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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반찬 다이어리 Apr 15. 2024

어제와 같은 오늘

“미리님. 잘 들어가셨나요? 어제는 약 먹고 일찍 잠들어서 메시지를 못봤네요. 오늘 늦게까지 일했나봐요. 이 새벽에 메시지를 보내려니 미리님 얼굴이 아른거리네요. 조만간 저희 또 보는걸로 해요. 푹 자요.” 

 

아침 일찍 눈을 뜬 미리의 손에 곧이어 핸드폰이 잡혔고, 그 찌푸린 눈 틈 사이로 금형의 메시지가 먼저 들어왔다.

때 늦은 인사말이었지만 따뜻함이 느껴지는 그 메세지에 미리는 진짜 개운하게 자고 일어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전날 야근을 한 덕에 출근하는 기분은 덜 불쾌하고 덜 찝찝했다.

     

“휴. 이제 출근 준비하고 얼른 나가보자.”     

8시 40분쯤 정류장에 내려 사무실을 향해 분주하게 걸어가는데 먼발치에서 고부장의 등이 보였다.

미리는 반사적으로 걸음을 멈춰 속도를 늦췄고, 계속 그와의 일정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 고부장의 뒷모습을 주시했다.

그런데 어쩐지 멀리서 보는 고부장의 모습은 가까이서 보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항상 고개를 빼꼼히 들어서 눈 아래로 직원들을 바라보던 그의 자세와는 달리 구부정한 어깨가 여느 직장인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흠. 저 사람도 별 수 없군. 아 이런. 황미리 정신차려. 저 인간이 한 짓을 생각해.’

    

늘 그렇지만 사무실로 들어서는 낯선 광경은 단 하루도 미리에게 익숙하게 다가온 적이 없다. 

‘거참. 언제쯤 이 모습이 생경하지 않을지 나도 궁금하네.’     

아침에 제일 평화로움을 느끼는 순간은 그녀가 컴퓨터 전원을 켜고 자리에 막 앉았을 때다.

게다가 고부장의 잔소리까지 들리지 않는다면 더 없이 좋을 하루겠지만 출근길에 잠깐 봤던 그 구부정한 어깨의 잔상을 완벽히 날려버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9시 반에 회의합니다.”     

가끔은 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말에 미리는 눈 앞에 펼쳐진 이 장면이 그제 일어난 일인지 오늘 일인지 헷갈릴 정도로 시공간 구분이 안됐다.


“황미리 과장. 어제까지 한 보고서 내용 브리핑 먼저 하지.”

“다음달 경쟁사에는 점유율 선점과 소통을 더 강화하는 차원에서 고객사를 대상으로 대규모 행사를 진행한다고 합니다. 상반기에 구축된 고객 신뢰도를 더 끌어올리고 하반기에 계획된 신규 사업 프로젝트와 프로모션도 홍보할 계획으로 조사되었습니다.”

     

10분도 채 되지 않는 발표 시간 동안 미리의 심장은 피가 멎은 듯 호흡이 가빠졌다가 끝나는 순간 빠르게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자신의 발표가 끝나면 남의 말은 귀에 들리지 않는 법이다.

뒤이어 두명의 발표가 있었고 마지막으로 고부장의 연설이 이어졌지만 미리는 멍한 상태로 듣는 척만 하고 있었다.

순간 미리는 다시 그 서류보관실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아. 회의 끝나면 진짜 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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