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밥반찬 다이어리 Sep 15. 2023

12. 혼자 먹는 거 맞습니다만, 야채 가득 샌드위치

종종 밥을 먹기 전에 예쁘게 플레이팅한 음식이 흐트러지는 게 아쉬워서 사진을 찍을 때가 있다.

20대 때 얼굴 사진 위주로 찍었던 내가 나이가 들면서 달라진 점 중에 하나이다.

그 중에서도 유독 어떤 날은 혼자 보기에 아깝기도 하고 뭔지 모르게 무료한 기분이 들 때 괜히 친구들에게 음식 사진을 보낸다.

그럴 때면 친구들은 묻곤 한다.


"누구랑 먹어?"


그 질문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으리라 짐작한다.

혼자 먹기엔 많은 양과 제법 차려 먹는 느낌의 테이블 스타일링은 누구를 초대하거나 다른 사람을 위해 차리는 요리에 익숙한 그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일으키게 만드는 듯 하다.

어릴 때는 먹고 사는 데 급급해서 늘 바빴기 때문에 집에서 여유있게 예쁜 접시를 빙 둘러 차려진 밥상을 마주한 기억이 거의 없다.

물론 요리를 한 적도 거의 없다.


결혼해서 신혼 초에 남편이 내게 놀란 부분 중 하나도 세탁기를 제대로 못 돌린다는 것과 요리를 못하는 것이었다.

사회생활 할 때는 나름대로 프로페셔널하게 일하려고 애를 썼고, 퇴근 후에는 바깥 활동을 많이 했기 때문에 집에서 요리를 할 시간은 없었다.

MBTI로 보자면 사람과의 교류나 외부 활동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 E 타입이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내게 먹는 것은 질리지 않는 유일한 관심사였지만 당시에는 그게 곧 요리를 의미하진 않았다.

신혼 초에는 자취를 오래 한 남편이 술안주 위주로 한 요리를 주로 받아 먹으면서 집밥과 예쁘게 차려진 밥상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달리했던 것 같다.


본격적으로는 퇴사하고 난 2022년에 내 요리 실력과 식탁 위 밥상 꾸미기에 대한 애정은 급속도로 늘어났다.

뭐든지 꾸준히 하면 실력이 는다더니, 요리도 테이블 세팅도 그 원리에 꼭 들어맞았다.

그 와중 텃밭을 하게 된 것은 강제로 요리할 명분이 더 가해지게 되어, 은근한 의무감으로 요리를 할 때도 꽤 있었다.

올 해는 비로 인한 피해가 꽤나 컸고, 농작물도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아 식재료 물가가 역대급으로 상승했다.


그런데 우리 텃밭은 워낙 적은 면적이기도 했지만, 비 피해를 입지 않고 의외로 농작물이 잘 자라주었다.

더운 여름에서 선선한 가을로 넘어가기 전, 그 사이에 이도 저도 아닌 중간의 계절이 존재한다.

그 시기엔 여름 농작물은 거의 끝나가고 몇 가지 채소들이 무럭무럭 자란다.

우리 밭에 건강미를 뽐내며 성장세로 1위인 가지가 무척 많아서 올 여름과 지금까지 가지 요리를 많이 해먹었다.

사실 가지는 요리랄 것도 없이 그냥 칼집을 내어 기름에 구워 먹으면 끝난다.

본성이 좋은 사람은 여러가지로 포장할 필요가 없듯이 좋은 식재료는 굳이 양념이 필요하지 않다.


오늘도 넘쳐나는 가지를 조금이라도 활용해야 하니까 집에 있는 재료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보았다.

심심한 식사빵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코스트코에 가면 피타 브레드를 항상 사놓기 때문에

빵도 있겠다 그저 집에 있는 재료로 이것 저것 빵에 끼워넣어 건강하게 점심을 먹어본다.

올해 최대의 수확량을 자랑하는 가지와 수분감이 가득해 물 대신 먹어도 좋을 오이, 여름에 이미 따놓아 보관해뒀던 자색양파를 곁들여 빵 옆구리가 터지도록 집어넣는다.

그런데 또 몸에는 안좋고 입은 즐거운 식재료 하나는 껴주는게 예의니까 탱글하게 구워낸 소세지도 살짝 곁들인다.

소스로는 시어머니가 담궈주신 매실청 절임을 활용해 매실을 잘게 썰고 무설탕 머스터드를 휘적대 섞는다.

따뜻하게 데운 피타빵에 치즈를 깔고 매실머스터드를 얹어 베이스를 만든 담에 가지 오이 자색양파 당근라페 병아리콩까지 욕심내어 껴넣은 후 한 입 조심히 베어물면.

행복한 맛이 입에서 먼저 느껴지고 이어 온 몸에 행복 호르몬이 퍼진다.


이렇게 다채롭고 맛있기까지 한 야채 샌드위치.

또 해먹을 수 밖에.


#글로성장연구소 #별별챌린지




이전 11화 11. 건강한데 맛있어, 메밀면 샐러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