆자리에 앉게 되었고 그 맞은 편에는 제일 처음에 같은 조였던 20대 문신남과 하얗고 순수한 눈웃음을 가진 20대 훈남이 앉아있다는 걸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야 이게 무슨 일이지?"라며 속으로 외치면서 자리에 앉았는데 광대 근육이 그만 주체를 못하고 사방으로 씰룩대는 바람에 티가 날 새라 고개를 숙였다. 마스크를 써서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사실 눈으로도 이미 충분히 미소가 만연하다는 있을 정도였다.

환희의 기쁨을 잠시 누르고 고개를 돌려 50대 언니를 바라봤는데 전에 보지 못한 환한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언니의 눈이 마스크 위로 가까이 내려와 있었기에 마스크 속으로 광대가 얼마나 올라와 있는지 상상이 되었다. 그러니 나는 더욱 웃음이 실실 새어나올 수 밖에 없었다.

드디어 우리가 염원하던 조 변경이 이루어진 것이다.


"안녕하세요."

다들 어색한 웃음으로 첫인사를 대신했다. 50대 언니와 나는 60대 그분에게서 해방된 데다 20대의 친절하고 실력 있는 두 사람과 같은 조가 된 기쁨에 얼굴 표정이 하루만에 양방향으로 상승하는 경험을 했다.


그 날은 특히나 회사에서 고개만 돌리면 쉽게 볼 수 있었던 찌든 얼굴과 늙은 사고의 사람들에게서 벗어났다는 생각이 확연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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