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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반찬 다이어리 Mar 11. 2024

야근이냐 술이냐

"황미리 과장. 이번주 목요일 3시에 파마산 고객사 미팅 있는거 알죠? 자료 준비하고 이번에는 황과장이 회사 소개 발표해 보는 걸로 합시다. 오케이?"

고부장이 월요일 아침부터 미리를 불러세우며 말했다. 

 ”오. 과장님. 이거 좋은 신호 아닌가요?"

"에이 아니 뭘. 너무 부담스러운데 왜 나한테 이걸."

홍대리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미리를 보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가끔은 홍대리의 눈빛에서 뭔지 모를 서늘함이 느껴졌다. 정말로 좋아해 주는 것 같은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눈빛 끝에서 이어지는 잔상에는 차가움이 묻어났다.


파마산을 상대로 발표 해야하는 일은 귀찮고 두려운 과제였지만 미리도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휴. 이번주는 내내 야근해야겠네."

“황 과장님. 고생하세요. 저는 먼저 갈게요.”

고부장과 홍대리가 동시에 나가며 미리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도시의 사무실 창 밖은 외로웠다.

화려한 불빛들이 미리의 사무실 창에 반사되어 형체없이 반짝거렸다.

모니터로 눈을 돌린 미리의 눈에 파워포인트 문서가 아닌 금형의 얼굴이 스쳤다.

‘금형님은 뭐할까. 카톡이나 보내볼까?’     


“금형님. 오늘 뭐해요?”

카톡을 보내자마자 미리의 전화가 고요한 사무실을 진동음으로 흔들리게 했다.

그 진동음에 따라 미리의 마음도 요동치기 시작했다.     

”미리님. 식사 같이 할까요? 제가 미리님 사무실 근처 맛집 알거든요."

"아 금형님 저 오늘 야ㄱ.  아니 그 맛집이 어디에요?"     

‘후. 아니 어쩌다 약속을 잡았지? 오늘 자료 어느 정도 만들고 가려고 했는데.’

미리는 말과 다르게 컴퓨터 전원을 끄고 가방을 꺼내 화장품 파우치를 열었다.

팩트를 꺼내 빠른 손놀림으로 얼굴을 톡톡 두드리다가 거울에 비친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     

‘오늘 상태 좀 괜찮은데?’

거울 안에는 퇴근 직전의 검붉은 직장인 얼굴이 아니라 반짝거리는 눈을 가진 젊은 얼굴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딸깍”


수정 메이크업을 마친 후 팩트의 커버 뚜껑을 닫는 소리가 그녀의 귀에 경쾌하게 일렁였다.     

미리는 사무실 문을 잠그고 나온 후 화장실에 들러 전신 거울로 옷 매무새를 한번 더 확인하고 괜히 거울 앞에서 휙 하고 한번 더 돌아보았다.

그녀는 이런 자신의 모습을 보고 금형이 미소 짓는 얼굴을 떠올리며 아침에 자기도 모르게 신경 쓰고 나온 것에 대해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바깥을 나오자 상쾌한 바람이 미리의 뺨을 부드럽게 매만져 주었고, 미리의 입가는 어느새 위로 올라가 있었다.


금형이 알려준 식당을 가기 위해 사무실 앞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미리는 초록불로 바뀌자 성큼성큼 앞을 향해 돌진하듯 걸어갔다.

거의 건널목을 다 건너갈 때쯤 누군가가 미리의 등 뒤에서 탁 쳤고, 반사적으로 그녀는 고개를 뒤로 돌려다 보았다.     

“와. 과장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제가 몇 번 연락 드렸었는데 답이 없으셔서 홍대리한테 과장님 안부 여쭤봤었어요. 그런데 어디 좋은 데 가시나봐요?”

“아. 심대리님. 저 약속이 있어서 지금 가는 길이에요.”

심대리는 미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씽긋 웃어보였다.

“과장님. 왜 더 예뻐지셨어요? 진짜 좋은 일 있으신거 아니죠?”

“좋은 일은요 무슨.”

미리는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저는 이쪽으로 가볼게요. 심대리님.”

미리가 헤어지려 하자 심대리는 그녀의 손을 낚아채더니 손바닥에 무언가를 쥐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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