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순? 그게 뭐 어떻게 생겼더라."
남편은 어디선가 전화를 받더니 내게 죽순을 먹을거냐고 물었다.
보통 누군가 아는 단어를 내뱉으면 머리 속에 그 생김새나 이미지가 떠오르기 마련인데 죽순은 자주 접해보지 않은데다 먹어본 적도 거의 없었기에 잘 연상되지 않았다.
기껏 해봐야 잘게 잘려진 단면으로 허여멀건하게 볶여있던 모습, 내 기억속의 죽순은 딱 그 정도였다.
남편의 이모님은 거의 자연인 수준으로 농사를 짓고 산나물도 캐신다고 했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건강과 자연밥상에 관심이 많으신데, 얼마 전에 죽순을 많이 구하셨는지 필요하면 주겠다고 남편에게 전화를 하신 것이다.
요리를 제대로 한 지 3-4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완전한 요리담당이 된 내게 그는 물었다.
"응. 그래. 달라고 해."
종종 회사에서 뚜렷한 담당자가 없어서, 내지는 낮은 직급이라 할 수 없이 떠밀려 했던 일이 어느 새 내 업무로 고정되어 버리는 순간이 있지 않은가.
눈물도 흘리지 못하고 이게 아니라고 외치지도 못한 채 마음 속으로만 억울한 말들을 삼키고 삼켰었다.
부부라는 것이 또는 연인관계라는 것이 회사와 똑같은 형태의 계약관계로 얽힌 것은 아니지만 가끔은 그때의 억울했던 순간들이 얇은 끈으로 이어져 내 현실에 와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럼에도 음식에 워낙 관심이 많은 내게 죽순은 비록 생소했지만 일단 먹는 거니까 '감사합니다'하고 받아두자 싶었다.
게다가 구하기 어려운 식재료는 더더욱 받아야하지 않은가.
그 날 저녁 볼일을 보고 늦게 집에 들어왔는데 죽순이 도착해있었고, 남편은 이모님이 알려준대로 1차로 손질된 죽순을 지퍼백에 담아 물을 채워넣고 있었다.
"어머. 죽순이 이렇게 생겼어? 으 좀 징그럽네."
그간 자주 접해본 적이 없어서 이게 나무인지 채소인지 정체를 알 수가 없었고, 알 필요도 못느꼈던 죽순의 헐벗은 모습을 처음으로 마주한 순간이었다.
겉 모양이 큰 애벌레 같았는데 가공되기 이전인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보니 왜 죽순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대나무가 자라기 전이지만 어린 순에도 어른 대나무의 모습이 있었다.
잠들 기 전에는 항상 내일 뭐 먹을지에 대해 생각하거나 요리, 음식에 관한 유튜브를 본다.
죽순이 땅에 떨어졌으니 내일은 이걸 활용한 요리로 정해지니 고민은 한결 가볍다.
먹는 것도 좋아하지만 더 좋은 건 요리하는 과정이 참 재미있고 궁금하다는 것이다.
이것과 저것을 섞으면 어떤 맛이 날지, 잘 어울릴지 아닐지 그 상상하는 재미가 나를 요리로 이끌게 한다.
만약 오로지 남편만을 위해 요리를 한다고 생각했다면 이렇게 지속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다음날 레시피가 정해지면 요리할 기분에 설레이곤 한다.
전날 저녁에 죽순을 자르는데 자연스럽게 파스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오. 이거 죽순. 파스타에 넣으면 잘어울리겠는데."
아침, 저녁엔 루틴으로 단백질 쉐이크와 비타민들을 챙겨먹고 있으니 점심은 무조건 내가 먹고싶은 대로다.
파스타의 기본, 올리브 오일에 마늘을 썰어 약한 불로 타지 않게 볶는다.
왠지 소금은 조금 밋밋할 거 같아 새우젓으로 죽순의 감칠맛을 살려보기로 한다.
새우젓 투하.
마늘의 알싸하면서도 강력한 향이 퍼지고 이어 새우젓의 꼬릿하면서 깊고 풍부한 짠내가 어우러진다.
'이제 파스타 면만 이제 익으면 되는데.'
마음이 급해진다.
드디어 알맞게 익은 파스타면을 면수와 함께 퍼올려 팬에 뒤적뒤적 볶아준다.
파스타와 주 재료인 죽순이 얌전한 아이보리 빛깔이니, 접시는 화려한 걸 꺼내어 보기 좋게 올려준다.
봄 햇볕이 강해 어느 새 무럭무럭 자라난 루꼴라를 씻어 초록색을 더해준다. 게다가 항산화 효과까지 있다고 하니 남들보다 덜 늙지 않을까 상상하며 장식한다.
면에 이미 배인 오일은 부족한 감이 있으니 올리브오일을 접시에 휙 휘둘러주고 후추를 톡톡 넣는다.
이러고도 맛이 어딘가 살짝 부족하다면?
치즈를 갈아넣자.
천연 치즈는 화학첨가물을 넣은 조미료를 건강하게 대체한다.
드디어 입 안 한가득 파스타를 넣어 맛을 본다.
'와. 이건 내가 생각해도 잘 어울리는데. 죽순 루꼴라 파스타. 성공이다.'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어색한 조합이 의외의 결과를 불러온다.
시도한 나 자신, 많이 먹을 권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